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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24.04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충주 호암동유적은 금강유역과 남한강유역, 낙동강유역을 연결하는 교통의 요지에 자리하고 있는 데, 적석목관묘는 기원전 2세기 초, 목관묘 2기는 기원전 2세기 전·중엽에 조영된 것으로 추정된다. 과학적 분석 결과, 호암동유적의 청동기들은 구리-주석-납의 3원계 합금으로 추정되며,『주례』고 공기의 금유육제와 비슷한 비율로 주조되었다. 이는 호암동유적의 청동기들이 기능과 용도에 따라 적 합한 성분조성비로 주조되었음을 나타낸다. 납동위원소비 분석을 토대로 한 원료산지추정 결과 중국 북부산 4점, 남한3지구산 10점, 남한2지구산 6점으로 추정되어서 청동원료가 넓은 지역에서 수급되 었음을 보여준다. 충주 호암동유적은 세형동검문화의 중심부인 중서부지역과 원료산지인 남한2지구(강원 동남부-경 북 동북부지역) 사이에 자리해서 무덤 피장자들이 청동원료를 수급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을 것으로 생각된다. 그리고 세형동검문화가 일본열도로 파급되는 시기는 호암동유적의 유이식동모보다 늦은 시기로 추정되므로 발전Ⅰ기 말보다는 발전Ⅱ기 초로 생각된다. 호암동 적석목관묘의 무기류는 “원격전용 투사무기+근접전용 단병충격무기(세형동검)+근접전용 장병충격무기(동모·동과)”조합 을 이루고 있어서 충주지역이 군장사회로 접어들었음을 보여준다. 이러한 무기조합이 원삼국시대 토 광묘로 이어지는 것도 이를 뒷받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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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2022.10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한반도 남해안지역에서 청동기는 청동기시대부터 초기철기-원삼국시대까지 주로 사용되었다. 청 동기시대의 비파형동검문화는 지금까지 27개 유적에서 45점이 확인되었다. 남해안지역 비파형동검은 요서·요동지역과 크기와 형태가 다른데, 납동위원소비 분석 결과를 보아도 대부분 남한3지구산(충 청·전라·경북 북서부) 원료를 사용한 것으로 추정되어서 남한지역에서 남한산 원료를 사용해서 만 든 것으로 생각된다. 초기철기시대 세형동검문화의 청동기들은 남한2지구산(강원도 동남부) 원료를 사용한 것이 많아서 역시 남한지역에서 남한산 원료를 사용해서 만든 것으로 생각된다. 원삼국시대에 는 세형동검문화계 청동기와 함께 중국과 일본열도계 청동기도 확인되는데, 청동기는 계통을 막론하 고 원료가 대부분 중국북부산과 중국남부산으로 추정되어서 낙랑군을 포함한 중국에서 원료와 완성된 제품을 함께 들여 온 것으로 생각된다. 전쟁 인류학과 전쟁 고고학의 연구성과를 토대로 남해안지역에서 정치체의 형성과정을 살펴보면, 비파형동검문화의 무기조합은 원격전용 투사무기(석촉·동촉)+근접전용 단병충격무기(석검·비파형 동검)가 중심을 이루고 있어서 부족사회 단계로 생각된다. 그러나 여수반도 일대에서는 비파형동모가 출토되는 것으로 보아 강제력을 수반한 수장권이 형성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초기철기시대에는 세형 동검문화가 등장하면서 원격전용 투사무기(석촉)+근접전용 단병충격무기(세형동검)+근접전용 장병충 격무기(동모·동과) 조합이 확인되기 시작하므로 이 시기부터 강제력을 수반한 수장권이 형성된 군장 사회로 접어드는 것으로 생각된다. 원삼국시대에는 철제 무기가 사용되면서 원격전용 투사무기(석 촉·철촉)+근접전용 단병충격무기(세형동검·철단검)+근접전용 장병충격무기(동모·동과·철모·철 과) 조합이 정착되고 있어서 『삼국지』에 보이는 국이 형성되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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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2020.10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한국고고학에서 선사시대는 물질문화의 변동을 기준으로, 역사시대는 왕조의 변천을 중심으로 시대구분하고 있다. 그러나 청동기-초기철기시대는 선사시대에서 원사시대로 전환되는 시기여서 한 가지 기준만으로 시기구분 하기는 어렵다. 한국 청동기-초기철기시대의 공간적 범위는 무문토기문화의 분포권이면서 비파형동검문화와 세형동검문화가 분포하는 한반도와 요동·요서지역까지이다. 필자는 이를 한국고대문화권으로 설정하였다. 한국 청동기-초기철기시대의 시기구분은 한국고대문화권을 포괄할 수 있는 안이어야 한다. 한국고대문화권에서 청동기-초기철기시대는 기원전 20세기경부터 기원전후경까지이다. 이 시기에는 초기청동기문화, 비파형동검문화, 세형동검문화, 초기철기문화가 차례로 등장한다. 또한 고조선을 비롯한 초기국가들이 형성되기 시작한다. 물질문화의 변동을 기준으로 시기구분하면, 청동기시대 전기는 초기청동기문화가 등장·발전하는 기원전 20~10세기경까지이며, 청동기시대 중기는 비파형동 검문화가 등장·발전하는 기원전 9~8세기부터 기원전 6~5세기(요서), 또는 기원전 4세기(요동과 한반도)까지이다. 청동기시대 후기는 전국시대의 중원계 물질문화가 대거 들어오면서 요서의 십이대영 자문화가 크게 변화되고(기원전 5~4세기), 이어서 요동과 한반도에 세형동검문화가 등장하는 때(기원전 3세기 초)까지로 설정할 수 있다. 기원전 3~2세기에는 전국시대 중원계의 초기철기문화(세죽리 -연화보유형)가 들어온다. 고조선은 청동기시대 중기에 등장했을 가능성이 크지만 중국 사서에 그 존재를 뚜렷하게 드러낸 것은 청동기시대 후기인 기원전 4세기경부터이다. 그러므로 이때부터는 고조선을 시대 명칭으로 병기 해도 좋을 것이다. 초기철기문화가 들어오는 기원전 3~2세기에는 고조선은 물론 부여와 삼한 등의 초기국가들이 대거 등장하는 시기이므로 초기국가들을 대표하는 고조선을 시대명칭으로 사용하여도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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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2020.04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세형동검문화의 청동제 목공구로는 동부와 동착이 있다. 동착은 단순하지만 동부는 선형동부와 유견 동부, 장방형동부, 주머니형동부로 다양하다. 이 중 합인인 주머니형동부를 제외한 나머지는 모두 편인 이다. 필자들은 민족지 자료를 검토하는 과정에서 1960년대까지 신석기시대 농경민의 삶을 살고 있었 던 뉴기니의 두굼 다니가 돌도끼는 나무를 쪼개는 데 사용했고, 자귀는 나무를 베고 다듬는 데 사용한 사실을 확인하였다. 이에 따라 필자들은 장방형동부를 도끼와 자귀로 착장해서 나무 베기 실험을 진행 하였는데, 자귀로 사용했을 때 훨씬 더 효과적이라는 사실을 확인하였다. 이러한 양상은 두굼 다니의 사례, 그리고 돌도끼와 돌자귀로 나무 베기를 진행한 실험고고학적인 연구 결과와도 상통한다. 즉, 장방형동부는 나무를 벨 수도 있고 다듬을 수도 있는 자귀여서 長方形銅錛이라는 명칭이 더 적합하다. 나아가 세형동검문화의 동부들은 합인인 주머니형동부를 제외한 나머지는 모두 자귀여서 有肩銅錛, 扇形 銅錛으로 부르는 것이 타당하다. 한국 고고학계에서는 목공구의 명칭을 총칭해서“斧”로 쓰거나“斧”와“鑿”으로 이원해서 쓰는 경 향이 강하다. 하지만 이러한 목공구 명칭은 현대 대목장의 연장인 도끼, 자귀, 끌이나 18세기에 편찬된 『才物譜』의 斧(독긔), 錛子(자귀), 鑿( )이라는 명칭과 달라서 대중들의 인식과 괴리되어 있다. 그 래서 한국 고고학계에서도 목공구의 명칭을 도끼(斧), 자귀(錛), 끌(鑿)과 같이 전통적이면서도 현대적 이어서 대중들이 이해할 수 있는 명칭으로 수정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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