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연구의 목적은 5・18 당시의 상황을 복기하면서 광주민주화운동의 요인, 기독교와 민주화운동의 관계, 5・18 광주민주화운동 전후 대학생의 역할 등에 대하여 새로운 관점에서 고찰하는 데 있다. 5・18 광주민주화 운동에 관한 기존연구들은 사회학적 측면, 정치학적 관점, 역사학적 관 점, 혹은 구술채록이나 증언 등 스토리텔링에 의존하는 경향이 강하다. 본 연구는 당시 생산된 사료를 통해 광주민주화운동 과정에서 대학생의 역할에 관해 주목하였다. 연구결과는 다음과 같다. 첫째, 운동의 요인적 측면에서 1979년 10월 26일 이후 군부 내 ‘12·12 군사쿠데타’가 전국대 학생들의 시위를 촉발시킨 것으로 보인다. 둘째, ‘5·17 비상조치’를 통한 비상계엄령 확대, 정치활동 금지, 민주인사의 체포 및 투옥, 대학 휴교령 이 5·18의 발단을 제공한 것으로 생각된다. 셋째, 5·18 광주민주화운동 과 대학생들의 역할은 시민수습대책위원회, 시민항쟁의 직접 지원 활동 과 적극적인 참여, 광주민주항쟁의 진상 전달 및 국제적 확산 노력 등이 었다. 넷째, 대학생들은 민주화운동 과정에서 결의문 낭독, 반정부집회와 시위, 삐라살포와 전 세계인을 향해 광주의 진상을 확산하기 위해 노력 했다. 향후 연구에서는 대학교수들의 5·18 광주민주화운동 과정에서 사 회적 참여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The purpose of this study is to examine the factors of the 5·18 Gwangju Democratization Uprising, its relationship with Christianity, and the role of university students at that time from a new perspective. The research results are as follows. First, in terms of the factors of the Uprising, the “12・12 military coup” within the military after 10・26, 1979 seems to have triggered the protest of university students across the country. Second, the expansion of emergency martial law through the ‘5・ 17 Emergency Action’, the ban on political activities, the arrest and imprisonment of democratic figures, and the closure of schools are thought to have provided the beginning of the 5・18. Third, the roles of the 5・18 Gwangju Democratization Uprising and university students were the Citizens Rem ediation Countermeasures Committee, direct support activities and active participation in the civil Uprising, and efforts to convey the truth of the Gwangju Democratic Uprising and spread it internationally. Fourth, during the democratization Uprising, university students read resolutions, anti-government rallies and demonstrations, and spread the truth about Gwangju to people around the world. In future research, it is necessary to examine the social participation of university professors in the process of the 5・18 Gwangju Democratization Upris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