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한 세기동안 모더니즘에 대한 다양한 탐구와 논의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모더니즘의 미학이란 문제는 전반적으로 그 논의에서 배제되었다. 많은 비평가들이 19세기의 낭만주의와 심미주의에 대한 반대로 시작한 모더니즘의 대표적인 특징으로 새로움을 꼽았고, 그에 대한 논의는 너무도 많다. 이제 모더니즘의 미학의 의미와 의의를 검토하는 일은 무척 가치 있는 일이다. 모더니즘의 미학을 탐구하는 과업은 한 편의 논문에서 살펴보기엔 너무 방대하고 다양하기에, 본 논문은 에즈라 파운드와 T. S. 엘리엇의 작품에 국한하여 모더니스트 미학을 탐색하고자 한다. 매간이 『텍스트의 조건』에서 논의했던 “언어적 약호”와 “서지 학적 약호”에 근거한 두 가지 다른 독서에 근거하여, 본 논문은 두 모더니스트 시인이 아름다움에 대하여 매우 다른 견해를 발전시켰으며, 그에 따라 매우 다른 작품을 썼다는 것을 밝히고자 한다.
본 논문의 목적은 1927년 엘리엇의 개종 이후 출판된 「동방박사들의 여행」을 시적 화자인 동방박사의 종교적 명상이라는 주제로 살펴보는 것이다. 이 시는 동방박사가 자신의 과거 경험 즉 아기 예수 탄생을 목격했던 경험을 회상하고 그 의미를 생각하는 종교적 명상이다. 그리고 이 작품의 제목을 이루는 “여행”은 신비주의적 관점에서 하느님과의 만남을 추구하는 영적 여정 혹은 과정을 의미한다. 비평가들은 아기예수 탄생을 목격했던 경험에 대한 동방박사의 반응이 부적절하다고 평가했지만 그 경험 이후 구체제에 대한 그의 불편함과 새로운 믿음에 대한 그의 관심을 지적하였다. 이것은 스미스나 기쉬 등과 같은 비평가들이 이 작품에서 신비주의적 요소를 지적하게 하였으며 스미스는 동방박사를 십자가의 성 요한의 『가르멜의 산길』에서 묘사된 구도자와 비교하기도 하였다. 엘리엇의 후기 작품들에는 기독교 신비주의자들의 작품에서 나온 인용이나 제사들이 자주 등장하며 1926년에 행해진 클라크 강연에서도 그의 작품에 주로 인용되었던 십자가의 성 요한을 포함한 스페인 신비주의자들에 대한 내용이 나온다. 비평가들이 이 작품을 십자가의 성 요한의 작품과 비교했다면 필자는 같은 스페인 신비주의자로서 이냐시오 성인의 『영신수련』의 종교적 묵상을 동방박사들의 여행과 비교해 보았다. 필자는 이냐시오식 묵상의 한 단계인 장소구성이 엘리엇의 이 작품에 적용될 수 생각하는데, 이 장소구성은 종교시에 중요한 요소이고 또 엘리엇의 작품 중 특히 1연에서 표현된 화자의 힘들고 고통스러운 여행 묘사에 적용될 수 있다.
본 연구는 『네 사중주』에 대한 기독교적 평가의 내용과 엘리엇이 묘사한 “사랑”의 의미를 고찰한 것이다. 먼저 대다수의 평자들이 『네 사 중주』의 중심에는 기독교적 사고가 내포되었다고 주장한다. 즉, 인간과 하나님 사이의 관계를 묘사하면서 인간이 하나님의 뜻을 찾고 순종하게 되면 무시간의 경지에 도달할 수 있다는 내용이 『네 사중주』 전체의 핵심 내용이라 주장한다. 그리고 엘리엇이 묘사하는 “사랑” 역시 기독교적 논리와 유사하다는 사실을 본 연구를 통하여 알 수 있었다. 부연하면 사랑은 만물을 이동 또는 변화시키는 원동력이지만 개인적 욕구나 이기심이 배제되어야만 그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는 논리가 『네 사중주』에 그대로 투영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T. S. 엘리엇의 첫 시집에 포함되어 있는 「울고 있는 소녀」(“La Figlia Che Piange”)는 「프루프록의 연가」(“The Love Song of J. Alfred Prufrock”)나 「여인의 초상」(“Portrait of a Lady”) 등과 같은 엘리엇의 초기의 걸작들에 비해 그리 많은 비평적 관심을 끌지는 못했다. 이 시의 아름다움이나 서정성은 종종 주목을 받아왔지만 불안정한 화자에 대해서는 더 많은 논의가 필요하다. 「울고 있는 소녀」는 남성화자가 연인과의 이별을 반추하는 시로서 시적발화로 기억을 되살리고 또한 변화시키는 과정을 보여주는데, 명령법, 대과거의 가정법, 그리고 직설법을 사용 하는 세 개의 운문단락으로 구성되어 있다. 문법적으로 복잡한 맥락에서 내면으로 향하는 화자의 시선은 엘리엇의 여타의 시에서와 같이 불안정한 자아를 발견하게 되지만, 바로 이러한 과정을 통해 「울고 있는 소녀」는 월러스 스티븐스의 “충족을 찾고 있는 의식의 시”가 되어 현대 시를 논하기 위한 유용한 출발점으로 기능할 수 있다.
본 논문의 목적은 1914-1922년 사이에서 모더니즘의 최고 시인 엘리엇과 보티시즘의 창시자이자 소설가-화가 윈덤 루이스의 관계를 천착하는 것이다. 다빈치에 비견된다고 당대에 호평 받은 루이스의 걸작이 논 란의 여지없이 <T. S. 엘리엇>(1938) 초상화인 것은 모더니즘 두 작가의 친밀한 관계를 더욱 돋보이게 하는 것으로 여겨진다. 이 논문은 『T. S. 엘리엇의 서한집 1: 1898-1922년』(2009)과 『루이스의 서한집』(1963)에 수록된 다양한 서신들을 집중적으로 탐색하고, 루이스가 편집한 『블라스트』지와 엘리엇이 편찬한 『크라이티어리언』지, 나아가서 보티시즘과 모더니즘까지 조명하고 있다. 아울러 루이스의 보티시즘 소설 『타르』 (1918)의 엘리엇 서평인 「타르」(1918)와 모더니즘의 걸작 『황무지』 (1922)에서의 짧은 원용은 두 작가의 친밀한 상호 관계를 잘 반영하고 있다. 이 연구는 『T. S. 엘리엇의 서한집 2: 1923-1925년』과 『루이스의 서한집』을 지속적으로 연구함으로써 엘리엇과 루이스의 관계를 재조명하 게 되는 초석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