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엇의 『네 사중주』는 자연에 나타난 이미지를 매우 중요하게 사용 하고 있는데, 이러한 이미지는 동양의 고전 『주역』에서도 매우 비슷하 게 나타나고 있다. 『주역』은 어떠한 복잡한 사상 체계라기보다 매우 간 단하고 명료한 자연의 이치를 담고 있는 동양의 고전으로서, 이후의 많 은 동양사상에 근본적인 바탕을 제공해 왔다. 이러한 자연의 이치는 매 우 정교하면서도 또한 보편적이기 때문에 이로부터 연역해 내는 많은 철학사상들은 매우 동양의 사회문화 사상의 바탕이 되어 왔다. 엘리엇 이 『네 사중주』에서 다르고 있는 이미지는 『주역』에서 삶의 근본 원리 로 삼았던 자연의 이미지와 매우 유사하게 다루어지고 있다. 불교의 영 향을 거치면서 『주역』에 내재된 사상이 직,간접적으로 엘리엇의 시학 및 사상을 형성하는데 영향을 주었을 것으로 사료된다. 특히 엘리엇 시 학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정지점의 개념은 『주역』에서 『중용』으로 이어지는 동양적인 중용사상과 매우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매우 형이상학적이고 관념론적인 것 같은 엘리엇의 핵심적인 시학 이론의 배경에 이와 같은 심원한 동양적 사상의 단초가 배태되어 있는 것은 매우 놀라운 일일 뿐만 아니라, 향후 중국의 문화를 이해하는 통섭적인 연구에도 많은 기여를 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엘리엇은 문화산업 활성화를 위해 기존 문화 파편들을 부정적으로 취 해 이를 창의적으로 융합하는 ‘소코’(socko)형 풍자를 사용하였다. 이 풍 자 형식은 문화계의 거장들이나 그 전통을 원용하거나 변용하는 방식으 로 폭력과 배재의 원리를 따르고 있다. 영미문화에서의 풍자의 맥은 엘 리자베스 시대만큼이나 오래된 ‘소극’의 정신에서 그 전통을 찾고 있다. 그는 오늘날의 대중문화산업에서도 유용한 방법인 부정적 유머와 풍자 를 과감히 사용한 작가이며 편집인이었다. 크라이테리언의 창간은 그 를 문화사업가로 볼 때 유럽사회에 전혀 다른 방식으로 기존 문화를 대 체하려는 창의적 혁신에 가까웠다. 그 이유는 소위 창의적 행위에 동원 되는 “부정적 규칙”(negative rules)에 있다. 엘리엇은 소위 ‘소코’ 문화를 새로운 형식에 담는 전략과 기법으로 부가가치를 창출한 문화 기업가라 할 수가 있다.
T. E. 흄은 인간은 본질적으로 선하다는 인간에 대한 “인본주의적 태 도”와 인간은 원죄를 갖고 태어난 본성이 악한, 고정된 그리고 한정된 존재라는 인간 본성에 대한 “종교적 태도”를 대비시킨다. 흄은 인간 본 성에 대한 “종교적 태도”를 가진다. 따라서 흄은 인간을 다스릴 훈련, 질서 그리고 조직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또한 흄은 인간은 불완전하기 에 필연적으로 완전한 존재인 하나님을 믿게 된다고 언급한다. 흄의 영 향으로 흄과 유사한 인간관과 도덕관 그리고 종교관을 갖게 된 T. S. 엘리엇은 「작은 영혼」에서 인간의 한계성을 인정하며 인간이 올바르게 성장하기 위해서는 훈련이나 억제 그리고 기도 같은 초월적 힘이 필요 하다는 도덕적 안내자의 모습을 보여준다. 본고에서는 이런 점에서 결 국은 죽음으로 끝나버리는 허망한 인간의 성장을 흄의 인간에 대한 “종 교적 태도”를 통해 살펴보면서 엘리엇의「작은 영혼」에 그려진 삶에 도 덕적이고 종교적인 의미를 부여해보았다.
본 논문은 노발리스의 미완성작인 『하인리히 폰 오프테르딩겐』의 신 화적 상상력과 파편성의 개념이 창출해 내는 불확정성의 의미에 대해서 논의하고자 한다. 이 소설은 낭만주의의 중요한 특징인 신화와 상상력 의 역동성이 유럽 전체에 영향을 주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한 가 지 흥미로운 사실은 신화적 상상력이 해석의 과정과 밀접한 연관성을 지니고 있다는 것이다. 노발리스는 이 소설에서 하나의 완결됨을 보여 주지 않는다. 흥미롭게도 작가가 일부러 끝내지 않았는지, 혹은 끝낼 수 가 없었는지 알 수 없지만, 미완성의 소설로써 파편성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본 논문은 소설에서 드러나는 그러한 미완성의 개념이 실패가 아니라, 전체를 드러내는 낭만주의적 방법임을 보여주고자 한다. 동시에 어떤 의미에서 T. S. 엘리엇과 낭만주의 사이에 연속성이 있는지 언급 될 것이다. 『하인리히 폰 오프테르딩겐』에 드러나는 신화는 창조적 상 상력의 근원이며 불확정성은 전체성이라는 측면을 논의함으로써, 우리 는 노발리스의 소설이 엘리엇의 작품들에 드러나는 파편성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얻을 것이다.
엘리엇은 이론과 실제, 즉 비평과 시 사이에 일관성이 없는 것으로 많은 비난을 받아왔다. 사실 엘리엇은 시간이 흐름에 따라 특히 개별 작가에 대한 비평적 관점이 변화한 것으로 유명하다. 엘리엇 스스로도 이를 의식하였으며, 이러한 비난에 대한 대안으로 그가 제시한 것은 시 적 기법이다. 엘리엇은 초기부터 시작 행위자의 비평을 줄곧 옹호해왔 듯이 창작행위는 비평에 우선한다고 하였다. 즉 그의 이론을 정당화하 는 것은 바로 시라는 덕이다. 그러나 엘리엇에게서 이론과 실제는 일방 적인 것이 아니라 상호적인 것으로 그의 시 이론과 시 창작행위 사이의 긴밀성을 추적하는 것은 궁극적으로 엘리엇의 몰개성시학을 정당화 하 는 작업이다. 이러한 점에서 시 기법은 엘리엇의 이론과 실제, 형식과 내용을 연결해 주는 수단이며, 동시에 시학이론—즉 시는 그 자체로 자 기 충족적이라는 이론—을 시험하고 정당화하는 수단인 것이다. 셰익스 피어, 단테, 형이상학파 시인, 상징주의자, 이미지스트 등은 모두 이러한 몰개성 기법의 연구자로서 엘리엇에게는 유의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