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무지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 ‘불모지가 되어버린 현대문명’의 저 변에는 남녀문제가 있다. 특히, 황무지의 2부 「체스게임」에는 결혼한 부부간의 남녀문제가 깊이 있게 조명되고 있다. 체스게임을 하듯, 남자 와 여자는 각각 자신의 이익에만 몰두하고 상대방을 사랑하거나 이해하 려 하지 않고, 오히려 맞서 싸워 패퇴시켜야 할 적으로 간주한다. 클레 오파트라, 테레우스, 릴 부부를 포함한 「체스게임」의 모든 캐릭터는 상 대방을 정치적으로 궁지에 몰아넣거나, 처제를 강간하거나, 아내를 착취 하며, 상대방에게 치명적인 타격을 입힌다. 자신의 요구나 욕망에 더 이 상 소용이 없어지면 상대방을 버리거나 배신하는 일에 주저하지 않는 다. 엘리엇이 현대문명에 대한 구원을 확신했는지는 분명하지 않으나, 황무지에는 재생의 모티프와 구원의 실험적 방법이 발견된다. 전자는 주로 물과 연결되며 후자는 윤리적 가치로서 제시되고 있다. 황무지에 서 물은 오필리아와 플레바스의 경우처럼 재생을 상징할 뿐만 아니라 히아신스 정원 장면에서와 같이 남녀를 온전하게 연결하는 매개체이기 도 하다. 남녀 화합의 문제는 형이상학적 차원의 우주 질서회복과 연결 되어 있다. 이것은 우주가 음양의 조화로 운용된다는 동양철학의 사상 을 연상시킨다. 「체스게임」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이 초월적 섭리가 현 상적 세계의 이면에서 작용한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있다.
T. S. 엘리엇 시의 텍스트를 이루는 구절들은 여러 겹의 다른 목소리들로 중첩되어 그 두께가 두껍다. 『재의 수요일』도 예외는 아니다. 그 목소리들은 단테, 셰익스피어, 종교의 경전 등 역사적 맥락에서뿐만 아 니라 그의 내면에서 온 메시지들이다. 텍스트의 화자이면서 청자인 엘리엇은 40일간의 사순절 첫날인 재의 수요일에 이 목소리들과 함께 내면여행을 시작한다. 돌이킴, 성녀와의 만남과 육의 죽음, 어둠 속 그림자와의 대면, 장미정원에서 성녀와 합일, 말씀과의 합일, 새로운 차원의 돌이킴 등 여섯 단계의 내면 여행은 결국 하느님과의 합일을 통한 성스러움을 이루는 성화과정이다. 이 여행은 또한 분석심리학의 관점에서 볼 때 개성화과정이기도 하다. 개성화과정은 의식과 무의식이 통합해가는 과정이다. 의식세계의 자아는 무의식에서 보내온 꿈이나 적극적 상상을 통해 무의식세계의 원형들, 즉 그림자, 아니마/아니무스 등과 대면 하고 화해하여 최종적으로 정신의 총합이자 중심인 자기원형과 합일하는 것이다. 엘리엇의 성화과정을 개성화과정과 병치하여 읽어 보면, 그가 왜 시대의 흐름을 거슬러 앵글로 가톨릭교로 개종했는지 이해할 수 있다. 그 핵심적 이유는 그의 영적 내면여행의 안내자인 아니마, 즉 성녀의 존재 때문이라 할 수 있다.
엘리엇의 마지막 시 『리틀 기딩』 은 『황무지』로부터 시작된 그의 영 적 여행의 마지막 종착지라 할 수 있다. 신들의 성스러움과 상징과 신 화로부터 단절된 근대 산업사회의 도시인들은 이미 영적으로 죽어있다. 엘리엇은 글쓰기를 통해 그의 영적 여행을 시작한다. 이 순례는 미르체 아 엘리아데의 관점으로 볼 때, 속된 것으로부터 성스러운 것으로의 이 동이다. 인간은 본질적으로 잃어버린 낙원에 대한 강한 향수를 가지고 있다. 에덴에서 추방된 인간은 신을 중심으로 한 우주의 유기체적 네트 워크에서 떨어져 버렸기 때문에 영적 생명력을 상실해 버리고 속된 세 상에서 의미를 잃은 채 살고 있다. 그러나 속된 세상에서도 인간은 비 균질성의 성스러운 공간과 시간의 상징을 통해 신현을 체험하고 성스러 운 차원에 도달 할 수 있다. 엘리엇은 먼저 리틀 기딩에서 대극의 합일 을 보고, 원소들의 죽음을 통해서 신현을 체험한다. 그리고 그는 신현을 통해 성스러운 경지에 이르게 되고, 독일 폭격기가 불을 뿜으면서 런던 을 폭파하는 장면을 하늘로부터 성령이 비둘기처럼 내려오는 장면과 마 가의 다락방에 불과 함께 성령이 강림한 장면을 중첩시킨다. 가장 속된 것을 통해 가장 성스러움을 본 것이다. 이것을 통해 그는 세상에서의 성스러움은 성과속의 변증법을 통해 얻어진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주요어: 엘리엇, 리틀 기딩 , 엘리아데, 상징, 성과 속, 대극의 합일,
T. S. 엘리엇은 「드라이 샐베이지즈」 작업을 통해 내면 여행을 떠난 다. 갈색 신인 강을 타고 개인 무의식을 지나 바다로 상징되는 집단 무 의식에 이른다. 집단 무의식에는 태고 적부터 초시간적으로 존재하는 수많은 원형들이 이미지를 입고자 의식의 자아를 기다리고 있다. 엘리 엇은 집단 무의식의 바다에서 수많은 사람들의 고통과 죽음의 이미지들 을 목격하면서 실의에 빠진다. 그러나 모성원형인 마리아를 대면하면서 치유가 이루어진다. 그리고 현자원형인 크리쉬나로부터 포기하지 말고 계속 전진하라는 충고를 통해 힘을 얻는다. 성자의 사명이 시간과 초시 간의 교차점을 포착하는 것이라는 삶의 목적을 제시받은 엘리엇은 만다 라 모양의 장미를 대면하고 자기원형을 상징하는 그리스도를 통해 대극 의 합일을 이룬다. 융이 주장한 개성화 과정은 의식과 무의식의 통합과 정으로서 엘리엇은 「드라이 샐베이지즈」 시작(詩作)과정을 통해 그의 무의식에 있는 강력한 누미노스의 에너지를 지니고 있는 원형들을 강, 바다, 성모 마리아, 크리쉬나, 장미, 그리스도 등으로 이미지화 하여 신 비롭고 난해한 창의적 작품으로 탄생시킨다. 이 개성화 과정이 상징화 과정이기도 하다.
T. S. 엘리엇의 「이스트 코우커」는 다양한 관점에서 해석될 수 있는 다양한 죽음의 이미지들이 있다. 첫째, 물리적 관점으로 해석될 수 있는 죽음의 이미지들이 나온다. 이 죽음은 탄생, 성장, 쇠퇴, 죽음, 그리고 다시 탄생으로 이어지는 자연의 생명 순환의 일부로서 자연의 생명체계 를 유지하는데 필수적인 요소다. 두 번째, 「이스트 코우커」의 죽음은 부 정적 이미지들로서 주로 자연의 섭리에서 벗어나 부조화를 이룰 때 나 타난다. 이 죽음은 도덕적, 영적 죽음이며 신과 단절된 현대의 도시문명 을 상징하고 있다. 세 번째 종류의 죽음은 여러 종교들과 연관된 죽음 의 이미지들이다. 이 다양한 죽음의 이미지들 이면에는 공통적으로 탄 생 또는 부활 속에서의 생명과 연결된다. 「이스트 코우커」에서 엘리엇 은 생과 사의 주제를 예술적 언어를 사용하여 다양한 이미지와 의미를 만들어내고 있다.
엘리엇은 네 사중주 에서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는 정지점을 탐구한다. 이 탐구는 고대와 중세의 연금술사들이 광물을 금으로 바꿀 수 있는 현자의 돌 또는 라피스를 찾는 탐구와 유사하다. 그들은 현자의 돌의 원질료라 할 프리마 마테리아(prima materia)가 자연의 네 원소인 흙, 공기, 물, 불에서 나온다고 믿었다. 엘리엇 역시 네 사중주 에서 자연의 네 원소를 탐구한다. 엘리엇의 흙은 흑암과 연결되지만 긍정과 부정이 공존한다. 네 사중주 에 나타난 물 요소 역시 죽음과 삶의 자연적 리듬을 반영한다. 번트 노튼 의 장미원은 연금술의 현자들의 장미원과 일치하며 대극의 합일을 통한 개성화 과정을 나타내고 있다. 물의 대극으로서 불 또한 이중적 의미를 갖는다. 천상으로부터의 긍정적인 빛과 지하계로부터의 부정적 불이 그것이다. 이 네 요소를 바탕으로 삼라만상이 삶과 죽음 그리고 부활을 반복하면서 끝없이 순환하며 정지점이 그 중심에 있다. 결국, 연금술사들은 그들이 탐구했던 현자의 돌이 물리적 세계가 아닌 자신들의 의식 속에 있음을 깨닫게 된다. 엘리엇의 정지점 역시 현자의 돌과 마찬가지로 우리의 의식에 있으며, 이 정지점은 시간과 무시간, 그리고 순간과 영원을 매개하는 그리스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