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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4.06 KCI 등재 서비스 종료(열람 제한)
        農圃 鄭文孚의 (1565-1624)는 서울에서 태어나,어려서부터 남다른 詩才를 보이며 성장하였다. 그는 7살 때 이미 「玉顔不及寒鴉色」이란 오언 고시로 시적인 재능을 드러내 보였고,8살때 지은 「初月」은 황진이의 詠半月로 와전되어 사람들 입에 널리 회자되었다. 그가 14세 되던 해에 陞補詩에 장원을 한 「月明花落又黃昏」은 우리 나라를 대표하는 科體詩로 明나라 사신에게 전해지기도 하였다. 그의 벼슬길은 1588년 甲科에 2등으로 급제하면서,이듬해 2월 承政院의 注書 로 시작되었다. 그러나 곧 이어 발발한 임진의 전쟁에서 그는 成慶道 北評事로써 관북 지방에 침략한 왜척들을 소탕하였다. 전쟁이 끝난 뒤,농포의 벼슬길은 순탄하였다. 중간에 몇 차례 집안의 喪으로 인해 참시 벼슬길에 물러나기도 하였지만, 영흥과 온성 · 장단 등의 부사와 걸주와 공주의 목사 등등을 역임하면서,사은부사로 중국에 다녀오기도 하였다. 이후 남원 부사를 지내던 중 형조참판에 제수되였으나 고사하다가,길주 목사를 끝으로 1613 년 49세의 나이로 그는 還鄕하였다. 농포는 이후 다시는 벼슬길에 발을 들여놓지 않았다. 누차에 걸친 조정의 부름에도 끝내 응하지 않고,초야에 묻혀 일생을 마치고자 하였다. 그러나 그는 결국 무고에 연루되어 옥사하고 말았다. 농포는 문신으로써,우리의 역사에 빛나는 군공을 세운 몇 안 되는 인물이다. 농포의 시는 354수가 현전한다. 이 시들은 지극히 남성적인 체취와 여성적연 정감이라는 두 개의 큰 축으로 구성이 되어있다. 농포는 먼저 상당량의 古詩를 통해 일상에서 느끼는 所懷와 史實의 褒貶을 진득하게 기하면서, 남성다운 면모를 유감없이 발휘하였다. 냐아가 文人畵창작에 직접 임하면서 선비다운 기개와 풍모를 닦고,그림과 시로 이를 내보였던 것이다. 농포의 섬세한 정감은 여성을 주제로 한 일반적인 시들과 題畵詩에서 드러난다 자신과 동등한 객체로써, 아름다운 미의 상징우로써 여성들을 직시하였다 그리고 티 없는 동심을 지닌 순수한 존재로써 아이들을 바라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