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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國敎會史學會誌 KCI 등재 한국교회사학회지 JCHS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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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2집 (2015년 12월) 7

1.
2015.12 서비스 종료(열람 제한)
“모든 부는 불의한 부, 즉 불공평한 부라고 일컬어진다. 왜냐하면 그것 은 모든 이에게 공평하게 분배되지 않고, 한 사람에게는 부족하게, 다른 사 람에게는 필요 이상으로 풍부하게 분배되기 때문이다.” 토마스 아퀴나스의 신학대전에 나오는 이 인용문은 부의 불공평한 분배가 불의하다는 관념 을 뚜렷하게 표현하고 있다. 이것은“정의는 동등을 함축한다”는 명제로 요 약될 수 있는 토마스 정의론의 핵심적인 관념에 속한다. 이러한 특징을 가진 토마스의 정의론에 비추어 보면, 자본주의 사회에서 허용되어 온 심각한 수준의 경제적 불평등은 부정의를 내포하는 것으로 보 인다. 본고는 현대자본주의의 경제 질서가 양산해 온 불평등 문제를 재평 가할 수 있는 하나의 윤리적 준거점으로서 토마스 아퀴나스의 정의론을 고 찰하는 데 목적이 있다. 이러한 문제의식에 기초해서 본고는 토마스 아퀴나스의 신학대전에 나타난 정의론을 사적 소유권의 한계와 빈민의 권리에 초점을 맞추어 철저 한 원전 분석 방법을 사용하여 연구한다. 이 분석을 통해 다음과 같은 것 을 밝힌다. 토마스는 외적 사물의 관리와 분배에 있어서 효율성, 질서, 평 화를 이유로 사적 소유가 허용됨을 인정한다. 하지만 그는 외적 사물의 사용에 있어서는 공적 소유를 주장하며, 사적 소유권에 우선하는 자연법의 규정에 근거하여 사적 소유권의 한계를 분명히 한다. 즉 사적 소유권은 생 존에 필요한 것이 결핍된 빈민의 자기보존이라는 자연권에 종속되어야 한 다는 것이다. 이처럼 자연법에 토대를 둔 소유권 이해에 따라 토마스는 빈 민의 권리를 우선적으로 고려하여 부의 불평등 문제에 접근한다. 본고의 연구결과는 토마스의 정의론에 따른 소유권 이해가 무한한 재산 의 축적을 정의로운 것으로 본 현대 자본주의 정치경제학의 전제를 윤리적 으로 재평가할 수 있는 하나의 관점을 제공해 줄 수 있음을 보여준다.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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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서는 웨슬리의 저널의 중요성을 제기하면서, 저널의 자료, 즉 일 기(Diary)의 특징과 그 연관성, 저널의 문학특징, 저널의 출판 시기와 주요 내용과 사건, 그리고 저널을 통하여 유추할 수 있는 웨슬리의 생각과 사상 더 나아가 18세기 영국의 부흥운동에서 그의 활동을 정리하였다. 이를 위 해, 단순히 신학적인 주제를 따라 추적하는 방법이 아니라, 시간 흐름과 경 과를 의식하는 역사적 방법을 이용하여, 문학적·사회적 정황을 비교하고, 더 나아가 대중문화사의 시각에서 그의 저널을 읽을 것을 제안하려고 한다. 이제까지 한국 신학계에서 웨슬리 저널의 출판 동기와 기록 방법에 대 한 질문이 없을 만큼 웨슬리 연구가 신학주제 중심으로 치우쳐 있었으며, 그 만큼 지성적이고 합리적인 웨슬리 찾기에 기울어져 있었다. 이 글은 웨 슬리의 보다 인간적이고 자연적인 모습을 추적하여, 더 입체적인 웨슬리 복원에 기여하고자 한다. 이 글 결론적으로 웨슬리의 저널에서 다음의 사항이 발견됨을 지적한다. 첫째, 그의 신학이 평생을 통해 발전하고 있다. 그렇게 도달한 것이 바로 “그리스도인의 완전,” 즉 성결을 목표로 하는 신학이었다. 둘째, 저널을 통 해 메소디스트 부흥의 현장을 생생하게 목격할 수 있다. 셋째, 웨슬리는 저널을 위해 현상학적인 방법에 의존하고 있다. 넷째, 웨슬리 저널을 통해 18 세기 영국의 대중사를 볼 수 있다. 마지막으로, 저널을 통하여 결국 웨슬리 는 메소디스트 신도회가 타락한 세상에 대한 대안공동체라는 것을 보이려 고 하였다.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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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에 중국에서 활동한 개신교 선교사들은 가톨릭교회의 선교에 비 해서 그들의 선교가 여러 측면에서 불리한 조건을 가지고 있었음을 인식하 였다. 그러므로 그들은 선교현장에서 의도적으로 개신교회가 ‘성서의 종교’ 임을 강조하고, 성서를 번역하는 일에 최우선 순위를 두었으며 성서를 보 급하는 일에 노력하였는데 이는 개신교 선교부의 가톨릭교회와의 차별화 전략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가톨릭교회가 초기에는 ‘선교보호권’(宣敎保 護權)을 중심으로, 1622년부터는 포교성성(布敎聖省)을 중심으로 하여 국 가 및 교황청을 중심으로 하여 아시아 및 중국선교를 수행하였던 것과는 달리 개신교 선교사들은 대체적으로 자발적 선교회 등을 중심으로 하여 국 가 또는 강력한 교회중심체제로부터 벗어나 선교를 수행하였다. 일부의 현 상이나마, 가톨릭교회가 기독교를 선점한 중국에서 그리고 당시 직접적 복 음전도의 자유가 없던 중국에서 개신교 선교사들의 최선의 전략은 성서원 문으로부터의 성서번역과 보급이었으며 이는 종교개혁의 후예로서 자신들 의 정체성과도 일치하는 일이었다. 로버트 모리슨의 번역본을 시작으로 첫 100여년동안 8개의 다른 중국어번역본을 출판한 개신교의 열정이 그들의 성서에 대한 관심을 증거한다. 그러나, 대립되는 성서판본을 출판할 수밖에 없었던 개신교회의 불일치성은 오늘날 진지한 성찰을 요구하기도 한다.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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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케네스 스콧 라투레트(Kenneth Scott Latourette, 1884-1968)와 그 의 박사과정 제자인 찰스 데이비스 스톡스(Charles Davis Stokes, 1915-1998) 의 간추린 생애와 역사서술 방법론에 대한 연구를 목적으로 한다. 가장 먼 저 필자는 역사적 인물들인 이 두 사람들의 생애를 간략히 다루었다. 학생 해외선교 자원운동(Student Volunteer Movement for Foreign Missions)의 영향을 받은 라투레트는 중국선교사, 선교역사가, 그리고 세계교회연합주 의자(ecumenist)의 삶을 살았다. 스톡스는 한국선교사였던 아버지의 아들로 어린 시절을 한국에서 보냈을 뿐만 아니라 미국에서 교육을 받은 후 다시 한국에 선교사로 와서 농촌계몽운동과 대전감리교신학교(현, 목원대학교) 의 설립자와 교육가로 활동했다. 라투레트의 역사서술 방법론은 크게 “한계인정, 초월성, 상호작용” 이렇 게 세 가지 특징으로 요약될 수 있다. 객관적 역사서술을 지향하는 라투레 트는 객관적인 역사연구를 위해서 자신이 가지고 있는 한계를 인정하는 것 으로부터 연구를 시작했다. 또한 그는 지역, 교파, 그리고 교회를 초월하고 자 시도했다. 즉 유럽중심적, 특정 교파중심적, 교리중심적 교회사의 한계 를 극복하기 위해 노력했을 뿐만 아니라, 천주교회, 동방정교회, 개신교회 를 포함하고 북아메리카, 아시아, 아프리카, 남아메리카 지역들을 포괄하는 기독교역사 서술을 의도했다. 다시 말해 기독교역사는 그리스도 복음의 확 장과 영향을 다룸으로써 교회중심적 역사를 반드시 극복해야 한다고 라투 레트는 생각했던 것이다. 일반적으로 스톡스가 자신의 박사학위 논문을 쓸 때 라투레트의 이러한 세 가지 역사서술 방법론들 중에서 적어도 한계인정과 상호작용이라는 두 가지 특징은 받아드린 것으로 보인다. 자신의 지도교수가 그랬던 것처럼, 스톡스도 자신의 연구를 시작하면서 역사적 객관성을 위해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는 것으로부터 자신의 연구를 시작한다. 게다가 스톡스는 기독교 선 교에 있어서 복음 전파자와 수용자의 상호작용의 영향을 강조한 라투레트 의 영향을 받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톡스의 유일한 역사 연구서인 자 신의 박사학위 논문이 1885년부터 1930년까지 진행된 미국감리교회의 한 국지역 선교에 한정되기 때문에, 스톡스가 라투레트의 초월성에 관해 영향 을 받았는지 받지 않았는지는 파악하기가 어렵다.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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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랜튼은 기숙제 학교인 이화 학당과 보구여관이라는 여성 전용 병원 그리고 공옥여학교를 비롯한 수많은 여자매일학교를 세우고 여성교회와 부인성경학교를 세워 여성을 교육하고 여성지도력을 개발했다. 이것은 여 성교육 활동이었을 뿐만 아니라 개화기의 한국 여성들에게 ‘여성의 공간’ 의 창출이었고, ‘여성 주의’ 의식의 개발이기도 했다. 특별히 그녀가 설립 한 이 나라 최초의 여성 교육 기관이었던 이화 학당은 스크랜튼이 뿌린 ‘여성주의’ 의식이 싹을 틔우고 태동하는 중요한 묘판이 되었다. 이화학당 이라는 기독교적 여성 고등 교육 시설 안에서 개화기 한국 여성들은 사물 을 규정하고 명명하며 자신과 세계를 표현할 수 있는 ‘여성주의 의식’에 각성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러한 새로운 자기의식을 현실화하여 당당한 사 회적 전문인으로서 혹은 민족 독립 운동가라는 정치적 주체로서 자립해 가 게 되었다. 이화라는 공간 안에서 여성들은 무지로부터 해방되었고 가정이 라는 공간에서 해방되었고, 아내, 딸, 어머니라는 전통적인 역할로부터 해 방되었으며, 무엇보다도 여성을 자신의 삶과 역사의 주체로 세우고 사회적 존재로 확장해 가는 의식해방을 이루었던 것이다. 개화기 이화학당에서 태동된 ‘여성주의’ 의식이 가부장제적 성적 위계질서를 완전히 청산하지 못 했다는 점에서 한계가 있으나, 개화기의 ‘여성주 의’ 의식은 자유주의적 ‘여성주의’ 의식이나 사회주의적 ‘여성주의’ 의식을 가능하게 하는 저변을 이룬 우리 나라 ‘초기 여성주의’로서의 의의가 크다. 그러한 의미에서 스크랜튼은 이 나라 여성 교육의 개척자임과 동시에 ‘여 성주의’ 의식의 개척자이자 여성 운동의 개척자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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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는 The Abingdon Bible Commentary(1929)에 나타난 주요 신학사 상을 고찰하려는 데 목적을 둔다. 이 주석서는 신학적으로나 교회 정치적 으로나 혼란스럽던 시기에 번역되어 1935년에 발행되었으며, 장로교 총회 와 보수적인 기독교인들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單券聖經註釋은 총 다섯 편으로 편성되었는데 제1편에는 “聖經 全體 에 對한 論文”, 제2편에는 “舊約全書에 對한 論文”, 제3편에는 “舊約全書 註釋”, 제4편에는 “新約에 對한 論文”, 제5편에는 “新約全書註釋”이 실려 있다. 개혁주의 신학 관점에서 볼 때 무엇보다도 이 주석서의 주요 난제는 신학적으로 성경 고등비평과 문서설에 입각하여 기술되어 있다는 점이다. 따라서 이 주석서에는 성경의 완전축자영감설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논리 가 명백하게 전제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單券聖經註釋의 신학적인 문제들을 분석한 학적 작업은 수행되지 않았다. 본 연구에서는 單券聖經註釋을 고찰함에 있어 당시 논란의 핵심이었 던 ‘기적들’과 ‘그리스도론’에 초점을 맞추었다. 첫째, ‘기적들’에 대한 관점에서는 천지창조 사역, 노아의 대홍수, 애굽 십재앙과 홍해도하, 오병이어 기적 등에 대해 고찰했다.둘째, ‘그리스도론’에 대한 관점에서는 그리스도의 선재성, 양자론, 그리 스도의 인성의 무죄성, 그리스도의 동정녀 탄생, 메시야 자의식, 그리스도 의 죽으심(죄의 전가)과 부활, 그리고 그리스도의 재림의 양식 등에 대해 고찰했다.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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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한 세기 이상 계속되고 있는 성결운동과 오순절주의 분리를 다루면서, 그 사이의 논쟁에 대해 밝히는 역사신학적인 논문이다. 이 새로운 운동(오순절)이 시작된 후 교리적인 논문들이 증가했는데, 이는 양쪽(성결 운동과 오순절)에서 쓰인 종교 신문기사와 신학논문들은 “말싸움”이었고, 두 운동사이의 거리를 더욱 증가시키는 것을 의미했다. 두 운동(성결과 오 순절)의 외부학자들과 종교지도자들은 두 운동의 차이를 이해할 수 없었지만, 성령세례에 대한 새로운 가르침과 최초의 증거로서의 방언은 두 운동 을 구분할 수 있는 경계를 형성하였다. 미국 켄사스의 토페카(Topeka)로부 터 서쪽으로 확산되어 캘리포니아의 로스앤젤레스(Los Angeles)까지, 그리 고 다음으로 극동지역(아시아)까지. 4권의 교리서들(양측에서 2개씩)은 그 분열의 수사학을 이해하는 방법을 제시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마지막으 로 이 글은 결론으로 대화와 화해의 수단으로써 세계 복음주의와 세계 기독교를 제시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