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이츠가 아일랜드 민중과 겪었던 갈등—『서방세계의 난봉꾼』(The Playboy of the Western World) 공연 사태, ‘휴 레인 논쟁’(Hugh Lane controversy), 중산층의 물질주의 등—을 통해 켈트 신화와 민담만으로는 더 이상 아일랜드인의 공감을 얻지 못한다는 것을 깨닫고 현실 속에서 상징을 찾아내 구축하는 결정적인 계기는 1916년 부활절봉기이다. 부활절봉기 이후 예이츠는 내전기 동안의 폭력적인 어두운 현실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고 아일랜드의 독립을 희망한다. 그리고 독립한 아일랜드에서 예이츠는 현실 정치에 대한 환멸을 신화의 도시인 비잔티움으로의 여정이라는 상징을 통해 극복하려 한다. 늙고 죽음을 목전에 둔 시기에 예이츠는 자신이 구축한 신화가 더 이상 유용하지 않음을 깨닫지만 버려지고 쓸모없는 것들에 상징적인 의미를 부여함으로써 역설적으로 작품과 인생 전체를 신화화한다.
예이츠의 초기시는 신비한 요정의 나라와 영웅의 세계에 몰입하는 신화의 이상적 세계로의 회귀 경향이 현저히 나타난다. 아일랜드의 신화나 전설 속의 영웅의 모습을 재현함으로써, 그는 신화를 통해 이상적 세계를 탐색하여 고통스러운 현실에 희망을 심어주고 민족정신을 찾을 수 있게 하는 가능성을 열어준다. 고대 켈트족의 신화와 전설, 민담에 현실의 고통을 가미하여 재현함으로써 시인의 초기시에 나타나는 신화 세계로의 회귀 경향은 아일랜드 고유의 민족문학 건설이라는 현실성을 지니게 된다. 이러한 경향은 예이츠가 “문화민족주의”를 주장하는 가운데 현실적인 인물인 농민들의 가치를 강조함으로써 초기시에 나타난 신화의 단점인 지나치게 현실과 괴리된 이상향만을 추구한 점을 보완한다. 그가 볼 때 아일랜드 농민들은 초자연적인 경험을 통해 영국의 물질주의와 이성주의에서 벗어나 초자연의 신비를 지닌 켈트족의 옛 아일랜드를 부활하고 영국의 지배에서 벗어나 새로운 세계로 나아갈 수 있는 비전을 제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