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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검색결과 9

        1.
        2021.09 KCI 등재 서비스 종료(열람 제한)
        이 연구는 강두송 목사의 글 “婦人問題”을 중심으로 1920년대 초 그의 여성인권 신장에 관한 관점을 고찰하고 현재적 함의와 교훈을 살펴보려는데 목적을 둔다. 그는 고린도전서 11장 2절부터 16절까지를 본문 말씀으로 설정하여 이 글을 작성했으며 1922년 일본강점기에 출판된 『宗敎界諸名 士講演集』에 게재되어 있다. 강두송의 글 “婦人問題”에 나타난 여성인권에 대한 성경적 관점들과 그 현재적 함의에 부각된 주요 논지들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고린도전서 11장 2절부터 16절 말씀에 대한 그의 사적인 분석을 다루었다. 그는 이 본문에 기초하여 남녀의 인권과 인격의 동등성, 사도 바울의 고린도 여성 성도들을 향한 엄격한 훈계, 시대적 관례 순응과 온건한 개혁추진 등을 제시하고 있다. 둘째, 가정에서의 남편과 아내의 차별대우, 가혹한 오이코스(οἶκος)의 울 타리 철폐, 동등한 교육기회의 부여, 퇴폐문화 퇴치 등에 관한 담론을 살펴 보았다.
        2.
        2020.09 KCI 등재 서비스 종료(열람 제한)
        이 연구는 한석원(韓錫源) 목사의 “責任의 自覺”(1922)과 이 글이 갖는 현재적 함의를 내연(內燃)과 외연(外延)의 원리에 초점을 맞추어 분석하려 는 데 목적이 있다. 그는 갈라디아서 6장 5절의 말씀(“각각 자기의 짐을 질 것이라”)을 성경본문으로 설정하여 이 글을 저술했다. “責任의 自覺”은 1922년 7월 일제강점기에 출판된 『宗敎界諸名士講演集』(개신교 저명한 선각자들의 설교문집)에 수록되어 있다. 한석원의 글 “責任의 自覺”에서 보여주는 핵심적인 논점들과 주요사안 들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한석원이 논하는 ‘내연’으로서의 책임의 자각에 대해서 고찰했으 며 고결한 인격, 경건한 신앙심, 탁월한 자격, 영성, 지속적인 각성, 성경읽 기와 기도, 잘못된 습관을 교정하는 일, 믿음과 행위의 일치(信行一致) 등 이 내연에 해당된다. 둘째, 한석원의 첫째 논지를 확장하여 계속해서 그가 논하는 ‘외연’으로 서의 책임의 자각에 대하여 다루었다. 그는 진정한 이타주의는 성경적 청지기 정신과 자기희생에서 비롯된다고 확신했으며 그리스도인은 자신의 범주를 넘어서서(외연하여) 가정, 교회, 사회, 민족, 그리고 국가를 대상으 로 반드시 이타주의를 실천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한석원 목사가 남긴 의미심장한 발자취와 그가 남긴 주요 공적에 비추 어 볼 때 본 연구자는 향후 그와 연관된 연구를 외연함으로써 이 주제 외 에도 문서선교, 주일학교 교육활동, 청년운동, 기독교윤리관, 출판 목회사 역과 기독교 서적 보급 등 다양한 방면의 담론으로 연계될 수 있기를 기대 한다.
        3.
        2019.08 KCI 등재 서비스 종료(열람 제한)
        본 연구는 김창준(金昌俊) 목사의 설교 “最大의 模範”을 통해 ‘모범자 로서의 예수상’을 분석하는 데 목적을 두었다. 그는 베드로전서 2장 21절 말씀을 본문으로 설정하여 이 글을 작성했다. 본 연구에서는 김창준의 ‘모범자로서의 예수상’을 분석하기 위하여 1922년 『宗敎界 諸名士 講演集』 에 수록된 “最大의 模範”을 고찰했다. 첫째, ‘겸손’에 대해: 김창준이 생각한 그리스도인의 지고의 과업으로서 겸손의 기초적 원리가 무엇인지에 대해 살폈으며, 그 원리들로서 예수 그 리스도의 비하(卑下), 비하의 실제적 체험과 실천, 그리스도인의 공평무사 (公平無私)한 태도 등에 대해 논했다. 둘째, ‘책임감’에 대해: 책임감과 관련된 의미심장한 교훈들을 다루었으며, 그 예로서 구원을 성취하기 위한 그리스도의 헌신, 믿음과 행위의 일치 (信行一致), 자기성찰, 대소사 모든 소임에 최선을 다하는 신자의 삶 등을 고찰했다. 무엇보다도, 그는 그리스도인의 신앙과 열정적 사명감의 조화에 큰 비중을 두었다. 셋째, ‘이타적 사랑’에 대해: 김창준의 논리적 논증에 따라 이타적 사랑에 대해 살폈다. 그는 죄인들을 위한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 사도들과 초기 교회 성도들의 이웃을 위한 헌신적인 삶, 그리고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의 이타적 사랑을 피력했다. 부연하여, 본 연구자는 향후 김창준과 관련된 연구가 확장되어 이 주제 외에도 ‘그의 신앙과 삼일독립운동’, ‘그의 신앙과 사회주의 사상’, ‘그의 목회사역’ 등 다방면의 연구로 진척되기를 바란다.
        4.
        2018.08 KCI 등재 서비스 종료(열람 제한)
        본 연구는 1905년에 발행된 「부활쥬일례」를 고찰함으로써 ‘찬송’, ‘성경본문’, ‘문답’을 중심으로 예전전통과 교훈을 살펴보는 데 목적이 있다.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은 기독교의 핵심적 복음이며, 그리스도인들은 매년 부활주일에 주님의 부활을 기념한다. 이 부활절 예배에 관한 독특한 사료는 그리스도인들이 부활절에 어떻게 하나님을 예배해야 하는지를 가르쳐주는 가장 고전적인 지침서이다. 한국교회는 이 소중한 문헌이 담고 있는 예전적 유산과 교훈을 후세대 그리스도인들에게 전수해주어야 할 필요가 있다. 제2장에서는 ‘찬송’, ‘성경본문’, ‘문답’ 사이의 상호 유기적(有機的)인 밀접한 관련성에 대해 다루었다. 제3장에서는 ‘문답’을 중심으로 문답의 각 항목에 내재된 함축적인 의미들을 분석하였으며 이 분석 작업을 위해 ‘히스토리에’와 ‘게시히테’의 양면적 관점에 초점을 맞추어 다양한 교훈들을 고찰하였다. 제4장에서는 의미심장한 예전적 개념들을 고찰함으로써 오늘날 부활절 예배를 위한 네 가지의 유익한 방안들을 제시하였다. 부연하여, 이 연구가 향후 ‘신앙교육을 위한 문답식 토론회’, ‘공동체 신앙의 회복’, ‘주일성수’, ‘예배갱신의 방향’, ‘절기예배의 개혁적 패러다임’, 교파별 부활절 예배 비교연구‘ 등과 같은 예전적 실천분야 탐구로 확장되어지기를 기대해본다.
        5.
        2017.05 KCI 등재 서비스 종료(열람 제한)
        이 논문은 한치진이 『基督敎人生觀』을 통해 1930년대 한국교회의 문제 점을 진단하고 그 개선방안을 제시한 논지를 고찰하는 데 목적을 둔다. 이 연구에서는 그의 대표적인 저서 『基督敎人生觀』 뿐만 아니라 본 주제와 관련된 다른 주요 문헌들도 참고할 것이다. 이 책은 일제강점기인 1934년 에 출판되었으며 기독교윤리관에 입각하여 저술되었다. 그는 목사도 신학 자도 아닌 평신도의 위치에 있었지만 기독교윤리에 뛰어난 지식을 갖춘 인 물이었다. 한치진의 저서 『基督敎人生觀』이 남긴 중요한 교훈들을 정리하 면 다음과 같다. 첫째, 개혁에 대한 관점이다. 그는 당시 한국교회가 여러 방면에서 심각 하게 타락했다는 점을 직시하고, 그리스도인들이 사회를 개혁해나가기 위 해서는 먼저 교회 안에 내재되어 있는 내적 부패상부터 척결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둘째, 실천적인 관점이다. 한치진은 엄격한 규범을 제시했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사회에서 선행을 추구함으로써 예수 그리스도의 삶과 가르침 을 따라 기독교윤리를 실천해야 한다고 했다. 그는 이 저서에 높은 실업률, 젊은 세대 교육, 병약한 환자들, 삶과 노동, 파시즘과 권위주의 등 다방면 에서 윤리적 주제들을 담았다. 셋째, 세계에 대한 관점이다. 그는 교회는 반드시 만물의 궁극적 중생(重 生)을 고대하면서 현세와 지복(至福)의 내세 양 지평에 동등한 관심을 가 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연구가 향후 한치진의 ‘기독교 윤리관’, ‘기독교 심리학’, ‘기독교 교 육학’, ‘신앙적 사고’ 등의 연구 작업으로 더욱 확장되어지기를 기대한다.
        6.
        2016.04 KCI 등재 서비스 종료(열람 제한)
        본 논문은 아펜젤러의 일기인 󰡔자유와 빛을 주소서󰡕, 필라델피아 전도 자모임 연설문인 “한국: 우리의 사역과 기회의 현장”, 󰡔H. G. 아펜젤러의 보고서󰡕, “설교집”, 그리고 사적인 기도문 등을 통하여 그의 교육선교를 고 찰하려는 데 목적을 둔다. 이 연구에서는 이 문헌들을 분석함으로써 아펜 젤러의 교육선교 정신과 구령사역(救靈使役)의 열정을 고찰할 것이다. 미국감리교선교회 소속 선교사 아펜젤러는 1885년 4월 5일에 제물포항 에 입항했다. 그러나 전도사역을 금하는 조선의 엄격한 국법 때문에 1885 년 내한한 이래로 복음전파를 통한 직접적인 전도방법을 모색하지 않았으 며, 대신 교육선교에 최선을 다해 투신했다. 아펜젤러가 자신의 교육선교 사역을 기반으로 보여준 중요한 논점들은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첫째, 그의 교육선교 사역 정신은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진실한 신앙고 백과 교육을 통해 복음을 전파하려는 순수한 열정 위에 전개되었다. 둘째, 그가 교육선교 사역에 임하게 된 동기는 다양했다. 그는 기독교를 불교와 유교, 샤머니즘과는 본질적으로 차원이 다른 종교로 소개했으며, 복음에 입각하여 교육선교 사역을 수행함으로써 비기독교적인 윤리와 전 통들을 일소(一掃)하고자 했다. 셋째, 교육선교 방안을 깊이 숙고하여 매서인 공동체, 일본인 성경공부반, 벧엘예배소, 주일학교, 감리교 교리연구반, 속회활동, 신학반, 금요공부, 매일학교, 속회 등을 운영함으로써 다양한 체제의 교육을 실천했다. 넷째, 그는 소수의 소년들로 시작하여 유능한 인재를 양성하기 위한 취 지로 배재학당을 설립했으며 교육선교 사역을 기반으로 정동제일교회를 건립했다. 또한 초기의 여러 기독교서적들을 저술함으로써 문서선교를 확 립하는 일에 지대한 공헌을 남겼다. 그가 남긴 이러한 공적들은 교육선교 와 실천을 바탕으로 결실했다.
        7.
        2015.12 KCI 등재 서비스 종료(열람 제한)
        본 연구는 The Abingdon Bible Commentary(1929)에 나타난 주요 신학사 상을 고찰하려는 데 목적을 둔다. 이 주석서는 신학적으로나 교회 정치적 으로나 혼란스럽던 시기에 번역되어 1935년에 발행되었으며, 장로교 총회 와 보수적인 기독교인들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單券聖經註釋은 총 다섯 편으로 편성되었는데 제1편에는 “聖經 全體 에 對한 論文”, 제2편에는 “舊約全書에 對한 論文”, 제3편에는 “舊約全書 註釋”, 제4편에는 “新約에 對한 論文”, 제5편에는 “新約全書註釋”이 실려 있다. 개혁주의 신학 관점에서 볼 때 무엇보다도 이 주석서의 주요 난제는 신학적으로 성경 고등비평과 문서설에 입각하여 기술되어 있다는 점이다. 따라서 이 주석서에는 성경의 완전축자영감설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논리 가 명백하게 전제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單券聖經註釋의 신학적인 문제들을 분석한 학적 작업은 수행되지 않았다. 본 연구에서는 單券聖經註釋을 고찰함에 있어 당시 논란의 핵심이었 던 ‘기적들’과 ‘그리스도론’에 초점을 맞추었다. 첫째, ‘기적들’에 대한 관점에서는 천지창조 사역, 노아의 대홍수, 애굽 십재앙과 홍해도하, 오병이어 기적 등에 대해 고찰했다.둘째, ‘그리스도론’에 대한 관점에서는 그리스도의 선재성, 양자론, 그리 스도의 인성의 무죄성, 그리스도의 동정녀 탄생, 메시야 자의식, 그리스도 의 죽으심(죄의 전가)과 부활, 그리고 그리스도의 재림의 양식 등에 대해 고찰했다.
        8.
        2014.12 KCI 등재 서비스 종료(열람 제한)
        본 연구는 길선주의 저작과 생의 보적(寶蹟)을 통해 그의 성화론을 고찰하려는 데 목적을 둔다. 현 한국교회의 정황은 교회의 거룩성과 성화 차원에서 볼 때 불행하게도 비관적이다. 한국교회가 심각한 고질병을 앓고 있다는 점을 직시해야 한다. 교회는 교회의 본질과 본연의 사명을 상실했다는 심각한 비판을 받고 있으며 이로 인해 많은 교회들이 다방면에서 난관에 직면해 있다. 이러한 비판에 대해 역사적 관점에서 조명할 필요가 있다. 아직까지 길선주의 경건성과 삶을 분석하여 성화론을 연구한 사례는 부재하다. 본 연구에서는 이론적인 면과 실제적인 면 모두를 살펴보았으며 특별히 길선주의 사상과 삶을 한 지평에서 통합하여 조망했다. 길선주가 자신의 저작들과 보적에서 보여준 성화에 관련된 중요한 관점들을 다음 두 가지 차원에서 정리했다. 첫째, 이론적인 차원에서는 그의 거룩성과 경건성을 세밀하게 분석함으로써 그가 보여준 성화의 원리와 중요한 용어들을 고찰했다. 중요한 개념들은 ‘그러므로의 신학’, ‘하나님 형상의 회복’, ‘확산의 원리’, ‘현세와 천국 사이의 아직으로서의 개개인의 천국’, ‘예수 그리스도의 칠보적(七步跡)’등이다. 둘째, 길선주는 자신의 삶을 통해 실천적 성화를 보여주었다. 실천적 차원은 평양부흥운동, 애국적 계몽운동, 애국활동, 교육사역 등에서 고찰했다.
        9.
        2012.12 KCI 등재 서비스 종료(열람 제한)
        The object of this study is to investigate the main outline of Sujeong Lee’s thoughts of Christian faith and passionate efforts for mission to Korea from the viewpoint of the history of Christian mission through his two articles, “Confession of Faith” and “Conditions in Korea”. Sujeong Lee who became an associate member of the Korean delegation to Japan, headed by Younghyo Park(朴泳孝) arrived in Japan on September 29, 1882. He met Dr. Tsudasen(津田山), a Japanese scholar of agriculture. And he was much impressed by Tsudasen’s deep-rooted faith and sincere piety to God. As a result, he had so much interest in Christianity and dedicated to studying the Bible and various Christian books. By studying these books, he sought after the essential truth of the Christian faith. Through Japanese faithful Christians he was brought into contact with George W. Knox, Robert S. Maclay and Henry Loomis who were pioneer missionaries in Japan. And on April 29, 1883, he was examined by Yaskawa(安川亨) and baptized by George W. Knox. While he was in Japan, he devoted himself to various Christian activities and studied Christian doctrine to increase his knowledge of Christian truth and faith. As soon as Sujeong Lee found a new truth and sublime faith in Christianity, he was eager to propagate the Gospel to Korea from the bottom of his heart. When he believed in Jesus Christ he confessed his faith to the missionaries and Japanese Christians through the famous article(“Confession of Faith”, 「信仰告白書」) that he wrote with all his heart and soul in May 1883. And then, seven months later, he wrote another remarkable article (“Conditions in Korea”, 「宣敎師派送呼訴文」) on December 13, 1883 to appeal to American Christians for mission to Korea. From the viewpoint of the history of Christian mission, the main thoughts and principles Sujeong Lee left behind us through “Confession of Faith” and “Conditions in Korea” could be summarized as follows: ① the principle of ‘internal combustion & extension’: There is organic corelation between Sujeong Lee’s internal faith and practical efforts for mission to Korea. ② triple methodology of effective mission for Korea: ‘Bible translationestablishment of church-inviting missionaries’ ③ conservative faith: Sujeong Lee stressed the belief of apostolic faith, sola scriptura, sola gratia, and sola fide. ④ plea for mission to Korea: Sujeong Lee was called a Korean Macedonian, since he had showed strongly his earnest desire for American Christians to send their missionaries to Korea. ⑤ indignity of mission: Sujeong Lee, the native Korean fully committed himself to the ministry of translating the Bible into the Korean language. ⑥ attempt to provide efficient policy for early mission to Korea: Sujeong Lee put a strong emphasis on Christian education. ⑦ mission initiated by Korean: Sujeong Lee was the pioneer Korean Christian. From the viewpoint of the history of Christian mission, his great practical efforts for mission to Korea could be summarized as followes: First, he translated the Bible into his native language. When Henry Loomis, the American Bible Society directing manager in Japan had asked Sujeong Lee to undertake the translation of the Gospels into Korean, he was pleased to accept it. He then began, with the help of Chinese and Japanese Bibles, to translate the Scriptures into Korean such as ‘Hyeon To Han Han Shinyak Seong Seo’(4 Gospels and Acts, 1884), ‘The Gospel of Mark’(‘Shinyak Maga Bokeumseo Eonhae’, 1885), ‘The Gospel of Luke’(1885), ‘Romans’(1885) and so on. He believed with absolute certainty that the Korean Bible would be an effective means for extending the true Gospel to Korea without distortion. And he also expected that the Korean Bible would provide an effective tool for the early missionaries to propagate the Gospel to Korea. Horace G. Underwood, Henry G. Appenzeller and William B. Scranton, coming to Korea through Japan, had in their hands ‘Shinyak Maga Bokeumseo Eonhae’ in the Korean language. Second. he shared the Gospel with Korean students in Tokyo and opened the Korean Sabbath School in 1883 for Christian education. He taught them the Bible and the Westminster Shorter Catechism. Third, he appealed to American Christians for mission to Korea. He showed actively his ardent desire to send American missionaries to his motherland as soon as possible. So he was called a Korean Macedonian. As a result of his efforts, the first ordained American missionaries, Horace G. Underwood and Henry G. Appenzeller came to Korea on April 5, 1885. These practical efforts for mission to Korea show that the early Christian mission activities in Korea was started by Sujeong Lee, the pioneer Korean Christi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