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논문에서는 엘리엇과 애쉬베리의 시와 시론들을 통해 모더니즘과 모더니즘 이후의 시학의 차이를 여러 관점에서 바라보고 그런 차이들의 의미가 무엇인지 살펴보았다. 우선 '체계'를 향한 모더니즘의 요구가 위에서 또는 멀리서 바라보는 시선의 위계적 구도 속에서 진행되고 있음에 우선 주목하였다. 어떤 고전적인 서사도 가능하지 않는 프루프록의 진퇴양난 속에서 이런 위계적 시선의 구도가 결국 무너질 수 밖에 없음이 발견되었다. 애쉬베리의 시는 “어떻게 시작해야 하는가?”라고 묻는 프루프록의 물음에 대한 하나의 대답으로 이해될 수 있었다. 애쉬베리는 “공허” 앞으로 여러 감정들이 마술경처럼 지나가는 묘사를 통해 "부재의 기호“를 중심으로 기호들이 떠도는 탈구조주의적 풍경을 우선 그려내고 있다. 위에서 바라보거나 의미를 읽어내려 하지말고 “인생의 긴 시간 사람들과 같이 살아온” 것처럼 느끼며 시작하라고 애쉬베리는 말한다. 애쉬베리의 시를 통해 우리는 감정들이 계속 이어져가고 “밀려오고 밀려가는 움직임” 속에서 하루하루가 완성되는 새로운 숭고의 순간을 발견할 수 있었다.
Eliot was impressed with Charles Baudelaire’s technical mastery and particularly with his employment of symbolic imagery as a means of representing a spiritual or emotional state of modern man. This paper makes it clear that Baudelaire’s decadent metropolitan settings appear in Eliot’s early poetry including “The Love Song of J. Alfred Prufrock.” This paper argues that Eliot not merely presents the imagery of the sordid common life of a metropolis but attempts to transform such imagery to disclose the symbolic landscape in the protagonist’s mind. Eliot recalls from his past life memory and daily observations concrete physical equivalents for intangible feelings of modern humans. This paper shows how all the scenery of the poem, indoor and outdoor, is transferred to the psychological landscape of Prufrock himself. And this paper also argues that the symbolist device of objective correlative, then, in Eliot’s hands, renders the complexity of modern human experience as well.
엘리엇은 니콜라스 페라의 영국의 종교 공동체인 리틀 기딩에서 자신의 앵글로 가톨릭의 종교적 정체성을 찾았다. 엘리엇은 「리틀 기딩」에서 자신의 신앙과 믿음의 교리인 성육화를 제시했으며 성요한의 십자가나 단테와 같은 가톨릭의 신앙의 전통을 시에서 구현했다. 엘리엇은 리틀 기딩 공동체와 관련된 역사에 주목하며 찰스 1세와 청교도간의 종교전쟁이 인간의 욕망이 신앙의 이름으로 변한 역사적 사건이 역사에서 반복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시인은 시간 속에 영원이 내려오는 성육화가 정점으로 표현되는 신비를 리틀 기딩에서 체험하며 자신의 죄를 깊이 인식하며 역사에서 은총의 순간이 정점이자 성육화라는 앵글로 가톨릭적인 신앙의 정체성을 제시한다.
본 연구의 목적은 엘리엇의 인본주의적 관점이 종교적 개념으로 신학적인 기존연구들과 앵글로 가톨리시즘 연구를 통해 어떻게 이해되는지 살펴보고 종교와 사회공동체를 연결하려는 엘리엇의 노력이 세속적인 인본주의와 기독교 인본주의와도 어떤 면에서 다른지 알아보기 위한 것이다. 앵글로 가톨릭으로의 그의 개종은 대부분 선조의 종교인 유니테리언과 철학적 연구를 통한 회의적 태도와 어빙 배빗의 사회적 토대, 흄의 원죄이론과 랜슬럿 앤드류즈의 삼위일체와 성육화를 강조하는 설교에 의해 복합적으로 영향을 받았으며 개인 자유주의와 신앙 문제를 제기한다. 이 연구는 엘리엇의 궁극적인 종교적 성향이 앵글로 가톨릭 공동체를 토대로 한 종교적 삶에서 인본주의와 지성인의 종교적 기능이 필요하다는 것을 제시한다. 그의 신앙의 핵심으로서 감정을 통제하는 종교적인 인본주의에 대한 엘리엇의 관점은 전통적이고 체계적인 종교적 정신을 깊게 하는 것과 앵글로 가톨릭의 옥스퍼드 운동과 밀접하게 관련된 고교회적 기독교적 성향에 헌신하는 것으로 그의 지적으로 얽혀진 종교적 신념과 사회적 삶을 이해하는 것을 가능하게 한다.
T. S. 엘리엇의『대성당에서의 살인은 대주교 베켓의 순교를 이상화하는 대신에 그를 하나님을 위해 자신의 생명을 희생한 성자로서 사람들의 영적 영역을 항구히 지배하고자 하는 문제적 인물로 극화하고 있다. 하지만, 기독교 세계에서의 자신의 영적 지도력을 항구히 하려는 그의 욕망을 부분적으로 해체해버리는 기사들과 대면을 거치면서, 그는 자신의 순교가 자신의 자유의지가 아니라 절대타자인 하나님의 섭리에 의해 좌우됨을 깨닫게 된다. 대주교의 하나님의 뜻에 최종적인 복종은 그의 타락한 영혼을 구제하는데 기여하며, 이를 지켜본 캔터베리의 가난한 여인들인 코러스는 베켓의 죽음을 통해 영적 구원의 길을 모색하게 된다.
이글은 개종 후 종교적 색채가 짙어진 엘리엇의 후기시에 나타난 종교적 경험의 문제를 다루려는 시도이다. 종교적 경험은 특정 종교의 도그마나 교리가 규정하는 대로가 아닌 인간이 압도적 권위나 힘을 가진 초월적 존재에 대한 관계에서 느끼는 정서적 경험으로 이 글에서는 오토와 제임스의 설명을 기초로 삼았다. 이 경험에서 인간은 대상인 절대자 앞에 나약한 피조물로 스스로를 인식하며 세계관과 태도에 있어 커다란 변화를 겪는다. 융은 이 경험을 심리적 공식으로 이해하여 인간의 의식이 그 근원인 무의식의 중심, 즉 ‘자기’에 노출되면 절대자 앞에선 ‘피조물 느낌’을 갖는다고 설명한다. 엘리엇에게 이 같은 종교적 경험이 실재했는가 하는 문제는 정확하게 답할 수 없는 문제이다. 하지만 그는 이 경험을 당연한 것으로 인정하고 있다. 또한 심리적 관점에서 보자면 그의 종교시에 자주 등장하는 여성도 시인의 종교적 경험의 개연성을 높이고 있다. 또한 그의 시는 기독교의 가르침을 무조건 수용하기보다는 스스로의 경험을 그리고 있다는 인상을 자주 불러일으킨다. 특히 「동방박사의 여행」과 재의 수요일에서 이 같은 특징이 두드러지며 동시에 그의 시는 산문과 달리 종교적 가르침에 대해 회의하는 모습이 자주 드러내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