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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國敎會史學會誌 KCI 등재 한국교회사학회지 JCHS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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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9집 (2014년 12월)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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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터10년 프로젝트가 2008년부터 독일에서 진행 중에 있다. ‘종교개혁과 관용’은 루터10년 프로젝트 중 2013년 연중 주제이다. 이 글은 루터10년 프로젝트 중 2013년의 연중테마인 ‘종교개혁과 관용’을 루터에게만 제한했다. 루터의 불관용적 태도는 교황, 이슬람, 농민 그리고 유대인에 대한 입장에서 볼 수 있으나, 여기서는 농민, 이슬람 그리고 유대교에 대한 루터의 입장만을 다룰 것이다. 이 글의 목적은 관용이라는 현시대적 요청 앞에서 불관용적 태도를 지적한 루터비판에 무조건 동조 내지는 무조건적인 변호에 있는 것이 아니다. 현대적 의미에서의 관용은 근대의 산물이며, 종교개혁 시대에는 아직 발아하지 못했다. 루터의 행동은 신학적 행동이었으며, 루터의 입장 역시 신학적 입장이었음을 드러내는데 그 목적이 있다. 이 글에서는 루터의 입장을 그의 저서를 중심으로 고찰했다. 농민전쟁, 이슬람 그리고 유대인에 대한 믿음과 사랑이 상호 긴장을 이루지만, 믿음을 중시한 나머지 자신의 신학적 판단을 따라가는 확고부동한 태도를 확인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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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는 발리바르의 반폭력 개념에 나타난 기독교정치학적 함의를 다룬다. 후기 - 마르크스사상가로서 에티엔 발리바르는 탈근대사회에서 혁명적 폭력 이론이 가지는 문제점을 극복하기 위해 “반폭력” 개념을 주창했으며, 그 실천과제로 “시빌리테의 정치”를 제시하였다. 이런 발리바르의 반폭력 개념은 비폭력과 대항폭력의 변증법적 대립 속에서 새로운 탈근대 정치를 모색하는 기독교 정치학에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해 준다. 비폭력과 대항폭력의 중간 개념으로서 반폭력과 시민인륜을 앞세운 적극적 정치참여로서 시빌리테의 정치는 기독교가 평화주의를 추구하면서도 현실 사회 문제에 능동적으로 참여할 수 있게 해주는 이론적 가치가 있다. 특별히 극단화된 폭력에 맞서기 위한 기독교 정치학적 전략으로서 주목할 요소가 있다. 그의 정치학은 존 하워드 요더와 같은 기존의 평화주의자의 입장을 넘어서서 탈근대적 기독교 정치학의 가능성을 암시해 준다. 아나뱁티스트 현실주의를 강조한 “기독교 정치학”에서 존 레데콥은 교회와 국가와의 관계에 대한 유연한 사고 속에서 제자도의 신념을 가지고 시민불복종과 같은 적극적인 정치 참여를 강조함으로써 기독교적 반폭력 개념의 이론적 사례를 제시해 준다. 반폭력 개념은 비폭력 무저항주의의 한계를 넘어서 기독교의 사회참여를 긍정할 대안 논리로 작동할 수 있으며, 포스트모던사회에서 교회와 국가와의 관계를 재조명해준다. 새로운 시대적 변화에 맞선 시민윤리를 기독교 윤리학에 접목시킬 수 있어 공적신학의 개념을 강화시켜 주는 정치학적 함의가 있다. 다만 반폭력이 마르크스 사회정치학적 개념이기 때문에 기독교 사상에 직접적으로 수용하는 데 있어서는 한계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개념에 포함된 정치학적 전략은 기독교 정치학에서도 연구할 가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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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젠더이슈에 대한 논의가 그 어느 때보다 치열했던 1920-30년대 기독교가 젠더담론 형성과정에 어떻게 관여했는지에 관한 연구이다. ‘개인의 자유’를 강조하며 근대의 아이콘으로 떠오른 신여성의 등장과 ‘여성해방’의 전위를 자처한 사회주의 여성해방론과의 경쟁에 직면하여 기독교가 선점해왔던 ‘남녀평등의 종교’라는 이데올로기적 ‘진지’를 어떻게 지켜나가고자 했는지에 초점을 맞춘다. 더불어 「신학세계」, 「신학지남」, 「기독신보」 등 대표적인 기독교 정기간행물들에 실린 글들을 분석하여 일제 식민치하에서 형성된 기독교의 근대담론이 저항담론이 아닌 서구적 근대이념에 종속된 또 하나의 식민담론이었음을 밝힌다. 기독교계는 선교를 위협하는 ‘신사상들’로부터 기독교 대중들을 지키고 기독교의 외연을 확장해나가기 위해 새로운 담론전략이 필요했다. 대중과 쉽게 공감할 수 있는 전기장르를 통해 ‘남녀평등’과 ‘인류애’가 기독교 정신에서 나온 것임을 설파하고 이를 실현한 역사적 모범으로 영미권 여성들을 소개했다. 다음으로 성서와 기독교 전통 안에서 두각들 드러냈던 여성들의 역사를 여성의 눈으로 새롭게 소개하면서 기독교야말로 남녀평등의 종교임을 재차 확인시켰다. 또한 개인의 도덕성 계발의 강조는 조선이 일본의 식민통치를 받고 있었던 상황에서 사회정치적 갈등을 최소화하면서 대중교육을 지속할 수 있는 기독교가 취한 가장 효과적인 전략이었다. 덕분에 기독교는 ‘남녀평등’이 근대사회의 거스를 수 없는 시대정신임을 주지시키고 젠더에 대한 사회적 논의에 불을 지피는데 공헌할 수 있었다. 하지만 여기에서 드러난 기독교계의 담론전략은 일본의 식민지로 전락한 조선에서 또 다른 방식의 식민화를 초래하는 종속구조로 작용할 수밖에 없었다. 우선 자신들의 역사로부터 단절을 강요받고 있던 조선의 대중들이 영미권 역사와 영미권 여성들의 업적을 근대의 이상적인 모델로 동경하게 만들었다. 또한 일제의 억압정치와 제국주의적 야만성을 외면한 채 ‘자발적 헌신’과 ‘이타적 희생’만을 강조한 담론전략은 식민체제에 대한 저항력을 약화시키고 억압적 현실에 스스로 순응하게 만드는 ‘보이지 않는 손’으로 작용했다. 마지막으로 교회의 젠더 논의에 있어 선교사들의 신학적 성향이 가장 중요한 변수로 작용하는 것을 허용했다. 이는 조선사회가 처한 현실과 교회의 실질적인 문제들이 논의의 중심에서 배제되는 결과를 초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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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는 길선주의 저작과 생의 보적(寶蹟)을 통해 그의 성화론을 고찰하려는 데 목적을 둔다. 현 한국교회의 정황은 교회의 거룩성과 성화 차원에서 볼 때 불행하게도 비관적이다. 한국교회가 심각한 고질병을 앓고 있다는 점을 직시해야 한다. 교회는 교회의 본질과 본연의 사명을 상실했다는 심각한 비판을 받고 있으며 이로 인해 많은 교회들이 다방면에서 난관에 직면해 있다. 이러한 비판에 대해 역사적 관점에서 조명할 필요가 있다. 아직까지 길선주의 경건성과 삶을 분석하여 성화론을 연구한 사례는 부재하다. 본 연구에서는 이론적인 면과 실제적인 면 모두를 살펴보았으며 특별히 길선주의 사상과 삶을 한 지평에서 통합하여 조망했다. 길선주가 자신의 저작들과 보적에서 보여준 성화에 관련된 중요한 관점들을 다음 두 가지 차원에서 정리했다. 첫째, 이론적인 차원에서는 그의 거룩성과 경건성을 세밀하게 분석함으로써 그가 보여준 성화의 원리와 중요한 용어들을 고찰했다. 중요한 개념들은 ‘그러므로의 신학’, ‘하나님 형상의 회복’, ‘확산의 원리’, ‘현세와 천국 사이의 아직으로서의 개개인의 천국’, ‘예수 그리스도의 칠보적(七步跡)’등이다. 둘째, 길선주는 자신의 삶을 통해 실천적 성화를 보여주었다. 실천적 차원은 평양부흥운동, 애국적 계몽운동, 애국활동, 교육사역 등에서 고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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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노나이트 중앙 위원회(MCC)는 1951년에서 1971년까지 한국에서 구제와 교육 사역을 해 왔다. 메노나이트 중앙 위원회는 1920년 조직된 이후 전 세계의 분쟁지역 사람들을 구제하기 시작하였고, 다양한 지역에서 다양한 형태의 구제사역을 펼쳐왔다. 그들이 하는 일은 농업, 물공급, 집 짓기, 보건, 직업 창조, 평화 세우기, 교육 등이다. 이런 활동과 함께 그들은 전 세계의 수많은 다양한 기구들을 파트너로 삼아 지원하고 있다. 그들은 ‘메시야의 평화 선교’ 정책에 기초하여, 인간의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종교적인 모든 차원에 대해 관심을 가져왔다. 메노나이트 중앙 위원회는 한국전쟁 중인 1951년부터 한국과 관계를 시작했다. 휴전 직후인 1953년 7월에는 한국대표부를 대구에 설립하고 경산에 농장을 개발하여 본격적인 활동에 들어갔다. 한국 활동 가운데 대표적인 것 네 가지는, 물자구제 사업, 직업학교, 가족/어린이 지원 프로그램, 전쟁 과부들을 위한 재봉기술 교육 등이다. 메노나이트 중앙 위원회의 사역은 제자도에 기초하여 공동체 안에 평화를 세우는 일이었다. 이 사역의 구체적인 모습이 개인과 가정과 마을과 한 국가에 대한 구제와 개발이고, 구제와 개발이 지향하는 바는 평화인 것이다. 이 구제사역은 곧 평화를 주고 나누고 세우는 사역이었다. 구제사역과 평화사역은 서로 떼어 생각할 수 없는 개념이다. 한국 메노나이트 중앙 위원회는 인간의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종교적 모든 욕구를 포괄하는 선교인 ‘메시야의 평화 선교’에 근거해서 한국전쟁 시기 한국에서 그들의 평화사역을 시작하였다. 진정한 평화는 ‘일용할 양식’과 ‘공동체’가 그 기초이다. 그들은 신앙교육은 하되 교파교육은 시키지 않았다. 그들은 교회를 설립하려는 사람들을 지원했다. 그러나 메노나이트 교회를 세우지 않았다. 그들은 자신들보다 앞서 들어온 한국의 교회들을 존중했고, 한국교회들이 놓치고 있는 부분들을 묵묵히 감당해 주었다. 그들은 한국교회를 섬겨 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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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심프슨(A.B. Simpson)에 대한 선행연구가 지나치게 서양 관점에서 진행되었음을 지적하고, 동서양의 종교가 충돌하고 서양에 아시아 선교 열풍이 불 무렵에 심프슨의 사상과 사중복음(the Fourfold Gospel)이 체계화되었음을 알리고자 한다. 예컨대, 밴 더 월(Burnie Van De Walle, 2009)은 사중복음 형성 배경이 네 가지라고 분석했는데, 그것은 18·19세기의 서양 “부흥운동”(Revivalism), 요한 웨슬리가 시작한 “성결운동”(the Holiness Movement), 스위스 뮈네도르프에서 기인한 “신유 운동”(the Divine Healing Movement), 비관적 시대상을 반영한 “전천년설”(Premillennialism) 등이다. 이 네 가지 서양 사조와 운동들이 사중복음 형성에 영향을 끼쳤음은 분명하지만, 다른 중요한 요소들도 있는데 밴 더 월은 간과한 것 같다. 심프슨은 불교, 유교, 이슬람교, 특히 불교와 불교적 요소들이 교회 내부에 침투하는 것을 경계했으며, 그에 대항하여 복음을 변증하려 했고, 아시아선교, 특히 중국선교에 몰입했다. 이런 상황과 필요 때문에 심프슨은 당시 사조들을 종합하고 재해석하여 사중복음을 탄생시킨 것이다. 이 논문은 밴 더 월이 분석한 서양 사조들이 사중복음 탄생에 기여했음을 전제로 하되, 그가 간과한 다른 부분, 즉, 서양에 밀려온 아시아사상에 대항하여 심프슨이 복음을 변증하고자 한 것과 아시아선교, 특시 중국 선교 열망을 가진 것도 사중복음 형성에 기여했음을 드러내고자 한다. 심프슨과 사중복음은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까지 서구 복음주의 진영에서 교파를 초월하여 주목을 받았고, 현재까지 오순절 및 복음주의 계통 교회들에 꾸준한 영향을 끼치고 있으며, 동북아 주요 3국과 인도차이나반도에 지속적인 영향을 끼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에 대한 선행연구는 주로 심프슨의 삶과 글과 그가 설립한 “기독교연합선교회”(Christian and Missionary Alliance, 이후 “C&MA”)를 소개하는 정도에 머물렀다. 심프슨이 사역 후반기에 중국 사상과 언어를 공부하고 중국 선교를 독려하는 데 몰입했다는 사실과 그 배후 사상에 관한 연구는 상대적으로 미흡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