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생광은 서양문물의 유입이 시대적 문화현상으로 받아들여지던 시기에 한국의 전통 소재와 색채미를 통해 현대한국화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준 대표적인 화가이다.
그는 1920년대부터 시작된 일본 유학생활과 광복 후의 한국생활, 이후 재 도일을 거쳐 1977년 한국으로 영구 귀국한 후 1985년생을 마감하기까지 8년간의 기간 중에 보여준 다양한 소재(불교, 민화, 무속, 역사)를 통해 자 신만의 민족적 화풍을 이룩하였다. 이러한 민족적 화풍은 국내에만 갇혀있 던 보수적인 한국화가 새로운 모습으로 세계로 나아갈 수 있는 밑바탕이 되 었다.
본 연구는 박생광이 1977년부터 1985년까지 불교 소재를 통해 완성된 작품들을 분석하고 종교적 소재가 순수회화에 도입되어 작품성을 인정받게 된 경위와 평가에 대해 연구했다. 이를 위해 박생광이 불교 소재로 작품화 하게 된 사상적 배경을 탐구하고 이러한 사상을 바탕으로 제작된 작품의 표 현적 특징을 연구하여 밝혔다. 이를 좀 더 세부적으로 살펴보면 그의 작품 이 다시 한 번 변모하는 계기가 된 1982년 인도여행 이전과 이후를 시대구 분으로 나누고 주제구분, 색채로 나누어 연구하였다.
박생광은 불교 소재를 통해 자신의 심상세계를 표현하면서도 그 속에 한 민족 저변에 깔려있는 국태민안, 기복사상 등을 담아 현대적 감각에 맞게 작품화하였다. 이러한 박생광의 과감한 실험적 작품들은 광복이후 지지부진 했던 한국의 전통적인 미감을 시대적 미감에 맞게 재해석하는 문제에 새로 운 이정표가 되었으며 90년대 이후 출현한 젊은 작가들에게 신선한 충격과 용기를 주었다. 이후 한국화는 현대화 운동에 급격히 접어들면서 화단도 한 국 전통의 소재와 정신을 통한 다양한 현대적 실험(소재, 기법, 재료)이 이 루어 졌으며, 이를 토대로 현재(2010년대)의 한국화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중국미학사를 볼 때, 唐나라시대 이후 중국미학과 예술이 크게 변화한 까닭은 근본적으로 철학사상의 영향 때문이었다. 아울러 불교가 중국에 전해지면서 심미관에 엄청난 변화가 일어났다. 예컨대 불교는 魏晉시대 이후의 변화를 거쳐 隨唐시대에 이르면서 크게 번성하였고, 특히 南宗 禪은 중국의 도가와 인도 대승불교를 새로이 결합되어 탄생한 새로운 철 학으로 자리매김 되었다. 남종선이 고민했던 문제인 單刀直入이나 不立文字 등의 사유방식은 기존의 심미적 규범과 예술 관념에 커다란 충격을 주었다. 이들의 경향 은 空靈하고 淡遠한 경계를 추구하고, 古拙하면서도 넓고 아득한 기상 을 중시했다. 다시 말해서 前 시대의 거칠고 광대한 기풍은 고요하고 맑 은 기풍으로, 격앙되고 의기양양했던 기풍은 평온하고 그윽한 기풍으로, 현란하고 웅대했던 기풍에서 담담하고 소박한 기풍으로 바뀌었다. 이는 모두 심미적 기풍 변화에 따른 모습으로 선종이 중국미학과 예술에 새로 운 지평을 연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므로 본고에서는 남종선의 기본 철학인 ‘不二法門’에서부터 접근 하여 선종과 미학 및 예술 간의 심층적인 연계성을 살펴보았다. ‘불이법 문’은 남종선의 중요한 철학 원칙이자, 선종이 중국미학과 예술에 결정 적인 영향과 작용을 미친 사상이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荊浩의 『필법기』를 필두로 唐말 五代 이래 중국미학의 중 요한 경향은 ‘불이법문’사상에 내재된 ‘참’된 의미를 탐구하는 과정이었 음을 알았다. 이들은 ‘眞이 곧 實이고, 실이 곧 진이다’라는 선종의 사상을 연역하여 만들어졌다. 특히 ‘是非’ 와 존재의 분별을 통해 ‘是’와 ‘非’의 판단과 그 예를 살펴 분별이 없고, 상대도 없으며, 유도 없고 무도 없는 체험의 경 계야 말로 최고의 법문이었음을 알 수 있었다. 이러한 남종선의 기본 철 학인 ‘불이법문’에서부터 선종과 미학 및 예술 간의 심층적인 연계성을 살펴본 것이 본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