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 S. 엘리엇의 대표작인 『황무지』는 그 주제의 방대함과 구성의 복 합성으로 인해 작품을 이루고 있는 부분을 독립적으로 살펴보아도 문학적으로 분석할 만한 가치가 충분하다고 할 수 있다. 대부분의 기존 연구들은 『황무지』 전체를 관통하는 관점에서 작품을 평가해 왔는데, 본 논문은 『황무지』의 두 번째 파트인, 체스게임 (“A Game of Chess”)에 대해서 보다 집중적인 분석을 도모해 보고자 한다. 『황무지』는 전체가 하나의 작품임에도 개별적인 파트에 대한 분석 역시 어느 정도의 의미가 있음을 알 수 있었다. 특히 2부 체스게임 은 그것이 포함하고 있는 회화적 이미지의 상징성, 그리고 후반부 등장인물들의 파편적인 대화와 몽타주 기법 같은 장면의 병치는 2부를 독립적으로 떼어 살펴볼 수 있을 만큼 매우 상징성이 깊다고 할 수 있겠다. 엘리엇은 긴즈부르그의 관점에서 본 것처럼, 가장 자신이 드러나지 않는 방식으로 자신의 지문 을 확실하게 드러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마치 몰개성의 시학이, 바로 그 몰개성성으로 인해 다른 어떤 시학과도 차별되는 역설을 구현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부르조아의 실내라는 매우 독특한 소재를 마치 회화처럼 제시하는 2부 도입 부분과, 당시 영화의 기법으로 사용되었던 몽타쥬 기법이 매우 효과적으로 사용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자신의 특성이 가장 덜 드러나는 방식으로 자신을 가장 확고하고 분명하게 드러낸 작가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엘리엇은 비비엔과의 이혼과 헤일과의 재혼을 간곡히 소망하며 「재의 수요일」을 썼으나 결국 이혼도 재혼도 못했다. 엘리엇과 헤일의 관계는 1930-56년간 그들의 연서와 1963년 엘리엇의 입장문에서 밝힌 바와 같이 사회법과 교회법을 넘지 못했고 결국 명예로운 관계로 끝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엘리엇이 헤일에게 보낸 연서는 그들의 깊은 사랑과 헤 일의 영향력을 증명하였고, 그의 1963년 입장문은 그들의 슬픈 운명을 재확인시킨다. 엘리엇은 이미 「재의 수요일」에서 그의 간절한 사랑과 이로 인해서 용서받을 수 없는 그들의 죄의식과 슬픈 운명을 예감하였고, 오직 하나님의 자비와 용서를 간구할 뿐이었다. 따라서 그는 자신의 연인이자 뮤즈, 그리고 비공식 아내인 헤일을 현재나 미래의 시간의 차원에 둔 것이 아닌 영원의 차원의 성령과 같은 존재로 박제하고자 했던 것 같다. 이런 재의 수요일의 침묵의 여인은 죄인들/우리들을 위하여 기도하는 성모와 같은 모습의 여성적 원형에 성령 하나님의 영성이 반영되어 영원히 아름답고 성스럽게 빛나게 된다.
『황무지』 전체의 핵심어에는 ‘기독교’가 자리 잡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Ⅴ부인 「천둥이 말한 것」에는 기독교적 시각으로의 연구가 수행되지 않았다. 그래서 이 연구는 기독교를 핵심어로 설정하여 추적해 보았다. 사실 「천둥이 말한 것」이란 제목의 출현부터 『성경』에서 출발했으며 이어서 엘리엇은 기독교의 핵심축인 예수 그리스도의 체포와 예수 그리스도의 부재를 물과 가뭄의 이미지로 사용하며 또한 천둥 역시 『성경』에도 그대로 나타난다. 아울러 자기 희생과 헌신에 대한 이야기 역시 기독교 『성경』에 그대로 나타나는 것으로 보아 「천둥이 말한 것」의 핵심에도 기독교가 자리 잡고 있음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