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엇은 『시의 효용과 비평의 효용』에서 “어떤 세대도 다른 세대가 했던 것과 똑같은 방식으로 예술에 관심을 두지는 않는다. 각각의 세대 는, 각각의 개인이 그러한 것처럼, 예술을 감식하는 자신만의 범주를 통 해서 예술에 대하여 심사숙고를 하고, 예술에 대하여 자신의 세대에게 [적합한] 요구를 하고, 예술을 위해 자신의 세대에 적합하게 예술을 사 용한다.”고 주장하였다. 그는 “아름다움”이라는 미학적 범주나 요구는 19세기말의 심미주의에 적합한 미학적인 범주나 요구였으므로, 현대라 는 새로운 시대는 새로운 범주나 기준을 찾아내고 이를 실현시키는 것 이 현대 예술가와 현대 비평가가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가 시를 짓 거나 비평을 할 때, 자신과 시대에 맞는 새로운 기준을 모색하고자 했 다는 맥락에서, 이 글의 목표는 그가 심미주의 미학의 핵심 개념인 “아 름다움”을 거부하였던 이유를 구체적으로 밝히고, 현대에 적합한 새로 운 미학적인 범주나 기준으로 채택한 것들이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살펴 보는 것과 이 새로운 범주와 기준의 의미와 의의를 살펴보는 것이다.
『J. 알프레드 프루프록의 연가 』에서 화자 프루프록은 상징계의 주체 이자 욕망의 결핍을 느끼는 현대인의 전형, 탈주를 꿈꾸는 자이다. 그는 타인/대타자의 욕망에 의해 소외되어 있는 한, 진정한 자신, 진정한 주 체로 태어나지 못했을 것이다. 주체가 상징계에 들어갈 때 존재는 타자 적 이미지와 언어에 의해 소외된다. 그리고 주체탄생이란 소외를 댓가 로 지불하여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미켈란젤로, 여인, 인어는 프루프록의 주체에 대응되는 대타자로서 시니피앙의 연쇄를 일으키는 원인이다. 엘리엇은 억압된 인간의 욕망이 끊임없이 무의식의 구멍/환상 으로 출몰하여 미끄러지는 상징계의 전형적인 구조를 보여준다. 이때 되돌아오는 것은 대상 a와 실재계로서, 이들은 환상적 형태로 상징계에 침투하였다. 『J. 알프레드 프루프록의 연가』 는 값싼 식당과 호텔, 여인 들의 방, 바닷가, 바다 소녀의 방의 배경을 따라, 노란 안개, 향기, 베개, 복숭아, 인어의 노래 등으로 재현되는 대상 a등을 소개한다. 무엇보다도 이 시는 시적화자/주체가 대상 a를 통하여 상징계의 틈을 발견하고, 자 신의 쾌락을 추구하여, 시니피앙에 의하여 자신을 역설적으로 드러내는 언술행위의 주체/진정한 주체의 해방을 이루는 상징계의 연쇄작용을 효 율적으로 제안하고 있다.
우주 근원에 대한 철학적 물음은 인류역사의 시작과 더불어 시작되었 고 이러한 물음에 대한 답들은 대체로 형이상학적이었다. 그러나 최근 과학의 발달로 급격히 변화되어 가고 있는 포스트모더니즘 시대에서는 그동안의 형이상학적이었던 물음에 대한 새로운 접근방식이 요망된다고 할 수 있다. 시간과 영원, 그리고 우주 근원과 같은 철학적 의미가 내포 된 엘리엇의 『네 사중주』 중 제1부 「『번트 노턴』 을 과학에 기초된 양 자역학과 인도의 고전 『우파니샤드』의 진리들을 적용하여 새로운 관점 으로 파악하여 보았다. 그 결과 『번트 노턴』 에서 표현된 우주의 근원인 시적 등가물인 정점과, 헤라클레이토스의 로고스, 기독교의 하느님, 우 파니샤드의 브라만과 아트만 그리고 옴, 양자역학의 통일장과 같은 근 원적 원리들이 결국 조화된 하나로 통일되는 것임을 알 수 있었다. 이 러한 근원에 대한 진리 탐구의 목표는 궁극적으로 시간 안에서 영원성 을 발견하는 것이며, 그 결과로 체득된 지혜는 살아가고 있는 현상을 새로이 바라보고, 인간의 행복한 삶에 적용하는 것이라 할 수 있겠다. 엘리엇의 『네 사중주』도 이러한 관점을 염두에 둔 것이 분명하며, 본 논문의 연구 목적도 그러한 것이다.
엘리엇의 마지막 시 『리틀 기딩』 은 『황무지』로부터 시작된 그의 영 적 여행의 마지막 종착지라 할 수 있다. 신들의 성스러움과 상징과 신 화로부터 단절된 근대 산업사회의 도시인들은 이미 영적으로 죽어있다. 엘리엇은 글쓰기를 통해 그의 영적 여행을 시작한다. 이 순례는 미르체 아 엘리아데의 관점으로 볼 때, 속된 것으로부터 성스러운 것으로의 이 동이다. 인간은 본질적으로 잃어버린 낙원에 대한 강한 향수를 가지고 있다. 에덴에서 추방된 인간은 신을 중심으로 한 우주의 유기체적 네트 워크에서 떨어져 버렸기 때문에 영적 생명력을 상실해 버리고 속된 세 상에서 의미를 잃은 채 살고 있다. 그러나 속된 세상에서도 인간은 비 균질성의 성스러운 공간과 시간의 상징을 통해 신현을 체험하고 성스러 운 차원에 도달 할 수 있다. 엘리엇은 먼저 리틀 기딩에서 대극의 합일 을 보고, 원소들의 죽음을 통해서 신현을 체험한다. 그리고 그는 신현을 통해 성스러운 경지에 이르게 되고, 독일 폭격기가 불을 뿜으면서 런던 을 폭파하는 장면을 하늘로부터 성령이 비둘기처럼 내려오는 장면과 마 가의 다락방에 불과 함께 성령이 강림한 장면을 중첩시킨다. 가장 속된 것을 통해 가장 성스러움을 본 것이다. 이것을 통해 그는 세상에서의 성스러움은 성과속의 변증법을 통해 얻어진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주요어: 엘리엇, 리틀 기딩 , 엘리아데, 상징, 성과 속, 대극의 합일,
인간을 포함해서 우주만물을 지배하고 통치하는 “실체”의 존재 유무 를 단언하기란 어렵지만 다양한 종교들이 실체가 존재한다는 전제를 내 세우며 그 중심과 소통 또는 하나가 되는 것을 인생 최고의 목적으로 삼고 있다. 그리고 그 실체와의 만남에 이르는 방법 또한 몇 종류가 존 재하는 데 본 글에서는 요가를 통한 우주만물의 지존자와의 만남의 모 습을 살펴보았다.
지존자와의 만남을 이루는 방법 중에 하나를 힌두교에서는 요가로 설 정하고 있다. 그 요가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인간 개인의 생각 또 는 이기심을 버릴 것을 요구하고 있다. 엘리엇 또한 『네 사중주』에서 그 모습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바람 부는 밤의 광시곡』 은 T. S. 엘리엇의 초기시 중에서 가장 의미 파악이 힘든 시라고 볼 수 있다. 이 시는 전체의 이미지를 “비틀림,” “냄새,” “기억”이라는 단어들과 서로 연결시켜 놓았다. 『바람 부는 밤의 광시곡』 에서 화자는 바람 부는 밤 자정부터 새벽 네 시까지 도시의 가 로등 불빛과 달빛에 흔들리고 재배열되는 기억을 통해서 과거 속에 잠 자고 있는 또 다른 시간을 경험하게 한다. 본 논문은 엘리엇이 직·간접 적으로 베르그송의 시간 개념을 어떻게 광시곡에 펼쳐내는지를 살펴보 고자한다. 시인은 『바람 부는 밤의 광시곡』 에서 기억을 중심으로 비틀 어진 시간의 속성을 다시 흔들고 재배열하여 직선적 시간관을 극복해 보려한다. 본 논문은 『바람 부는 밤의 광시곡』 에서 엘리엇이 추구하는 베르그송적인 순수 기억이 순수과거, 즉 “버추얼”과 일맥상통하고 있음 을 밝혀내고자 한다. 그리고 시인은 “바람 부는 밤에”가 아닌 “바람 부 는 밤을 무대로” 해석할 만큼 시간과 기억의 타협 공간으로 “밤”을 사 용하였음을 보이고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