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연구는 엘리엇의 제국이 언제나 “이상”이었다는 커모드나 마샬의 주장과는 달리, 엘리엇의 제국은 “현실”이었음을 증명하기 위해, 엘리엇이 중요하게 여긴 두 명의 작가, 러디어드 키플링과 조셉 콘래드에 대 한 그의 평가를 살펴보고자 한다. 키플링은 엘리엇이 평생 좋아했던 작가였으며, 콘래드는 『황무지』와 「텅 빈 사람들」의 제사를 제공했던 작 가였다. 엘리엇은 이 두 작가가 제국주의에 대해 다른 입장을 갖고 있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젊은 시절의 엘리엇은, 제국주의와는 전혀 관계없이, 두 작가를 문학의 잣대로만 평가를 했다. 그는 키플링을 가까스로 위대한 작가로, 콘래드를 위대한 소설가라고 평가했다. 그러나 노년의 엘리엇은 반제국주의자였던 콘래드에 대해서 거의 언급하지 않았으나, 제국주의자였던 키플링의 시 선집을 출판하고, 그를 옹호하는 글을 썼다. 그리고 이 글에서 엘리엇은 키플링이 대영제국에 대해 취한 입장의 의미와 의의를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위 사실에 근거하여, 본 연구는 엘리엇이 제국주의에 대해 상반된 입장을 취한 키플링과 콘래드 를 어떻게 이해했는지, 그가 두 작가와 제국주의에 대한 평가가 어떻게 변했는지 살펴보고, 그 의미와 의의를 살펴보고자 한다.
「게론티온」은 엘리엇이 『황무지』의 서시로 사용하려는 의도였다는 점에서 기독교적 시각으로의 감상이 가능하다. 본 연구에서는 기독교의 『성경』에 나타난 내용을 「게론티온」에 적용하여 감상해 보았다. 엘리엇 은 「게론티온」의 첫 도입부터 종결부까지 『성경』에 나타난 내용을 사용하고 있다. 첫 도입부에는 장기간 가문이 계속되는 장면이 연출된다. 이것은 인간이 회개하고 하나님께 돌아오기를 희망하는 메시지를 담고 있으며 인간이 하나님의 뜻을 외면하고 우상숭배에 몰입한 장면을 4명의 외국인들의 모습을 통해 전달한다. 특히 인간이 기독교를 도외시한 결과 사랑과 자비로 상징되는 예수 그리스도가 호랑이 예수 그리스도로 변환되어 출현하기 계기를 맞이하게 되며 급기야는 지상 밖으로 퇴출당하는 모습이 등장한다. 종합하면 「게론티온」 전체는 도입부부터 종결부에 이르기까지 『성경』의 내용을 엘리엇이 적절히 인유하여 기독교적 의미를 효과적으로 전달함을 알 수 있다.
본 논문의 주요 목적은 T. S. 엘리엇의 신학사상에 대한 최근 연구들 을 엄밀하게 검토함으로써 그의 신학사상의 올바른 이해를 위한 ‘지도’ 를 그리고자 한다. 검토 대상이 된 연구서들은 『“종교는 앵글로-가톨 릭”: T. S. 엘리엇과 기독교, 『T. S. 엘리엇과 기독교 전통』, 『신에 대한 지도 제작』, 『모더니즘 시대의 시와 신학』이다. 스퍼의 연구서는 엘리엇의 기독교 사상에 끼친 앵글로-가톨릭주의의 지속적인 영향을 최초로 세밀하게 분석하고 있지만 성육신과 같은 앵글로-가톨릭주의의 교리 라는 ‘고정된 눈’을 가지고 지나치게 좁게 엘리엇의 작품들을 들여다보는 경향이 있다. 『T. S. 엘리엇과 기독교 전통』의 경우에는 지금까지 간과되었던 프랑스 작가들과 신토마스주의 영향을 해명하고 있지만 엘리엇의 신학사상의 형성에 있어서 칼 바르트와 다른 개신교 신학자들의 중요성을 놓치고 있다. 도메니스코는 칼 바르트의 신정통주의에 대한 엘리엇의 증대되는 관심에 대해 통찰력을 지니고 설명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엘리엇의 기독교사상의 ‘지도’에서 이를 정확히 자리매김하는데 실패하고 있다. 도메니스코와 달리 수드는 엘리엇의 『네 사중주』에서 바르트 신학의 흔적의 파고들지만 이 지난한 탐사는 설득력 있는 분석이 결여된 채 두 사상가를 기계적으로 병치하는데 머무르고 있다.
연초에 에밀리 헤일에게 쓴 엘리엇의 편지가 공개되며 그들 사이의 관계에 대해 많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헤일이 엘리엇의 뮤즈였는지, 그렇다면 그 정도는 어떤 것인지, 그리고 수십 년간 이어져 온 그들의 관계가 결혼으로 이어지지 못한 이유는 무엇인지 등에 대한 의문이 편지 공개를 통해 어느 정도는 풀릴 것으로 기대된다. 간접적으로 그리고 부분적으로 공개된 편지에 의하면 헤일은 예상했던 것보다 강력한 엘리 엇의 뮤즈였으며 작품에 끼친 영향 또한 상당했던 것으로 판단된다. 하지만 그들이 맺어지지 못한 것은 두 사람의 성향이나 추구하는 가치에 차이가 있었고, 엘리엇이 헤일의 역할을 문학적 영감의 원천으로만 한 정한 데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 반면 헤일은 엘리엇과의 관계에 대해 강한 자부심을 가지고 결혼을 기대한 것이 드러난다. 이 글에서는 그들의 맺어지지 못한 사랑이 엘리엇의 작품에서 어떻게 원재료로 쓰이고 있는지를 추적한다. 엘리엇이 개인적 측면에서 한계를 설정했던 헤일과 의 관계는 그의 문학적 상상력과 결합하여 매우 풍부한 소재로 작동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황무지』의 히아신스 소녀, 「눈물 흘리는 소녀」 의 주인공, 그리고 『재의 수요일』의 숙녀, 「번트 노튼」의 장미 정원의 소녀는 모두 헤일을 연상시키는 인물들이다. 하지만 동시에 엘리엇의 작품 속에서 헤일과 그녀와의 관계는 특유(特有)함과 구체성을 결여하여 다른 해석의 여지를 남기고 있다.
본 논문의 목적은 제1차 세계대전 이후 비슷한 시기에 쓰여진 T. S. 엘리엇의 『황무지와 스티븐 스펜더의 『비엔나가 각각 어떻게 1인칭 대명사를 사용했는지를 탐구함으로써, 유럽의 분열과 정치사회적 탄압 이라는 주제가 각 시에서 어떻게 표현되었는지를 조명하는 것이다. 1인 칭 대명사 사용에 대한 연구는 시인이 “얼마나”, 또 “어떻게” 자신의 시 에 직접 개입하여 (정치적) 메시지를 전달하려 했는지를 알기 위한 중 요한 작업이다. 이 논문에서는 먼저 『황무지속의 1인칭 대명사 “I”의 정체를 찾기 위한 과정이 유럽의 분열이라는 시적 주제를 어떤 방식으 로 표현하고 있는지를 탐구할 것이다. 그 다음, 『비엔나에서의 “we”와 “they”의 병치가 어떻게 사회주의자들을 향한 정치적 탄압 뿐 아니라 동성애자들을 향한 사회적 탄압을 반영하고 있는지에 대하여 논할 것이 다.
이 논문은 T. S. 엘리엇의 시와 에세이 분석을 통해 그의 글이 담고 있는 반민족주의적 사상을 그가 꿈꾸던 유럽의 문화적 통합과 관련하여 연구한다. 이를 통해 그의 반민족주의는 일종의 확장된 민족주의이며, 그의 이러한 범민족주의는 민족주의의 원초적인 관점과 도구적 관점에 기반하였음을 밝힌다. 엘리엇은 제1차 세계 대전 후 유럽 국가들 간의 전쟁을 강하게 반대했고, 유럽은 평화를 위해 연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가 민족주의를 반대한 이유는 민족주의가 유럽의 문화 통일에 방해가 되기 때문이지 민족주의 자체의 논리에 결함이 있기 때문이 아니었다. 따라서 유럽 문화 통일을 주장하는 엘리엇의 반민족주의가 민족주의의 기반 위에 세워졌다는 것은 전혀 모순되지 않는다. 그의 반민족주의는 민족주의에서 중요하게 취급되는 민족 구성원의 “의지”와 민족국가의 형성과 유지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전통”에 관한 개념을 민족주의와 공유하고 있다. 이는 민족의 동질성 회복이라는 민족주의적 관점에서 남북통일을 생각함과 동시에 세계 평화를 위해 각 국의 민족주의를 경계해야 하는 한국 독자들에게 의미하는 바가 크다. 인류는 언제나 과거를 통해 배우기에 한국에서 엘리엇 읽기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