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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4.05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본 논문은 金安國의 문집에 실려 있는 ‘勸小學詩’를 통해서 그의 교육관의 특징을 살펴보고 ‘권소학시’ 著作의 背景 및 ‘권소학시’가 지니는 시대적 의의를 파악하였다.『小學』은 유교적 도덕성을 통하여 조선사회를 교화시키는데 활용한 중요한 修身書이다. 조선조 전기에 김안국은 유학교육의 입문서격인『소학』에 담긴 내용을 실천하기를 권하는 ‘권소학시’를 지어서 鄕校 학생들에게 유교사회의 도덕규범을 장려하고 鄕村 사람들을 敎化하는 데에 주력하였다. 김안국의 ‘권소학시’의 창작 배경은 燕山朝의 弊政을 극복하고 강력한 왕권강화의 일환으로 中宗의 적극적인『소학』교육 장려책에서 비롯된 것이다. 1517년 金安國은 慶尙道 觀察使로 파견되자 각 鄕校의 유생들에게 적극적으로『소학』을 권하였는데, 경상도 관내의 방문하는 각 향교마다 현판에 ‘권소학시’ 한 편씩을 써 붙여서 강당에 걸게 하여 학도들을 勉勵하고 『소학』을 공부하고 몸소 실천할 것을 강조하였다. 그의 이러한 적극적인 노력을 통해 이때부터『소학』교육 운동이 활발하게 실현되기에 이르렀다. 또한『農書諺解』·『蠶書諺解』·『二倫行實圖諺解』·『呂氏鄕約諺解』·『正俗諺解』 등의 언해서와『辟溫方』·『瘡疹方』 등의 의학 서적을 간행하여 널리 보급하였으며, 鄕約을 시행하도록 하는 등 열정적으로 교화사업에 전념하였다. 이러한 배경에서 비롯된 ‘권소학시’에는 다음과 같이 세 가지 특징을 지닌 교육관이 드러났다. 첫째는 道德性을 강조한 교육관이다. 조선은 성리학을 건국이념이자 통치철학으로 삼아 백성들을 다스리고 교화하여 강력한 왕조를 건설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건국이후에 훈구를 비롯한 기득권층이 鮮初의 강력한 의지를 상실하고 현실에 안주하여 안일한 태도로 일관하여 부패와 도덕적 타락이 만연하게되자 김안국은 도학정치로 도덕성을 회복시키고 유교적 도덕 윤리를 강조하여 위정자와 백성을 교육시킬 것을 강조하였다. 둘째는 實踐性을 강조한 교육관이다. 훈구파는 詞章만을 숭상하여 一身의 榮達과 利祿을 취하는 방편으로 삼았으며 문학적인 誇示를 일삼았다. 이에 중종을 비롯한 뜻있는 신진사림파는 정국의 안녕과 국가의 질서를 회복해야함을 통감하기에 이르렀고 유학의 진작을 도모하였다. 이에 김안국은 이러한 당시의 세태를 비판하고 性理學에 입각한 道德性의 회복과 日常 彛倫을 실천해야 함을 강조 하였다. 셋째는 日常에서 風俗의 敎化를 강조한 교육관이다. 上下官吏의 貪慾을 抑制하고 純風․美俗을 宣揚하는 方法으로 김안국은 ‘권소학시’를 통하여 성리학의 기본 윤리가 일상생활 속에 자연스럽게 배어지게 하여 성리학적 풍속의 습관화를 통하여 도덕적인 유교적 인간형이 형성될 수 있음을 강조하였다. 이에 16세기 조선사회가 훈구세력의 부정부패와 권력남용으로 윤리기강이 무너진 조선 사회를 개혁하고 문풍을 진작시키기 위해, 교육적인 내용이 담긴 ‘권소학시’를 창작하였음을 밝혔으며, 이를 통해서 김안국의 교육관의 제 특징을 파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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