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연구는 무굴 아크바르 황제의 명으로 제롬 하비에르 선교사가 예수 의 생애에 관해 저술했던 『거룩함의 거울』의 텍스트와 이미지의 제작 의 도에 관한 문화 종교적 분석이다. 먼저 아크바르 황제는 예수의 생애에 대 해 다양한 종교에 관한 이성적 관심의 일환으로 예수의 기적과 신성에 관 해 왕권 강화적 측면에서 관심을 가졌다. 한편 제롬은 황제를 개종시킬 목 적으로 무굴의 문화와 종교를 이해하면서 예수의 생애와 접촉점이 될 만한 내용을 선택하여 저술했다. 또한 무굴 궁정의 화가들은 제롬의 텍스트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이 슬람과 힌두교 종교예술 양식과 서양 기독교의 양식을 혼합하여 예수의 생 애에 관한 그림을 그렸다.『거룩함의 거울』에 나타난 이러한 문화적 종교 적 대화를 통해 직접적인 개종으로 이어지지는 않았지만, 일방적이고 강압 적이지 않았고 서로의 종교와 문화를 이해하려는 열린 마음이 있었다. 이 러한 무굴제국의 문화 적응적 예수회 선교의 예는 오늘날 여전히 어려움에 봉착한 인도의 모슬렘, 힌두교인의 선교방법에 대화를 통한 선교의 긍정적 선례를 제공한다.
이 논문의 목적은 20세기 북미의 아나뱁티스트 연구사를 정리하는 것이며, 특히 교회론을 중심으로 한 연구 동향을 살펴보았다. 북미 아나뱁티즘 연구는 20세기 초반에 중요한 계기를 맞이하는데, 해럴드 벤더(Harold S. Bender)의 등장으로 벤더학파(Bender School)라고 하는 학자 그룹을 형성하게 되었고, 그 결과 그동안에 많은 오해로부터 고통받아왔던 아나뱁티스트의 신학과 신 앙이 주류 종교개혁자들의 그것들과 본질적인 차이가 없음을 주장하게 된다. 이를 시작으로 세기 중반부터는 아나뱁티즘의 역사와 신학에 대한 종합적인 연구들이 등장하게 되었으며, 아나뱁티스트의 교회론에 대한 관심도 증가하 기 시작한다. 아나뱁티스트 교회론의 연구에서는 프랭클린 리텔(Franklin H Littell)의 연구를 필두로 다양한 시도들이 있었다. 마지막으로 필자는 20세기 아나뱁티스트의 연구가 특정 인물과 신학에 치중된 측면이 있으며 교회론 연구에서도 치리에 관한 연구에 치중되어왔음을 지적하며 보다 다양한 인물 과 주제에 대한 연구의 필요성을 제안한다.
연구는 스코틀랜드 제1치리서(1560)에 나타난 교회재산의 재분배 규정에 대해 탐구하고 있다. 16세기 이전의 스코틀랜드 교회재산은 무질서 하게 악용되었는데, 이에 대해 개혁자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기초한 교회재 산의 재분배 규정을 제시하였다. 개혁자들은 교회재산의 재분배 기준뿐만 아니라 세부 계획안, 그리고 세부 금액까지 구체적으로 언급하였다. 그렇 기에 필자는 이 부분에 주목하면서 한국교회가 당면하고 있는 교회재산의 세속화의 무질서 문제를 해결하는 신학적인 대안을 찾아보고자 한다. 오늘날 한국교회 안에는 ‘비본질’적인 요소들이 개혁교회의 ‘질서의 기 준’인 것처럼 여겨지는 것들이 많다. 비록 질서를 바로잡고자 제정된 ‘교회 헌법’은 오래전부터 존재했지만, 그것조차도 개교회가 자의적으로 해석하 고 오용하면서 더 심각한 무질서의 문제들을 야기하였다. 교회의 재산과 관련된 부분에서도, 오늘날의 많은 교회들은 성경적인 바른 질서와 기준을 세우지 못하고 교회재산의 세속화의 늪에 빠지게 되었다. 곧, 세상을 향한 빛과 소금의 사명을 온전히 감당하지 못하는 것처럼 보여지고 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교회재산에 관한 분명한 질서와 기준을 세우는 것 은 무엇보다 중요한 과제가 되었다. 이를 위해 필자는 제1치리서에 나타난 교회재산의 재분배 규정을 고찰하고자 한다. 먼저, 그 문서의 배경이 되 는 16세기 스코틀랜드의 역사적 상황을 개관할 것이다. 왜냐하면 16세기 스코틀랜드에서 교회재산의 형태는 오늘날과는 차이가 있기 때문에 당시 역사적 맥락을 아는 것은 16세기 스코틀랜드 교회재산과 이를 둘러싼 사회 체제에 대한 이해를 높일 수 있는 밑바탕이 될 것이다. 다음으로 직접적인 배경, 그리고 구조와 내용을 살펴볼 것이다. 이후에 본문에 나타난 교회재 산 재분배에 관한 규정을 주목하고, 그 의미를 고찰할 것이다. 이러한 연구 를 통해, 한국교회가 직면한 교회재산의 세속화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신학적인 발판이 마련되기를 기대한다.
목회는 목회자, 회중, 목회사역의 삼대 요소로 이뤄진 삼각구도를 통해 수행된다. 목회에 있어서 이 세 가지는 어느 것 하나 빼놓을 수 없는 중요 한 것들이다. 그런데 그동안 목회론(혹은 목회신학)은 전반적으로 볼 때, 주로 목회자 혹은 목회사역에 집중해왔다. 그 결과 목회론에서 회중은 상 대적으로 관심을 제대로 받아오지 못했고, 따라서 목회자론과 목회사역론 에 비해서 회중을 논하는 ‘회중론’(필자의 조어)이 크게 발전하지 못했다. 한편 오늘날 신학 특히 교회론과 선교론은 급변하고 있고, 이런 변화 가운 데 회중에 대한 강조를 빼놓을 수 없다. 본 논문은 바로 이런 학문적 요구에 응답하고자 한다. 이를 위하여 본 논문은 한편으로 교회사에서 회중론의 유산을 간추려보고자 한다. 다른 한 편으로 본 논문은 최근 신학 특히 교회론과 선교론에서 회중을 강조하는 담론들을 살펴보면서, 그것들이 목회론 특히 회중론에 대해 지니는 함의를 간추려보고자 한다. 교회사 가운데 평신도의 중요성은 간헐적으로 강조되 어왔고 대표적인 것은 종교개혁이지만, 본격적으로 신학적 조명을 받게 된 것은 20세기부터라고 할 수 있다. 관련 신학은 평신도 신학, 하나님의 백성 신학, 회중 신학 등이다.
본 논문은 19세기에 중국에서 依經問答, 일본에서 美以敎會問答, 그리고 조선에서 미이미교회문답이라는 제목으로 순차적으로 번역된 미 북감리회 교리문답서를 그 연구 대상으로 하여, 각 판본의 번역 및 출판 과정을 밝히고, 번역 과정에서 기독교 용어가 어떠한 창출·변용·적용의 과 정을 거쳤는지 살펴보는 것을 목표로 하였다. 1865년 매클레이가 번역한 중문본은 영문본을 저본으로 하였으나, 기독 교에 대한 이해가 없는 중국인 독자들을 위해서 문제의 내용을 바꾸거나 첨언하는 경우가 있었고, 새로운 문항도 2개 추가되었다. 1876년 소퍼가 번역한 일문본은 영문본을 기본으로 하되 중문본도 함께 참고하면서 용어 에 있어서 약 45%가 중문본과 일치하고 있는 것이 확인되었다. 한글본에는 2가지 번역본이 있는데, 그 중 플랑시가 수집한 번역자 미상, 연대 미상의 미이미교회문답은 1885년 이수정에 의해 번역된 것임이 본 논문을 통해 밝혀졌으며, 이수정역은 일문본을 저본으로 하여, 용어의 약 68% 가량이 일문본과 일치하였다. 이후 1889년 존스가 다시 번역한 미이 미교회문답은 영문을 저본으로 하였지만, 중문본과 이수정역에서 차용한 용어가 각각 37%, 17% 정도 되는 등 앞선 번역본들도 참고하였던 것을 알 수 있다. 이수정과 존스가 한글로 창출한 단어들은 현재 대개 사용되지 않고 있 으며 한자 용어가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는데, 이는 용어의 유통에 있어서 는 번역자 뿐 아니라 언어를 함께 사용하는 대중의 역할이 더욱 크다는 것 을 보여준다.
에스더 쉴즈(Esther L. Shields, 한국이름 秀日斯, 1868-1940)는 미국 북 장로교 파송 한국 간호선교사이다. 쉴즈는 평생 결혼을 하지 않았고 1897 년부터 1938년 만 70세로 선교현장인 한국에서 은퇴할 때까지 40여년을 의료선교와 복음전도 그리고 간호교육과 사회사업에 일생을 바친 인물이 다. 그녀는 “세브란스의 천사”라 불리울 정도로 봉사의 삶을 살았다. 그러 나 그녀에 대한 연구는 그간 많이 이루어지지 않았는데 이는 그녀가 의료 선교사였지만 의사가 아닌 간호사였고, 남성이 아닌 여성이었기 때문일 가 능성이 높다. 쉴즈는 미국에서 간호사 교육을 받았고 충분한 임상을 경험 한 후 선교사로 자원하여 한국에 왔다. 그녀는 세브란스병원에서 정식 간 호사로 사역하였으나 열악했던 당시 한국의 의료상황과 과중한 업무로 인 해 탈진하여 건강을 해쳐 병원 사역에서 벗어나 평북 선천에서 전도와 교 육 사역을 감당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후 세브란스로 복귀하여 은퇴할 때까지 이 곳에서 간호교육과 간호사들을 위한 사역 그리고 병원에서의 전 도와 사회봉사 활동에 매진하였다. 이 논문에서는 쉴즈의 선교사 지원 이전의 삶과 한국에서의 선교사역을 시기적으로 정리하고 있으며 그녀의 선교사역이 갖는 특징을 몇 가지로 정 리하였다. 이를테면 그녀는 조직과 협동의 중요성을 잘 알았고 이를 매우 중시하여 사역을 진행했으며 그것이 오늘날 한국간호사협회와 같은 기구 로 자라났음을 알 수 있다.
이 연구는 한국 도시산업선교운동의 선구자 조지송의 생애, 산업선교정 책, 그의 노동자선교 신학 사상을 고찰하고, 그의 활동이 세계 에큐메니칼 운동 안에서 어떻게 보편성을 획득했는가를 살피는 것이다. 조지송은 보수 적 친미 반공적인 신앙을 가지고 남한에 온 피난민이었다. 그는 산업전도 를 하면서 산업사회의 가장 밑바닥에서 비인간적으로 저임금과 장시간 노 동에 시달리는 노동자의 현실을 발견했고, 그 상황을 해결하기 위한 선교 정책을 네 단계로 발전시켰다. 1 회사 사주와 협력하는 노동자 전도 2. 훈 련된 평신도를 통한 공장 전도 3. 노동조합을 통한 노동자 선교 4. 소그룹 안에서 여성 노동자의 의식화와 주체성 회복을 통해 산업현실을 개혁하는 산업선교. 조지송은 노동자 기독론과 노동조합 교회론을 발전시켰다. 그는 변화된 노동자의 성숙한 인격과 타자를 위한 존재가 되는 헌신성에서 희망 와 용기를 발견했다. 독재정권과 비윤리적 기업과 협조해서 산업선교를 탄 압하는 제도교회를 거짓교회로 보았다. WCC와 CCA는 한국의 도시산업선 교를 적극적으로 지지했는데 그것은 한국의 도시산업선교운동이 세계교회 와 인류 노동사회를 향해 보편적인 희망을 제공하였기 때문이다.
이 논문은 예수셩교문답(1881)으로부터 시작하여 셩경문답(1936/1937) 에 이르는 한 특별한 한글 문답서의 변천사를 현존하는 소장본들과 문헌적 증거들을 통해서 탐구한다. 초판은 만주에서 출판되었으며, 그 이후에는 만주와 한국에서 후속 개정판들과 재인쇄본들이 발행되었다. 모리스 꾸랑 의 한국서지(1894-1901)에 의해 처음으로 언급된 이 문답서는 한국기독 교에서 특히 19세기말과 20세기 전반기에 전도와 교육을 위해 사랑받는 문서가 되었다. 이 문답서의 원작자는 만주의 존 로스 선교사이며, 메리 F. 스크랜턴 선교사와 한국인 동역자들에 의하여 조선의 수도인 서울 방언으 로 크게 개정되었다. 원작 및 개정판을 이어서 많은 후속 판본들과 재인쇄 가 1936년 또는 1937년까지 뒤따랐다. 초판을 포함하여 원본이 일부라도 남아있는 8종의 판본들이 역사적 상황과 및 서지적 정보를 위하여 탐구되 었고, 9종의 재인쇄본들 역시 문헌적인 증거들을 토대로 연구되었다. 판본 들에서 동일한 주제와 구조가 확인되어 연속성이 입증되었다. 신존재를 위 한 존칭법은 점차 한글에 적절한 방식으로 변화되었으며, 문법과 형식 차 원에서도 다양한 변화들이 있었고, 개별 판본들에서 특수한 변화들도 나타 났다. 문답서의 첫 부분을 다룬 이 연구는 향후 문답서 전체에 대한 역사 및 문헌적 연구를 위한 토대가 될 수 있다. 나아가, 한국기독교가 이 문답 서를 어떻게 수용하였으며, 시대의 변화에 따라 어떻게 이 문답서를 점차 배제해갔는가도 중요한 주제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