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더 쉴즈(Esther L. Shields, 한국이름 秀日斯, 1868-1940)는 미국 북 장로교 파송 한국 간호선교사이다. 쉴즈는 평생 결혼을 하지 않았고 1897 년부터 1938년 만 70세로 선교현장인 한국에서 은퇴할 때까지 40여년을 의료선교와 복음전도 그리고 간호교육과 사회사업에 일생을 바친 인물이 다. 그녀는 “세브란스의 천사”라 불리울 정도로 봉사의 삶을 살았다. 그러 나 그녀에 대한 연구는 그간 많이 이루어지지 않았는데 이는 그녀가 의료 선교사였지만 의사가 아닌 간호사였고, 남성이 아닌 여성이었기 때문일 가 능성이 높다. 쉴즈는 미국에서 간호사 교육을 받았고 충분한 임상을 경험 한 후 선교사로 자원하여 한국에 왔다. 그녀는 세브란스병원에서 정식 간 호사로 사역하였으나 열악했던 당시 한국의 의료상황과 과중한 업무로 인 해 탈진하여 건강을 해쳐 병원 사역에서 벗어나 평북 선천에서 전도와 교 육 사역을 감당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후 세브란스로 복귀하여 은퇴할 때까지 이 곳에서 간호교육과 간호사들을 위한 사역 그리고 병원에서의 전 도와 사회봉사 활동에 매진하였다. 이 논문에서는 쉴즈의 선교사 지원 이전의 삶과 한국에서의 선교사역을 시기적으로 정리하고 있으며 그녀의 선교사역이 갖는 특징을 몇 가지로 정 리하였다. 이를테면 그녀는 조직과 협동의 중요성을 잘 알았고 이를 매우 중시하여 사역을 진행했으며 그것이 오늘날 한국간호사협회와 같은 기구 로 자라났음을 알 수 있다.
기독교의 경우, 교회와 국가(Church and State)의 관계는 기독교의 탄생 이후 계속해서 연구되어 온 주제이다. 교회와 국가의 관계는 각 시대, 국가, 현실에 따라 매우 다양한 관계를 형성해왔다. 교회와 국가의 관계에 대한 연구를 정리하면 대개 4가지 타입으로 요약할 수 있다. 교회와 국가의 일치, 교회 우선 혹은 국가 우선, 교회와 국가의 분리가 그것이다. 이 논문에선 이런 이론적 틀을 토대로 조선 후기에 천주교가 조선에 재 래되면서 국가와 천주교가 부딪히며 일어난 핍박과 박해 가운데 당시 천주교인들의 대응을 통해 국가와 교회의 관계를 어떻게 생각하고 대했는지 대표적 인물인 황사영과 정하상의 대응(백서(帛書)와 상재상서(上宰相書)) 를 통해 살펴보고 있다. 이 연구를 통해 이들이 각각 교회우선주의와 국가 우선주의의 유형에 속했음을 알 수 있고 이들의 대응이 향후 천주교의 전파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또한 이런 차이가 왜 발생하게 되었는지를 검토하였다. 조선에 재래된 천주교는 하나였지만 교회와 국가의 대립과 갈등 그리고 박해 시에 천주교 안에는 하나 이상의 입장이 존재했고, 이런 입장은 시간의 흐름과 폭넓은 경험 그리고 교육에 의해 극단적인 입장에서 이해와 대화를 시도하는 보다 바람직한 방향으로 변화되어갔음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