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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23.09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본 논문에서는 외래 문물의 유입이 본격화되었던 조선의 개항 이후 한국의 궁궐건축에 유 입되어 공간을 구성하고 장식했던 청(淸)의 공예품들을 파악하고, 이들의 유입 정황과 양식 특성을 고찰하였다. 조선과 청의 무역은 조청상민수륙무역장정(朝淸商民水陸貿易章程, 1882년)의 체결, 기선회사들의 경쟁, 화상(華商)의 활동 등에 의해 1880년대 이후 크게 증가하였으며, 궁궐 에서 사용될 물품들은 중국 상해와 조선의 인천을 잇는 항로를 통해 청으로부터 유입되었다. 1891년 건립된 경복궁 집옥재(集玉齋)는 건축의 재료(벽돌)와 축조법, 기둥과 현판 그리 고 실내 공간의 문과 격단(隔斷) 장식 등에서 중국 건축의 장식 요소들이 반영되었다. 집옥재 는 청의 영향을 확인할 수 있는 궁궐건축으로써 청의 공예품 유입도 촉진하였을 것으로 판단 된다. 이와 관련하여 현전하는 청의 가구, 도자기, 금속공예품 등을 종합하여 양식 특성을 비 교한 결과 창덕궁에 전하는 중국 가구 일부와 도자기들은 페라나칸(Peranakan)을 대상으로 판매되었던 가구와 법랑자기(琺瑯瓷器)였으며, 청말 광동성(廣東省)을 중심으로 제작되어 전 세계로 판매되었던 광동 가구와 법랑기였다. 조선의 궁궐에 유입된 청대 공예품들은 19세기 이후 중국의 무역항을 통해 전 세계로 확산되었던 중국의 미술품 수출 산업과 밀접한 관련이 있었으며, 판매 대상과 지역에 따른 독특한 양식을 확인할 수 있어 의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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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2018.01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개항 이후 조선은 일본 및 미국, 유럽을 통해 전기, 철도 등의 기반 산업뿐만 아니라 복식, 음식, 서양식 건물 등 실생활과 밀접한 문화체계 들을 받아들였으며, 조선의 전통 건축 및 기물들은 이전에는 볼 수 없었 던 새로운 양식의 수입기물들로 대체되었다. 대한제국기 궁궐의 전통 생활가구들은 서양가구들로 대체되었으며, 온돌식 주거문화에 따라 유지되었던 좌식 생활은 입식 생활로 변화하였다. 창덕궁과 덕수궁 석조전의 서양가구들은 18세기 유럽의 로코코 양 식(Rococo Style)을 따른 것에서부터 대한제국기 황실문장인 이화문(李花文)을 넣어 제작한 것 그리고 영국의 메이플사(Messrs Maple & Co) 에서 제작된 가구들이었다. 창덕궁에서는 장식성이 돋보이는 로코코 양식의 가구를 사용했으며, 석조전의 가구들은 신고전주의 건물 외관에 어울리는 소박하고 간결한 퀸앤 양식(Queen Ann style)의 가구가 주를 이루었다. 전통적인 좌식 가구에서 탈피한 서양식 입식 가구의 등장은 개항 이후 궁궐에서 이루어진 연회 문화와 관련이 있었으며, 서양식 연회에 어울리는 도자기와 공예품들도 각국에서 수입되었다. 연회에 사용 되었던 양식기들은 프랑스의 삘리뷔(Pillivuyt), 영국의 존슨 브라더스 (Johnson Brothers), 일본의 노리다케(Noritake) 등에서 제작했던 산업 자기였다. 서양식 만찬에 어울렸던 양식기 외에도 궁궐의 실내 장식을 위해 일본산 도자기와 공예품들이 유행하였다. 대한제국기의 수입기물들은 이후 일제의 간섭과 급변하는 나라 정세로 인하여 우리만의 독자적인 특징을 발현하여 양식적인 발전을 이루지 는 못하였다. 그러나 수입기물들이 시대의 흐름에 따라 새로운 생활방 식으로의 변화를 이끌었고, 합리성을 추구한 점에서 긍정적인 의미를 찾을 수 있으며, 대한제국기의 사회⋅문화적인 면모를 다각적으로 조명 하는데 기여하였음은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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