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나무 향기와 노래하는 지빠귀 새는 객관적상관물에 근거한 시인의 의식에서 창조된다. 철학자 데리다는 차이의 체계와 연쇄적 운동은 객관적상관물로 대체된다고 믿는다. 의식은 시간과 공간에 근거하여 과거와 미래가 유희가 되는 조건으로 존재(Being)에 도달 할 수 있다. 이 사랑을 부르고 또 사랑의 시를 쓰는 가치는 모든 가치를 능가하며 열계단 사다리의 가치에 못지 않다. 시간과 공간보다 절대적 우연의 맹렬한 일격을 철학자는 강조한다. 절대적 우연에 근거한 맹렬한 일격을 통해서 기표보다는 기의에 더욱 큰 가치가 부여되는 것은 부동하는 기표는 극소한 사상의 여유(극소한 유희의 간격)의 결핍 때문이다. 맨나는 이율배 반을 초극할 수 있는 의미론적 기능을 갖고 있으며 단순한 형태로 제로의 상징적 가치이며 부재의 음소가 아닌 제로음소이다. 소나무 향기가 기표에 근거한 것과 또 다른 형태의 존재(노래하는 지 빠귀새)는 기의에 근거하고 있다. 소나무 향기와 노래하는 지빠귀 새와의 관계는 사회과학이 아닌 생물학과 심리학을 통한 제로물체와 비종족의 종족과의 관계에 비유될 수 있겠다. 즉 구조들의 구조가 맹렬한 일격으로 언어가 될 수 있다. 이것이 철학자의 믿음이다.
본 논문의 목적은 엘리엇의 공동체관이 그의 종교, 앵글로 가톨릭과 관련되어 있음을 고찰하여 그의 공동체관이 보다 광범위하게 적용될 수 있는 종교적 원리를 가지고 있음을 규명하는 것이다. 엘리엇의 공동체 관에 대한 기존의 연구는 유럽 전통과 각 개별적 국가들의 특수성을 결합할 것을 추구하는 것으로 지적하였다. 그러나 이와 같은 결합은 매우 역설적이며 양립불가능하게 보인다. 이와 같은 역설적이고 양립불가능 한 결합의 양상을 적절하게 이해하기 위해, 본 연구는 앵글로 가톨릭시즘이 가지는 몇 가지 특징에 주목하였다. 앵글로 가톨릭시즘은 유럽의 가톨릭전통을 추구하면서 영국 지역의 특수한 상황을 결합하는 종교적 애매모호성, 성육화의 교리를 지적추구로 접근하여 신앙심을 고취시키는 교리적 애매모호성과 더불어 빅토리아 시대의 도시 빈민들에 대한 관심과 물질적 현실사회에서 종교적 이상을 구현하기 위한 노력을 탐색하였다. 이와 같은 앵글로 가톨릭시즘의 특징으로, 본 연구는 앵글로 가톨릭 시즘과 엘리엇의 공동체관이 관련되어 있으며, 그의 공동체관은 시·공간 적 특수한 요소로 한정되는 것이 아니라 유물론적 차원을 넘어서며 모든 상황에서 적용될 수 있는 보편적 원리를 제시한다고 주장한다. 만약 엘리엇 연구자들이 엘리엇의 종교관과 그의 종교 앵글로 가톨릭시즘과 의 관계연구를 더욱 면밀하게 수행한다면, 엘리엇의 문화와 공동체에 관한 더욱 광범위한 원리를 규명하여 현재에도 현실적으로 적용시킬 수 있을 것이다.
인간의 삶에는 항상 성스러운 것과 세속적인 요소가 상존해왔다. 엘 리엇의 작품에도 그러한 성스러운 것과 세속적인 요소는 매우 흥미롭게 뒤섞여 나타난다. 엘리엇의 변동이 심했던 종교적인 배경은 별개로, 엘 리엇은 고전문학의 유산을 충실하게 흡수했던 작가였다. 물론, 그 전통 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는 않았지만, 고전으로부터 그가 받았던 영 향을 고려한다면, 엘리엇은 고전을 호위하고 유지하려는 작가가 분명하 다. 하지만 동시에 그는 모더니즘을 형성하는 매우 혁신적인 인물이기 도 했다. 그렇기 때문에 그의 작품 속에는 매우 상반된 요소들이 공존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한편으로 그의 작품들은 매우 종교적이고, 철 학적이지만, 또 다른 한편으로 황무지와 J. 알프레드 프루프록의 연 가 와 같은 그의 작품 속에는 다양한 대중적인 요소들이 함께 공존한 다. 다시 말해, 가장 성스럽게 다루어지는 성경과 같은 텍스트가 아주 저속한 요소들과 병치되어 나타난다는 것이다. 이러한 성스러운 요소와 세속적인 요소의 공존에 대한 인식은 엘리엇 작품의 이해뿐만 아니라, 엘리엇의 개인적인 삶에 대한 해석의 관점도 함께 제시해 줄 것으로 여 겨진다.
T. S. 엘리엇은 「드라이 샐베이지즈」 작업을 통해 내면 여행을 떠난 다. 갈색 신인 강을 타고 개인 무의식을 지나 바다로 상징되는 집단 무 의식에 이른다. 집단 무의식에는 태고 적부터 초시간적으로 존재하는 수많은 원형들이 이미지를 입고자 의식의 자아를 기다리고 있다. 엘리 엇은 집단 무의식의 바다에서 수많은 사람들의 고통과 죽음의 이미지들 을 목격하면서 실의에 빠진다. 그러나 모성원형인 마리아를 대면하면서 치유가 이루어진다. 그리고 현자원형인 크리쉬나로부터 포기하지 말고 계속 전진하라는 충고를 통해 힘을 얻는다. 성자의 사명이 시간과 초시 간의 교차점을 포착하는 것이라는 삶의 목적을 제시받은 엘리엇은 만다 라 모양의 장미를 대면하고 자기원형을 상징하는 그리스도를 통해 대극 의 합일을 이룬다. 융이 주장한 개성화 과정은 의식과 무의식의 통합과 정으로서 엘리엇은 「드라이 샐베이지즈」 시작(詩作)과정을 통해 그의 무의식에 있는 강력한 누미노스의 에너지를 지니고 있는 원형들을 강, 바다, 성모 마리아, 크리쉬나, 장미, 그리스도 등으로 이미지화 하여 신 비롭고 난해한 창의적 작품으로 탄생시킨다. 이 개성화 과정이 상징화 과정이기도 하다.
본 논문은 에즈러 파운드의 「휴 셀윈 모벌리」와 엘리엇의 「제이 알 프레드 프루프록」에 관한 글이다. 엘리엇의 「프루프록」이 1915년, 파운 드의 「모벌리」가 1920년에 발표되었고 이들은 엘리엇과 파운드의 퍼소 나들이다. 궁극적으로 이들 시인들이 추구한 것은 영웅이지만, 그들이 제시한 인물들은 반영웅(anti-hero)으로 하루의 일상을 커피 스푼으로 재 는 소심한 사내들이다. 친밀했던 두 시인의 서간을 모아 출판된 책도 있지만, 파운드와 엘리엇을 한데 걸어 매는 연결고리는 문학적 모더니 즘의 대표적인 증상중의 하나인 여성혐오(misogyny)이고 파운드가 애써 부인하지만, 그들 각자의 퍼소나들은 그것들을 지어낸 시인들과 결부되 어 있다. 여성혐오라는 관점에서 볼 때, 일차대전 반전시이기도 한 파운 드의 「모벌리」와 엘리엇의 「프루프록」은 크리스테바의 비천(abject mother) 을 나타내고, 실질적으로 파운드와 엘리엇은 보통 그들의 후원자로 통 칭되는 남근적 어머니(phallic mother) 앞에서 힘을 잃고 위축된다.
T. S. 엘리엇은 콘라드, 조이스, 파운드, 베케트, 그리고 동시대의 다른 위대한 작가와 마찬가지로 망명자적 상상력을 가지고 있었다. 자신이 태어난 곳을 떠나온 작가들은 자신이 낯선 세상의 이방인이라는 것을 인식하고 있었다. 본 논문은 귀환에 대한 열망이 엘리엇의 주요시에 미 친 영향을 중심으로, 1914년부터 1950년대 후반까지 엘리엇이 느꼈던 이질감과 상실감을 논의하고자 한다. 황무지는 개인적·문화적 망명, 재의 수요일은 망명의 고통과 귀 환에 대한 희망을 노래한 송가, 네 사중주는 망명을 평생에 걸친 영 혼의 오디세이로 다시 표현한 작품이다.
T. S. 엘리엇은 「『율리시즈』, 질서, 그리고 신화」에서 제임스 조이스 가 신화적 영웅인 율리시스를 현대에 맞게 어떻게 다루었는지에 대해서 언급을 하고 제임스 조이스의 업적을 높이 평가하고 있다. 본 논문에서 는 엘리엇의 전통과 동시대성을 중심으로 동일한 신화적 인물이라도 작 가와 작품에 따라서 그 시대의 시대성을 보여주기 위하여 다양한 모습 과 성격으로 재조명될 수 있음을 연구하였고 여러 작가의 변화된 스토 리텔링은 이러한 모습과 성격을 보여준다. 테니슨, 스티븐스의 작품을 통해서도 스토리텔링의 기법을 적용해 볼 수 있다. 율리시스라는 인물 을 호머와 단테가 그리는 모습과 테니슨과 스티븐스가 새롭게 만들어내 는 모습이 다름도 스토리텔링 기법에서 찾아볼 수 있다. 테니슨이 율리 시스가 지식을 추구하여 항해를 끊임없이 하는 모습을 그렸다면, 스티 븐스는 지식 그 자체의 중요성에 더 의미를 부여하였다. 그리고 율리시 스를 오히려 정신적 항해를 하는 인물로 묘사하였다. 이러한 동일한 인 물의 다양한 묘사는 작가가 동시대성을 보여주는 스토리텔링 기법에 의 한 방법이라고 볼 수 있다.
T. S. 엘리엇은 『황무지』에서 자기실현을 성취하기 위해 종교적인 방 법 혹은 패러다임(기독교, 힌두교, 불교)을 고려하고 있고, 『칵테일 파티』에서는 현실적인 방법이나 패러다임(심리학 혹은 정신분석학)의 가능성 과 한계를 따져보고 있다. 각각의 작품은 이러한 엘리엇의 고려가 완전 히 이성적인 것에서 신비적인 영역으로 이동하는 지점으로 접근하고 있 지만, 엘리엇이 전통과 개인의 재능에서 말했듯이 자신은 그 사이의 경 계를 넘어서지는 않고 있다. 독자들이 반드시 숙고하고 해답을 구해야 하는 “압도적인 질문”으로 상상의 독자들을 인도하는 것은 바로 엘리엇 의 그러한 자제력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