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연구는 엘리엇의 『네 사중주』의 「이스트 코우커」에 나타난 인간- 비인간(신)관계를 캐런 바라드의 인트라액션 개념으로 접근하여 환경적, 사회적으로 불확실성이 증대되는 현시대에 인간-비인간 관계의 윤리성과 비인간세계에 대한 인류의 인식변화 가능성을 생태비평적으로 규명 하려는 시도이다. 인류세 문제와 코로나바이러스와 같이 불확실성이 증가하는 현실에서 인간과 비인간세계와의 관계성은 저해되고 있다. 엘리엇의 작품에 나타난, 탈인간중심적인 관점과 관계를 형성할 때 인간의 태도, 그리고 그의 관계 형성에 대한 윤리관을 물성 생태비평의 이론으로 접근한다면, 관계 형성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실천적으로 제시할 수 있다. 본 연구는 먼저 바라드의 인트라액션 개념으로 미시세계의 미립자 수준의 운동 법칙과 기독교의 성육화의 역설적 상태와의 유사성을 중점적으로 다룬다. 다음으로 작품 속에 나타난 겸양의 지혜가 인간과 비인간의 관계에서 어떻게 필요한지 탐색한다. 마지막으로 『바가바드기타』의 교훈을 중심으로 엘리엇의 관계 형성의 윤리를 규명하여 이를 바라드의 인트라액션의 윤리성과 비교한다. 엘리엇의 작품에 대한 관계중심의 생태비평적 함의는 불확실성으로 혼란의 시대에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관계 형성에 대한 함의를 제시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본 연구는 T. S. 엘리엇의 『황무지』에서 엘리엇이 사용한 성경적인 유들을 중심으로 작품 내에 함의되어 있는 종교적인 의미를 분석해본 것이다. 『황무지』는 주지하다시피 엘리엇의 대표적인 초기 시로서 많은 이미지와 인유들이 가득한 난해한 시이다. 엘리엇이 1927년에 성공회로 개종을 하면서 그 후에 집필된 시들은 기독교적인 색채가 드러나는 시들을 많이 집필하였으나, 개종 이전의 시 작품에 함의된 종교적인 의미들은 난해함과 수많은 시적 장치들 그리고 신화적 인유들로 인해 비교적 간과하기 쉽다. 본 글은 엘리엇이 사용한 성경적 인유들에 근거하여 엘리엇이 종교적 신념을 자신의 시와 작품과 인생 전반의 지적 여정에서 얻고자 하였던 영적 깨달음과 지혜를 얻기 위한 하나의 신념 체계로 바라보았다고 이해한다. 이러한 관점을 통해 『황무지』는 단순히 개종 이전의 신화적인 인유들과 난해한 이미지만 있는 작품이 아닌 엘리엇이 암시적으로 나타내려 했던 종교적인 의미가 내재되어 있는 시임을 다시 금 확인할 수 있다.
우주 궁극에 대한 진리에 대한 이해는 인간이 어떠한 사유의 틀로 바라보느냐에 따라 다르고 그 표현도 달라진다. 우주 진리를 탐색하고 있는 엘리엇의 「번트 노턴」에 대한 이해도 마찬가지라고 생각된다. 그동안 대부분의 학자들은 「번트 노턴」에 대하여 서양적 사유의 틀인 표층 의식적이고 분별적인 방법으로 해석하였고 그 견해는 다양하였다. 서양의 기독교적 사고의 특징은 우주만물의 중심에 있는 근원을 마음바깥의 관념인 신으로 이해하는 외적초월주의였다. 반면에 동양의 불교는 모든 것이 마음이 지어낸다는 ‘일체유심조’의 관념이고 표층의식을 넘어 심층마음인 ‘아뢰야식’이 우주만물을 창조하는 근원임을 말한다. 우주 근원이 하나라는 원리는 동양과 서양이 다를 바 없지만, 사유의 틀에 따라 표현은 다르다고 하겠다. 필자는 동양 종교인 불교적 마음구조로 「번트 노턴」을 설명하였다. 심층마음인 아뢰야식은 인간이 살고 있는 기세간과 인간의 정신과 육체를 만들어내는 종자식이다. 이해를 돕기 위하여 불교의 기본교리인 십이연기, 사성제, 팔정도, 삼법인을 설명하였고 동양의 불교가 지혜에 초점을 둔 종교임을 밝혔다.
「하마」는 엘리엇의 성숙기 이전의 작품으로서 모두 9개의 연(stanza) 으로 구성된 단시이다. 이시는 『황무지』나 『네 사중주』에 비해 많은 관심을 끌지는 못했지만 엘리엇의 초기 시의 특성과 기독교와 교회에 대한 엘리엇의 생각을 살펴볼 수 좋은 자료를 담고 있다. 또한 「하마」는 성경에 수록된 「욥기」와 「골로세서」 그리고 「계시록」 등을 배경으로 창작되었다. 특히 「하마」는 신약 성경에 등장하는 라오디게아 교인들에게 물질주의와 신앙을 동시에 유지하는 태도에서 벗어나 진정한 기독교인으로 거듭나 천국에 입성할 것을 잘 보여준다. 엘리엇은 물질주의에서 벗어난 진정한 기독교인의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동물 “하마”를 창작하였다.
엘리엇의 비개성 시론을 의식하며 그의 시를 읽을 때 흔히 두 가지 도전에 직면하게 된다. 먼저 시인 자신의 경험 그리고 인성과 분리된 서정시가 가능한 것인가의 문제, 그리고 시인이 가공의 인물과 사건을 만들어서 시인과 구분되는 시적 화자나 제재를 사용하더라도 심리적 관점에서 이 비개성적 장치들이 시인의 심리적 경험이나 성향을 반영하지 않을 수 있는가의 문제가 그것들이다. 당시 프로이트의 영향의 규모로 볼 때 그의 영향이 엘리엇에게 미치지 않았을 가능성은 매우 낮다 또한 융의 집단무의식과 엘리엇의 전통의 개념은 개인보다 인류가 축적해온 총체적 심리와 문화에 더 큰 가치를 부여함으로써 의미 있는 공통점을 보여준다. 또한 두 사람은 현대적 소외의 문제에 맞서 신화에 새로운 해석을 가하거나 신화적 세계관의 도입을 주창하였는데 그 공통된 목적은 근원적 존재와의 연결을 통해 현대인의 삶을 이해하고 문제를 해결 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입장이었다. 나아가 융이 집단무의식에 상정한 원형은 많은 신비적, 초월적 요소를 포함하고 있는 엘리엇의 시를 효과적으로 읽을 수 있는 관점이 될 수 있다. 그 가운데 엘리엇의 초기 시에는 페르소나, 그림자 그리고 아니마의 특징과 연결시켜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 풍부하게 발견된다.
『대성당 살인사건』에서 엘리엇은 하늘의 율법과 땅의 법이 충돌하는 양상을 그린다. 교회는 문제나 사건들을 율법이나 성령의 감화로 해결해왔고, 세상은 헌법이나 법률로 해결해왔다. 교회에서는 사제들이 주로 그 임무를 담당하지만, 세상에서는 대법관이 그 임무를 담당하였다. 이 처럼 현실세계와 이상세계의 교차점에 토머스 대주교가 있었다. 당시 헨리 2세는 통치의 효율성을 위하여 교회를 통하여 손쉽게 처리하려 했다. 즉 세상의 법에 교회의 법을 포함하는 계략을 세웠다. 그것이 바로 클라렌든 칙령이었다. 일촉즉발의 상황에서 토머스 대주교는 이를 거부 하고 7년간 프랑스로 망명했다가 순교하기 위하여 귀환한다. 그는 유혹 자들과의 대화에서, 자신의 삶과 의지가 야망과 쾌락으로 인해 암흑의 핵심인 지옥까지 연결되어 있음을 깨닫고 계획했던 순교의 의미를 재정립하게 된다. 그는 두려움이나 공포로부터 자유로워져서 기사들을 맞이 하고 결국 순교된다. 토머스의 피는 예수의 보혈처럼 헨리 2세의 질주 를 그치게 만들고, 교황과 화해를 이끌어, 캔터베리/땅과 천국에 진정한 평화가 깃들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