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논문에서는 엘리엇과 애쉬베리의 시와 시론들을 통해 모더니즘과 모더니즘 이후의 시학의 차이를 여러 관점에서 바라보고 그런 차이들의 의미가 무엇인지 살펴보았다. 우선 '체계'를 향한 모더니즘의 요구가 위에서 또는 멀리서 바라보는 시선의 위계적 구도 속에서 진행되고 있음에 우선 주목하였다. 어떤 고전적인 서사도 가능하지 않는 프루프록의 진퇴양난 속에서 이런 위계적 시선의 구도가 결국 무너질 수 밖에 없음이 발견되었다. 애쉬베리의 시는 “어떻게 시작해야 하는가?”라고 묻는 프루프록의 물음에 대한 하나의 대답으로 이해될 수 있었다. 애쉬베리는 “공허” 앞으로 여러 감정들이 마술경처럼 지나가는 묘사를 통해 "부재의 기호“를 중심으로 기호들이 떠도는 탈구조주의적 풍경을 우선 그려내고 있다. 위에서 바라보거나 의미를 읽어내려 하지말고 “인생의 긴 시간 사람들과 같이 살아온” 것처럼 느끼며 시작하라고 애쉬베리는 말한다. 애쉬베리의 시를 통해 우리는 감정들이 계속 이어져가고 “밀려오고 밀려가는 움직임” 속에서 하루하루가 완성되는 새로운 숭고의 순간을 발견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