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연구에서는 지구과학 교육 연구 논문들을 대상으로 질적 메타 분석을 통해 집단적 PCK (cPCK) 중 ‘특정 과 학 주제(온실 효과, 지구 온난화, 기후변화)에 대한 학생 이해 지식’을 도출하고자 하였다. 이를 위해 온실 효과, 지구 온난화, 기후변화에 대한 학생 대체 개념(오개념)과 관련된 지구과학 교육 연구 논문 22편을 선정하여 각각의 정의, 원 인(매커니즘), 그리고 영향에 대하여 분석하였다. 분석 결과를 종합하기 위해 언어 네트워크 분석, 정신모형틀을 적용하 였다. 연구 결과는 다음과 같다; (1) 온실 효과에 대한 학생들의 개념 이해를 메타 분석한 결과, 온실 효과와 지구 온난 화를 같은 의미로 사용하는 것으로 분석되었으며, 온실 기체의 종류를 제한적으로 알고 있고, 온실 기체의 역할을 이해 하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온실 효과의 발생을 환경오염이나 오존층의 변화와 관련지어 생각하고, 지표-대기의 열수지 평형과 온실 효과를 관련짓지 못하는 것으로 분석되었다. (2) 지구 온난화에 대한 학생들의 개념 이해를 메타 분석한 결과, 지구 온난화를 해수면 상승과 같은 의미로 사용하는 것으로 분석되었으며, 지구 온난화의 발생을 환경오 염, 오존층의 변화, 빙하의 융해와 관련지어 생각하고, 지표-대기의 열수지 평형이 깨져 지구 온난화가 나타나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었다. 또한 지구 온난화가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잘못 알고 있는 것으로 분석되었다. (3) 기후변화에 대한 학생들의 개념 이해를 메타 분석한 결과, 기후변화를 지구 온난화, 기상 변화, 기상 이변과 같은 의미로 사용하는 것으 로 분석되었으며, 기후변화의 발생을 대기오염, 오존층의 파괴와 관련지어 생각하는 것으로 분석되었다. 또한 기후변화 가 우리 생활과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잘못 알고 있는 것으로 분석되었다. 이에 대한 분석 결과를 언어 네트워크 분석 을 통해 종합한 결과, 집단적 PCK로서 3가지 정신모형(범주적 오해, 기제적 오해, 위계적 오해)을 표현할 수 있었다. 이 와 같은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지구과학 교사 PCK 개발을 위한 함의를 논의하였다.
중부지방은 송국리문화 주 분포권의 외곽지역으로 재지의 지역문화가 지속되고 있다. 이러한 지역 문화는 전기부터 성장하여 중기에 지역성이 두드러지는데, 일부 지역에서는 송국리집단의 이주나 접촉에 의해 송국리문화의 전파와 파급이 이루어진다. 본고는 중부지방 송국리문화의 제 양상을 살펴 보고 편년적 위치와 성격, 변화양상 등에 대해 검토하여 송국리문화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자 하였다. 특히, 재지집단과의 관계를 어떻게 형성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도 파악하고자 하였다. 아울러 첨예하게 대립되고 있는 소위‘반송리식주거지’의 기원과 편년문제, 영동지역 송국리문화의 유입경로에 대해서도 살펴보고자 하였다. 중부지방 송국리문화를 검토한 결과 그 영향이 강하게 작용하지 않지만 재지집단과의 상호작용으로 변이가 관찰된다. 또한 재지집단도 송국리문화의 영향으로 선택적 수용 양상이 확인된다. 경기 남 부지역은 역삼동문화와 접촉하는 과정에서 자체의 변이는 물론 재지문화의 변이인 반송리식주거지가 등장하기도 한다. 반송리식주거지는 기존의 견해와 달리 송국리문화(송국리식주거지)의 영향을 받은 재지집단(역삼동식주거지)의 변이로 파악되고, 등장 시점도 늦은 시기로 확인되었다. 강원 영동지역은 송국리문화의 전통적인 주거구조를 유지하면서 재지의 새로운 물질문화(점토대토기문화)를 적극 수용하여 융화되는 양상이다. 이와 같이 중부지방에서 늦은 시기까지 송국리문화가 지속될 수 있었던 것은 송국리집단의 생존을 위한 방식-재지집단의 필요나 요구에 따라 적응하기 위한 적극적인 전략- 으로 볼 수 있다. 결국 송국리집단의 독자적인 생존방식도 보이지만 대부분 재지문화와 호혜적·기능적 관계를 맺고 융화·흡수되는 것으로 생각된다. 중부지방은 송국리문화 주 분포권의 외곽지역으로 재지의 지역문화가 지속되고 있다. 이러한 지역문화는 전기부터 성장하여 중기에 지역성이 두드러지는데, 일부 지역에서는 송국리집단의 이주나 접촉에 의해 송국리문화의 전파와 파급이 이루어진다.
청동기시대 주구묘는 주구라는 묘역시설로 매장주체부 주변을 구획하는 묘제로서 고고학적인 의미는 몇 가지 점에서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주구묘의 최초 등장은 한반도 남부지역 전체에서 거의 동시기인 전기 후반이며, 변화 양상에는 지역적으로 약간의 차이가 있지만 이전과는 달리 피장자의 차별성을 강조하는 측면이 두드러지며, 특정지역에서 주거공간과 구분된 묘역을 형성하기 시작한다는 점이다. 발생 당시의 주구묘는 일본 야요이시대 방형주구묘와 같은 분구묘적인 개념을 가졌다고 보기는 어려우며, 철정리와 옥방8지구의 경우와 같이 복수의 매장시설을 설치하는 방식이 적용된다고 하여도 전반적으로 분구묘의 매장관념에 적합하지는 않다고 판단된다. 또한 일본 야요이시대 방형주구묘와의 직접적인 계보를 상정하기에는 시기나 매장방식, 구조적인 측면에서 차이가 크다고 할 수 있다. 다음 단계의 묘제인 지석묘로의 대체는 자연스럽지 못한 면이 있다고 판단되지만 영남 남서부지역 주구묘는 형태적인 측면에서 원형과 방형계통이 공존하는 전통은 지석묘 단계에도 자연스럽게 계승되었을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된다. 주구묘의 발생에 관한 문제는 외적인 요인보다 현재로서는 전단계와 다른 매장관념에서 발생하였다는 점으로 내적인 요인에 의해 다루어져야 할 것으로 판단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