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연구는 철학적 인문학의 심화연구를 하기 위해 성리학의 근원이 되는 서지학적 자료 를 탐구하는 과정에서 고려 금속활자본의 존재가 드러나 이를 토대로 연구가 전개되었다. 서울대학교 규장각 소장본인 대학혹문전 「대학혹문」을 규명함에 있어 저본으로 활용한 정복심의 사서장도찬석은 그의 저술 중에서 유일하게 저자와 간행년도, 간행지가 기록되 어 있다. 이것은 1295년에 편집하여 1302년(중복) 서문을 작성하고 중국 원나라에서 국책사업으로 덕신서당 혹은 덕신당에서 1337년 간행되기까지 35년이라는 세월이 소요되었다. 그동안에 인쇄술이 발달된 고려에서는 국가적 사업으로 확장되면서 리학 발전의 계기를 만들었다. 그가 사서장도찬석을 저술할 때, 저본으로 활용한 ‘사서이십삼책’은 고려 활자본 사 서장도이십삼종으로 변경되어 부제와 저자표기 오류를 포함한 채 간행되었다. 본 논문에서 정복심의 저술들을 순차적으로 나열하면 사서장도이십삼종 「주자대학혹 문중정집석통의대전」과 사서장도찬석 「대학혹문전」의 「대학혹문」으로 전개된다. 여기에 사서장도이십삼종은 1371년 진주목에서 개판되어 보물 706·707호로 지정된 「중용주자 혹문」 두 권과 같은 종류의「대학주자혹문」(古貴1331-6)은 규장각에 소장되어 있다. 본 연구의 대학혹문전 「대학혹문」(奎中523)은 정복심저, 사서장도찬석 「대학혹문 전」의 「대학혹문」을 금속활자로 인출하였다. 이것은 ‘강화내부구장’직인이 찍혀 있는 『중용혹문』 「중용혹문」과 같은 한 질로 강화내장문고에 소장되어 있던 것이다. 현재 일본국립공문서관에 소장되어 있는 사서장도찬석은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을 거치며 일본 으로 반출된 것으로 추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