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엇과 브래들리의 ‘무매개경험’은 주체가 세상을 경험하는 원재료 로서 이 경험을 원재료로 하는 인식은 관계적 영역에서 일어나는 현상 으로 시간과 공간이 개입하는 것은 물론이고 인간이 가진 여러 감각, 인식 장치가 그 형성에 작용한다. 무매개경험과 관계적 인식을 이어주 는 개념들로 ‘유한중심’ ‘관점’ ‘느낌’ 그리고 ‘자기’와 같은 말이 등장한 다. 이 개념들은 주로 무매개경험이 개인적인 차원에서 발생하는 일이 고 그렇기에 세상을 이해하는 문제에 있어 개인적인 한계와 차이가 발 생한다는 견해를 내포한다. 충분한 수의 개인적인 관점들이 동의하는 바가 현실세계에서 진실 혹은 실제(real)가 된다고 엘리엇과 브래들리는 보았다. 이 같은 상대주의적 입장은 그들이 기본적으로 상정한 관념적 인 세계관과 일치하지 않는다. 종교적인 믿음이나 의식수행과 같은 전 통적인 세계관과 경험적이며 물질적인 세계관이 충돌하는 것은 당시의 흔한 일이었다. 이 같은 복합적인 세계관은 당시 태동하던 과학적인 방 법론을 기초로 하는 신학문인 심리학에서도 나타난다. 특별히 융의 분 석심리학은 형이상학적이며 신비적 관점을 심리학 범주 안에서 다루고 있다.
황무지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 ‘불모지가 되어버린 현대문명’의 저 변에는 남녀문제가 있다. 특히, 황무지의 2부 「체스게임」에는 결혼한 부부간의 남녀문제가 깊이 있게 조명되고 있다. 체스게임을 하듯, 남자 와 여자는 각각 자신의 이익에만 몰두하고 상대방을 사랑하거나 이해하 려 하지 않고, 오히려 맞서 싸워 패퇴시켜야 할 적으로 간주한다. 클레 오파트라, 테레우스, 릴 부부를 포함한 「체스게임」의 모든 캐릭터는 상 대방을 정치적으로 궁지에 몰아넣거나, 처제를 강간하거나, 아내를 착취 하며, 상대방에게 치명적인 타격을 입힌다. 자신의 요구나 욕망에 더 이 상 소용이 없어지면 상대방을 버리거나 배신하는 일에 주저하지 않는 다. 엘리엇이 현대문명에 대한 구원을 확신했는지는 분명하지 않으나, 황무지에는 재생의 모티프와 구원의 실험적 방법이 발견된다. 전자는 주로 물과 연결되며 후자는 윤리적 가치로서 제시되고 있다. 황무지에 서 물은 오필리아와 플레바스의 경우처럼 재생을 상징할 뿐만 아니라 히아신스 정원 장면에서와 같이 남녀를 온전하게 연결하는 매개체이기 도 하다. 남녀 화합의 문제는 형이상학적 차원의 우주 질서회복과 연결 되어 있다. 이것은 우주가 음양의 조화로 운용된다는 동양철학의 사상 을 연상시킨다. 「체스게임」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이 초월적 섭리가 현 상적 세계의 이면에서 작용한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있다.
엘리엇은 1927년 영국카톨릭으로 개종하면서 본격적으로 기독교에 귀의한 모습을 보인다. 하지만 엘리엇이 자연주의적 세계관에 불만을 품고 형이상하적 가치를 지향하는 성향은 「프루프록의 연가」이전부터 발견된다. 엘리엇의 화자들은 스스로 확신이 부족하며 행동장애를 가진 인물로 등장하지만 이런 성격은 세속적인 가치를 지향하는 다른 등장인 물들과 세태에 대한 비판의식과 맞물려있다. 이 논문에서는 엘리엇의 초기시에 이미 그의 형이상적 지향성이 풍부하게 된다는 전제아래 다음과 같은 점을 살펴보았다. 먼저 「프루프록의 연가」의 화자를 비롯한 초기시의 화자들이 모두 인간관계에 실패하고 있는데 그 이유는 그들이 관계하는 대상들과 다른 세계관을 가지고 있어서이다. 가장 본질적인 문제로 고민하는 화자들은 세속적인 가치에 몰입하는 다른 등장인물과 어울리지 못하고 있다. 또한 엘리엇은 죽음의 문제에 대해 많은 관심을 보이는데 사후의 문제 대한 자연주의적 견해에 냉소적인 모습을 보인다. 이는 기독교적 세계관을 상실한 상황에 대한 반발로 이해된다. 그가 신화적 방법론을 주창한 것은 시적 제제들을 종교적 위계질서 내에 배치하려는 시도로 읽힌다. 마지막으로 엘리엇이 그의 시에 무의식을 도입하려 한 시도는 심리학에서 종교적 경험의 근원인 무의식을 탐구하려는 시도와 일맥상통하는 요소로 볼 수 있다. 이처럼 엘리엇의 초기시에는 혁명적인 새로움과 더불어 형이상학적 지향성이 나타난다.
엘리엇의 비개성 시론을 의식하며 그의 시를 읽을 때 흔히 두 가지 도전에 직면하게 된다. 먼저 시인 자신의 경험 그리고 인성과 분리된 서정시가 가능한 것인가의 문제, 그리고 시인이 가공의 인물과 사건을 만들어서 시인과 구분되는 시적 화자나 제재를 사용하더라도 심리적 관점에서 이 비개성적 장치들이 시인의 심리적 경험이나 성향을 반영하지 않을 수 있는가의 문제가 그것들이다. 당시 프로이트의 영향의 규모로 볼 때 그의 영향이 엘리엇에게 미치지 않았을 가능성은 매우 낮다 또한 융의 집단무의식과 엘리엇의 전통의 개념은 개인보다 인류가 축적해온 총체적 심리와 문화에 더 큰 가치를 부여함으로써 의미 있는 공통점을 보여준다. 또한 두 사람은 현대적 소외의 문제에 맞서 신화에 새로운 해석을 가하거나 신화적 세계관의 도입을 주창하였는데 그 공통된 목적은 근원적 존재와의 연결을 통해 현대인의 삶을 이해하고 문제를 해결 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입장이었다. 나아가 융이 집단무의식에 상정한 원형은 많은 신비적, 초월적 요소를 포함하고 있는 엘리엇의 시를 효과적으로 읽을 수 있는 관점이 될 수 있다. 그 가운데 엘리엇의 초기 시에는 페르소나, 그림자 그리고 아니마의 특징과 연결시켜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 풍부하게 발견된다.
연초에 에밀리 헤일에게 쓴 엘리엇의 편지가 공개되며 그들 사이의 관계에 대해 많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헤일이 엘리엇의 뮤즈였는지, 그렇다면 그 정도는 어떤 것인지, 그리고 수십 년간 이어져 온 그들의 관계가 결혼으로 이어지지 못한 이유는 무엇인지 등에 대한 의문이 편지 공개를 통해 어느 정도는 풀릴 것으로 기대된다. 간접적으로 그리고 부분적으로 공개된 편지에 의하면 헤일은 예상했던 것보다 강력한 엘리 엇의 뮤즈였으며 작품에 끼친 영향 또한 상당했던 것으로 판단된다. 하지만 그들이 맺어지지 못한 것은 두 사람의 성향이나 추구하는 가치에 차이가 있었고, 엘리엇이 헤일의 역할을 문학적 영감의 원천으로만 한 정한 데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 반면 헤일은 엘리엇과의 관계에 대해 강한 자부심을 가지고 결혼을 기대한 것이 드러난다. 이 글에서는 그들의 맺어지지 못한 사랑이 엘리엇의 작품에서 어떻게 원재료로 쓰이고 있는지를 추적한다. 엘리엇이 개인적 측면에서 한계를 설정했던 헤일과 의 관계는 그의 문학적 상상력과 결합하여 매우 풍부한 소재로 작동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황무지』의 히아신스 소녀, 「눈물 흘리는 소녀」 의 주인공, 그리고 『재의 수요일』의 숙녀, 「번트 노튼」의 장미 정원의 소녀는 모두 헤일을 연상시키는 인물들이다. 하지만 동시에 엘리엇의 작품 속에서 헤일과 그녀와의 관계는 특유(特有)함과 구체성을 결여하여 다른 해석의 여지를 남기고 있다.
1920년 이전의 엘리엇 시의 두 가지 심리적 특징은 환상과 좌절이며 여기에 원인과 과정으로 여성(성)이 깊이 개입하고 있다. 이 시기의 화자들은 여성들의 반응과 그들과의 관계에서 의해 자기를 이해하고, 스스로에 대한 가치를 매기며, 이 태도는 여성들과 관계없는 일에까지 영향을 미친다. 이들은 저항할 수 없이 여성들에게 끌리지만 예민한 자의식속에서 여성들에게 받아들여질 수 없을 것이라고 예단하며 더 이상의 관계를 추구하지 못하는 나약한 모습을 보인다. 이 같은 정체감은 화자들이 의식하고 있는 보다 근본적인 문제에 대한 접근 노력을 사전에 차단하는 효과를 보이기도 한다. 화자들이 겪는 이 같은 곤경은 당시 시인이 겪었던 성적인 욕망과 좌절, 보다 근본적으로는 시인에게 작용하는 어머니 원형과 아니마의 경쟁관계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아니마의 유혹과 어머니의 세계에 머물고 싶은 충동이 충돌하는 양상이 시에 반영되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황무지』를 거쳐 『재의 수요일』에 이르면 시인은 활발하게 여성성과 활발하게 교류하며 종교적 행로를 모색하게 된다. 이 글에서는 엘리엇의 초기시 몇 편에 나타난 환상과 좌절을 여성과의 관계라는 측면에서 추적해 보았다.
엘리엇이 『네 사중주』에서 추구하는 것은 현상계에서 육화된 신, 즉 성육신이다. 시간에 속박된 인간들은 무시간계를 직접 경험할 수 없다는 인식아래 엘리엇은 다양한 환경에서 드러나는 초월계의 모습을 찾으려고 노력하며 그 경험의 성격을 묘사하고자 노력한다. 시간과 관련해서 엘리엇이 상정하는 존재방식은 세 종류이다. 먼저 시간을 초월한 세계, 즉 시간의 흐름과 관련이 없는 무시간계, 시간의 지배를 받아 생로멸사(生老滅死)하는 현상계, 그리고 마지막으로 현상계에 실현되지는 않았지만 실현될 수 있었던 가능계가 그들이다. 엘리엇은 이 가능계는 현상계가 가진 구체적이고 개별적인 특성 없이, 현상계와 초월계 사이에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엘리엇은 인간들이 경험할 수 있는 초월계는 이 가능계를 통해서라고 본다. 융은 인간의 의식은 무의식에서 비롯되었고 무의식이 힘이 압도적으로 크기 때문에 의식이 무의식의 전체, 혹은 정신 전체의 원리인 ‘자기’를 인식하는 방식이 인간의 신에 대한 관계의 심리적 기초가 된다고 보았다. 하지만 무의식의 내용은 꿈, 환상, 백일몽과 같이 주로 수동적인 양태로만 의식에 전해지는 문제가 있다. 융이 이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고안한 것이 ‘적극적 상상’이다. 의식의 작동을 최소한으로 해서 무의식을 불러들이되 무의식에 의해 압도되지 않은 채로 무의식이 가진 주제를 기억하고 기록할 수 있어야 하는 어려움이 있다. 엘리엇과 융이 『네 사중주』와 적극적 상상에서 추구하는 것은 초월적 세계라는 공통점이 있다.
『네 사중주』 각 편의 주요 제재를 형성하는 네 물질은 시의 주제를 전함에 있어 상호 의존하거나 다른 요소들을 보완하기도 한다. 그들은 모두 세계의 구성과 작동에 대한 헤라클레이토스의 이해에 뿌리를 두고 있다. 이 가운데 물은 엘리엇 작품의 가장 두드러진 제재로서 『황무지』, 『재의 수요일』 그리고「 J. 푸르프록의 사랑노래」 를 포함하는 전작들에 서 풍부하게 등장하고 있다. 엘리엇은 이 모든 작품들에서 물이 어떻게 죽음, 재생, 혹은 초월적 세계와 연결되는지를 보이고 있다.「 드라이 샐 배이지즈」 는 물의 모티프를 통해 어떻게 인간이 성육신을 경험하고 그 의미를 깨달을 수 있을지를 그린다. 엘리엇은 바다가 시간처럼 인간 존 재의 시종(始終)을 통제한다는 점을 말하며 인간 삶이 신적 구원을 얻지 못하는 한 생로병사의 무의미한 고리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점도 말한다. 하지만 엘리엇의 시에서 물은 궁극적인 가치나 권위를 부여받지 못하며 그 가치와 권위적 한계를 노정한다. 또한 물은 여성(성)과 많은 유사점을 갖는 것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퇴계 이황과 엘리엇에게는 시간과 공간적 배경에서 매우 커다란 차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형이상학적 혹은 초월적 사변과 가치에 경도되었 다는 공통점을 갖는다. 둘은 모두 현상계를 스스로 해결할 수 없는 문 제를 갖고 있는 열등하고 타락한 상태로 인식하며 그 상태로부터 초월적 구원의 방법을 모색한다. 퇴계는 성(性), 즉 인간의 마음속에 있는 우주의 근본원리로서의 리(理)의 존재를 확립하고 리가 주체적이고 적극적으로 작용한다는 것을 보이기 위한 노력을 포기하지 않았다. 이 노력이 극적으로 표출된 것이 고봉 기대승과의 사단칠정(四端七情)논쟁이 다. 20세기 초의 엘리엇은 자유주의자 그리고 인본주의자들의 인간 중심 혹은 이성 중심의 경향에 맞서 교회와 그 가치를 굳건히 지킬 것을 주창한다. 엘리엇이 말하는 초자연성(the supernatural) 혹은 신성(the divine)은 퇴계가 우주원리로서 받아들인 리처럼 초월적 혹은 형이상학적 도덕론을 통한 문제해결 모색과 크게 다르지 않다. 엘리엇이 현실계 에 대한 품은 부정적 인식과 형이상학적 해결을 모색해가는 과정은 황 무지 에서 출발하여 재의 수요일 을 거쳐 네 사중주 에 이르기까지 명확하게 드러나 있다. 성리학과 엘리엇의 초월적 사유가 가진 자위성 과 위계적 세계관이 어떻게 실체적 근거와 타당성을 확보할 수 있을 것 인가는 특별히 현대적 상황에서 유용한 질문으로 보인다.
이글은 개종 후 종교적 색채가 짙어진 엘리엇의 후기시에 나타난 종교적 경험의 문제를 다루려는 시도이다. 종교적 경험은 특정 종교의 도그마나 교리가 규정하는 대로가 아닌 인간이 압도적 권위나 힘을 가진 초월적 존재에 대한 관계에서 느끼는 정서적 경험으로 이 글에서는 오토와 제임스의 설명을 기초로 삼았다. 이 경험에서 인간은 대상인 절대자 앞에 나약한 피조물로 스스로를 인식하며 세계관과 태도에 있어 커다란 변화를 겪는다. 융은 이 경험을 심리적 공식으로 이해하여 인간의 의식이 그 근원인 무의식의 중심, 즉 ‘자기’에 노출되면 절대자 앞에선 ‘피조물 느낌’을 갖는다고 설명한다. 엘리엇에게 이 같은 종교적 경험이 실재했는가 하는 문제는 정확하게 답할 수 없는 문제이다. 하지만 그는 이 경험을 당연한 것으로 인정하고 있다. 또한 심리적 관점에서 보자면 그의 종교시에 자주 등장하는 여성도 시인의 종교적 경험의 개연성을 높이고 있다. 또한 그의 시는 기독교의 가르침을 무조건 수용하기보다는 스스로의 경험을 그리고 있다는 인상을 자주 불러일으킨다. 특히 「동방박사의 여행」과 재의 수요일에서 이 같은 특징이 두드러지며 동시에 그의 시는 산문과 달리 종교적 가르침에 대해 회의하는 모습이 자주 드러내기도 한다.
이글은 기독교에 토대를 둔 엘리엇의 정치적 입장이 제3세계인들에게 어떤 의미를 갖는 것일까라는 질문에서 비롯되었다. 시극 ��원로 정치인��에는 이 같은 의문에 대한 답을 제시하는 요소들이 발견된다. 먼저 극의 등장인물들은 중미에 위치한 국가인 산마르크 공화국을 영국이나 유럽에 비해서 매우 무질서하고 타락한 곳으로 치부하며 거기에 속한 사람들에 대한 폄하를 노정하고 있다. 이처럼 세3세계의 국가는 당시 많은 문제를 노출했던 유럽인들에게 집단적인 그림자로서 작용했으며 엘리엇도 그에 동참했던 것으로 보인다. 나아가 이 극의 주인공을 비롯한 남자 등장인물들은 예외 없이 여성과의 조화롭고 결실을 맺는 관계에 실패하고 있다. 엘리엇의 전기를 반영하는 듯한 이 특징은 배우자 원형, 즉 아니마가 원활하게 작동하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 특징은 정치적으로는 어머니원형이 지배하는 단계, 즉 권위에 복종하고 타자의 가치에 제한을 두고자하는 보수적 성향과 관련된다고 할 수 있다. 이처럼 ��원로 정치인��은 작가가 의도한 원만하고 이상적인 삶의 정리가 아닌 작가와 주인공의 불안정한 심리 상태와 그와 관련된 제3세계인으로서 인정하기 어려운 정치적 태도를 담고 있다 하겠다.
So obvious are T. S. Eliot’s conservative tendencies that the only valid question about his politics seems to be how conservative he was. He declared his own position so in religious, political and literary sides, and most of his literary works support this position quite positively. But The Waste Land and his other early works carry some elements which suggest the poet’s sympathy to liberal causes. His well-known literary theories and techniques including ‘objective correlative,’ ‘union of sensibility,’ and ‘collage’ also reflect Eliot’s belief in reason. This advocacy of reason is parallel with liberal and democratic tenets against which Eliot showed overt abhorrence. Psychologically Eliot can be seen to be on the stage of alienation around the time of the composition of his early works including The Waste Land. One is necessarily subject to the drive to move away, at a stage of growth, from the mother or the world one used to belong to in one’s initial phase of life. Eliot gives in to the transcendental in Four Quartets and Ash-Wednesday, suggesting he has returned to the dominance of the mother in infancy. It is questionable how Eliot looked at the difficulties of the underprivileged then suffering from the world order he supported with his increasingly conservative outlook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