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 S. 엘리엇의 대표작인 황무지에는 다양한 신화적 요소가 혼재한다. 제임스 프레이져의 『황금가지』를 비롯, 제시 웨스턴의 『제식에서 로맨스로』에 등장하는 고대의 희생제의 의식과 중세의 신화까지 매우 다양한 신화적 요소들이 공존한다. 이러한 대표적인 신화들과는 달리, 비록 엘리엇이 명시하지는 않았지만, 『황무지』에는 또 하나의 의미 있는 신화적 요소를 발견할 수 있는데, 그것은 바로 토성신화라고 할 수 있다. 간단하게 말한다면, 토성신화는 보편적인 아버지와 아들의 갈등관계가 심리적으로 재현된 구조를 가지고 있다. 세익스피어의 『햄릿』을 비롯, 그리스 신화의 제우스와 크로노스의 서사는 물론, 프로이트의 오이디프스 콤플렉스에 이르기까지 토성신화가 가지고 있는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에 대한 상징성은 매우 광범위하게 나타난다. 이런 관점에서 『황무지』에서 토성신화가 차지하는 의미를 살펴보는 것은 매우 의미 있는 작업이라고 할 수 있다. 엘리엇이 『황무지』의 가장 중요한 인물이라고 설명했던 티레지아스의 존재나, 『햄릿』과 내용적인 유사성을 가지고 있는 토마스 키드(Thomas Kyd)의 『스페인 비극』 등과 같은 요소들은 명백히 그 저변에 토성신화의 원형이라고 할 수 있는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에 대한 상징성을 가지고 있으며, 이것은 작품이 담고 있는 가장 근원적인 정서인 멜랑콜리를 표현하는 데 상당한 기여를 하고 있다.
전통의 개념과 몰개성시론을 주창한 T. S. 엘리엇의 「전통과 개인의 재능」은 후속 문학이론, 문화이론에 의해 광범위하게 논의되고 비판을 받아왔다. 이러한 획기적인 비평문에 대한 다양한 반응과 반박 중에 여성 시인들의 직접적인 반응은 거의 보이지 않는다. 이에 따라 본 연구는 비숍이 대학시절에 작성한 「소설을 위한 차원들」이라는 제목의 글에 초점을 맞추어 비숍이 현저히 다른 수사적 장치로써, 엘리엇의 “현존하는 기념비들”에 대한 개념과 전통관에 어떻게 대응하는지 살펴본다. 비숍은 「소설을 위한 차원들」에서 「엘리엇의 전통과 개인의 재능」을 인용, 재인용하면서 소설 창작의 진행, 소설 내에서의 행위의 지속적인 재조정, 질서를 형성하는 현존하는 기념비들에 대해 논의한다. 본고는 이 두 편의 비평문과 엘리엇의 「시의 현대적 경향」과 함께, 기념비와 시에 대한 두 시인의 생각을 담은 작품들을 비교한다. 엘리엇의 황무지는 세계대전 이후의 파편들로부터 문학과 문화의 기념비를 구축하고, 시인 자신의 일차적 경험으로부터 거리를 둠으로써 작품을 몰개성적으로 만들어보려는 시도이다. 반면 비숍의 「기념비」와 「시」는 초월과 정통, 주제의 종결에 대해 의문을 가지며, 시인의 개인적 삶, 기억, 가족의 역사로부터 도피하지 않는 작품이다.
「바람 부는 밤의 랩소디」의 공간적 배경이 현실이 아닌 악몽과 같은 꿈속이고 시간적 배경은 하루 중 가장 어두운 시간인 자정 열두 시에서 네 시 사이로 유령이 출몰하는 시간으로 알려진 시간이다. 그곳에 고독과 우울에 사로잡힌 화자가 있었다. 현실을 살아가는 화자의 꿈속에서 그가 기억의 밑바닥을 체험하게 된다는 줄거리는 자체만으로도 악몽과 같은 스토리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본 논문은 독자의 관점에서 베르그송의 기억원리를 대입하여 화자의 기억을 해체하고 해결점을 구하는 데 의의를 두었다. 가로등이 제시하는 순수기억 속에서 화자는 자신의 부분기억을 발견한다. 그의 기억은 어린 시절부터 있었던 도둑질과 살인이었는데 마치 세상 모든 만물이 그에 대한 기억을 망각한 듯하였다. 하지만 달과 기억의 현현에서 화자는 기억이 소멸된 것이 아니라 영원히 남아있음을 목도하게 된다. 달의 만물을 쓰다듬는 손가락과 가로등의 ‘생명을 준비하라’는 마지막 명령, 열쇠, 층계에 놓인 작은 등불을 통하여 화자에게 희망을 암시한다. 화자의 내면의 ‘칼의 마지막 비틀림’을 통해 모든 죄와 기억이 달의 순수기억으로 깨끗이 정화되어 바뀌는 일련의 기억과정들을 엘리엇은 「랩소디」를 통해 증명한다.
엘리엇이 『네 사중주』에서 추구하는 것은 현상계에서 육화된 신, 즉 성육신이다. 시간에 속박된 인간들은 무시간계를 직접 경험할 수 없다는 인식아래 엘리엇은 다양한 환경에서 드러나는 초월계의 모습을 찾으려고 노력하며 그 경험의 성격을 묘사하고자 노력한다. 시간과 관련해서 엘리엇이 상정하는 존재방식은 세 종류이다. 먼저 시간을 초월한 세계, 즉 시간의 흐름과 관련이 없는 무시간계, 시간의 지배를 받아 생로멸사(生老滅死)하는 현상계, 그리고 마지막으로 현상계에 실현되지는 않았지만 실현될 수 있었던 가능계가 그들이다. 엘리엇은 이 가능계는 현상계가 가진 구체적이고 개별적인 특성 없이, 현상계와 초월계 사이에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엘리엇은 인간들이 경험할 수 있는 초월계는 이 가능계를 통해서라고 본다. 융은 인간의 의식은 무의식에서 비롯되었고 무의식이 힘이 압도적으로 크기 때문에 의식이 무의식의 전체, 혹은 정신 전체의 원리인 ‘자기’를 인식하는 방식이 인간의 신에 대한 관계의 심리적 기초가 된다고 보았다. 하지만 무의식의 내용은 꿈, 환상, 백일몽과 같이 주로 수동적인 양태로만 의식에 전해지는 문제가 있다. 융이 이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고안한 것이 ‘적극적 상상’이다. 의식의 작동을 최소한으로 해서 무의식을 불러들이되 무의식에 의해 압도되지 않은 채로 무의식이 가진 주제를 기억하고 기록할 수 있어야 하는 어려움이 있다. 엘리엇과 융이 『네 사중주』와 적극적 상상에서 추구하는 것은 초월적 세계라는 공통점이 있다.
개종 이후 T. S. 엘리엇은 문학 평가에 있어 엄격한 도덕적이고 종교적인 면을 강조한다. 낯선 신을 찾아서: 현대 이단의 입문서에서 엘리엇은 도덕가로서 ‘전통,’ ‘정통,’ ‘이단’ 그리고 ‘모독’이란 비평의 개념을 전개시키면서 현대 문학의 효용성을 평가한다. 토마스 하디는 불가지론자, 무신론자로서 여러 시를 통해 하나님을 부정하고 구원을 거부하고 예수님의 존재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하는 내용을 표현한다. 엘리엇은 전통적인 종교적 신앙인 기독교 정통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개성을 강조하고, 자유주의적 윤리나 종교, 퇴폐적인 감상주의, 기괴함 그리고 악마적인 요소를 시에 드러내며 자신만의 ‘낯선 신’이나 신화를 찾는 하디를 낯선 신을 찾아서에서 ‘이단’으로 공격한다. 본고에서는 하디의 시를 통해 “믿음의 징조”인 ‘모독’과는 다른 특징을 가진 그의 이단성을 살펴본다.
병치기법은 1920년 출판된 엘리엇의 시집 『시』에서 가장 혁신적이며 전형적인 몰개성 기법 중의 하나이다. 1917년에 출판된 『프루프록과 기타관찰』의 시가 주로 지배적인 하나의 관점을 보여주며 극적인 기법을 더 원용했던 반면, 복잡한 목소리를 보여주는 『시』는 이미지나 상징 같은 암시적 기법에 더 의존한다. 형이상학파의 위트와 상징주의자의 상징, 조이스의 소설적 방법 등이 동시적으로 적용되면서 암시기법이 더욱 복잡해짐에 따라 의미의 명징성을 해하지 않고자 엘리엇은 『시』에서 인칭대명사의 사용을 급격히 줄이고 병치기법을 전면에 내세운다. 엘리엇의 독자적인 ‘신화적 방법’은 병치를 더욱 엄격하게 적용하여 순식간에 패러독스를 불러일으키는 암시기법에 다름 아니다. 이미지뿐만 아니라 보이스, 레지스터, 배경, 시간, 언어적 요소, 내러티브 프레임, 그리고 문법구조를 망라하는 엘리엇의 병치기법은 과감하게 논리와 코멘트를 생략하고 이질적인 것을 나란히 놓음으로써 그가 『시』에 수록된 사행시에서 구하고자 한 몰개성의 핵심 자질을 가능케 한 기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