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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國靑銅器學報 KCI 등재 한국청동기학보 Journal of Society for Korean Bronze Cult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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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호

제31권 (2022년 10월) 7

1.
2022.10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본고에서는 춘천분지를 중심으로 북한강과 소양강 일원의 미사리유형 취락의 단계별 변천양상과 이들의 입지 변화 원인을 검토하였다. 북한강유역에서 돌대문토기는 3단계의 변화를 보이고 있다. 약 3,100 BP를 기점으로 등장과 발전, 쇠퇴의 시간적 변화를 보이고 있는데, 이러한 변화의 모습은 입 지에서도 확인된다. 북한강 유역 미사리유형 취락의 1단계에는 천전리 일원과 중도동 남서쪽에 미사리유형 주거가 처 음으로 조성되는데, 중(대)형의 장방형 주거지와 소형 방형 주거지 등이 분산되어 분포하는 등 소규모 취락의 형태로 나타난다. 2단계에는 1단계에 축조된 세대공동체의 공동주거형인 중(대)형의 장방형 주거지와 소형 방형 주거지의 축조 숫자가 증가한다. 중도유적에서는 B1구역과 D1구역에 먼저 주거 군이 형성되고, 점차적으로 동쪽(E1) 구역과 북쪽(D2ㆍ3구역)으로 확장되며, 기타 취락 등지에서도 주거군의 밀집도가 넓게 분포하는 등, 여러 지역으로의 대규모 취락 형태로 조성된다. 3단계에 들어 서면 취락의 규모가 축소되면서 중도지역에서는 남서쪽 일부지역으로 주거가 축조되고, 인접한 금산 리ㆍ현암리나 근화동 지역으로 취락의 축조가 옮겨가는 현상이 확인된다. 이러한 돌대문토기 단계의 변화는 입지와 같이 하는데, 이의 구체적 원인은 기후 변화와 궤를 같이 하고 있다. 즉 청동기시대 들어서 지역적 기후 변화가 진행되면서 춘천분지의 지형경관도 바뀌게 되었 고, 이는 취락의 입지 변화와 같이 나타나게 되었다. 춘천분지라는 평탄한 대지에 축조된 미사리유형 취락은 처음 등장한 1단계에는 하천의 접근에 용이한 지역, 특히 북한강과 소양강의 평형천 부근에 인 접하여 주로 입지한다. 이후 기온 상승에 따른 하천유량의 증가로 인해 하천의 접근에 용이한 다양한 지형으로 입지의 변화를 보이고, 3단계에 들어서면서 하강하는 기온으로 인해 미사리유형 취락은 북한 강과 소양강의 평형천 근처 지형으로 다시 이동하게 되지만, 북한강 중상류지역의 좀 더 안정된 지형 에 집중한다. 3단계 미사리유형 취락의 입지는 1단계의 지형입지로 경관과 유사해지면서 취락 또한 원 장소를 점유하려 하지만, 이 시기에는 북한강 유역으로 역삼동유형 취락이 등장하게 되면서 우두동과 천전리 일원의 단구지형과 중도동의 하중도 지형은 더이상 접근이 어려워지게 되었다. 이후 춘천 분지 지역은 청동기시대 전기와 중기의 취락지로 새롭게 입지적 개편이 진행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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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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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생계경제의 변화에 따라 취락 점유 방식이 어떻게 변화하는지 살펴보는데 목적이 있다. 생 계경제의 전환 과정에서 사용된 도구 중 석기는 다양한 활동에 사용되고, 잔존율이 높아 당시 생계경 제 변화 과정을 추적하는데 효과적이다. 따라서 경기지역 청동기시대 취락의 생계경제를 살펴보기 위 해 주거지에서 출토되는 석기도구에 주목하여 지역별, 시기별 조성비의 변화를 검토하였다. 그리고 이러한 시기별, 지역별 생계경제의 차이가 취락에 어떻게 반영되는지 함께 살펴보고자 하였다. 경기지역의 취락은 생계경제 전략에 적합한 방식으로 점유 양상이 변화한다. 생계경제의 변화를 검 토한 결과 경기지역은 전기 전반에 복합 생계 활동을 했던 것으로 판단된다. 세부 지역별로 차이가 있 으나 전기 전반에는 수렵·채집에 사용되는 도구의 비율이 높아 이동 생활의 비중이 높았을 것으로 판단되며, 이로 인해 장기 점유의 필요성이 낮았을 것으로 보인다. 중기에는 생계경제에서 농경의 비중이 증가하는 것으로 판단된다. 전기 후반부터 전체 석기 도구 중 농경구의 비중이 증가하기 시작하는데, 중기 단계가 되면 농경구의 비율이 최대로 확인되며 채집 활동과 같은 이동이 필요한 생계 활동은 감소하는 것으로 보인다. 농업 생산물을 증대하기 위해 당시 인구는 장기 점유를 하며 관개시설과 같은 생산 설비와 농지를 관리할 필요성이 증가했을 것이다. 따 라서 농업 생산량 증대에 적합한 점유 방식을 채택해 점유를 이어나갔을 것으로 추정된다. 후기가 되면 농경구의 수량이 전체적으로 감소하고 수렵, 채집, 어로 활동에 필요한 도구의 비율이 증가한다. 따라서 농경 중심의 생계경제에서 복합 생계경제로 변화하면서 장기 점유의 필요성이 감소 했을 것으로 생각된다.
6,600원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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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동기시대 전기의 방형계 주거지는 당시 사회의 가족 구성의 결과물이며, 그 형태적 변이는 가족 의 발달과정에 기인하는 것으로 이해되기도 한다. 또한, (세)장방형 주거는 복수의 방형(단위)주거가 병렬적으로 연결된 형태이며, 그 단위주거는 핵가족의 주거공간이라는 추정 또한 널리 퍼져 있다. 그러나 많은 연구자들이 장단비가 시간성을 반영한다는 관행적 판단에 기초하여, 한 유적에서 공존 하는 장방형 주거지와 방형 주거지의 관계를 단지 시기적 차이로 해석함에 따라 주거의 변이에 대한 여러 요인―가족의 발달에 따른 주거 규모의 변화, 주거의 사용(신축과 증ㆍ개축)과 폐기 등―의 이 해를 저해하는 문제를 야기하게 되었다. 본고는 이러한 문제의 극복을 위해, 한강 하류역 청동기시대 전기 취락 유적들의 양상을 분석한 기 초자료를 바탕으로 가족 형태와 가구 양상 변화를 연결할 수 있는 고고학적 설명모형을 통해 가구발 달주기에 대한 인식이 한강 하류역 청동기시대 전기 주거 양상의 역동적 측면을 이해할 수 있는지를 살펴보았다. 주거지 간 중복양상이나 절대연대가 모호한 상황에서 주거지 평면 형태에 주목하는 기존의 편년관 안에서는 한강 하류역 청동기시대 전기 주거 양상을 역동적으로 설명하기 어렵다고 판단된다. 따라서 결합주거지를 고정된 문화적 실체로 파악하고 주거의 형태 차이를 양식적 차이로 이해하기보다는 가 족의 성장에 따른 주거 규모의 변이라는 기능적 측면을 상정해 보는 것이 합리적일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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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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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국리형 주거지의 이용 및 폐기과정은 청동기시대의 흥미로운 연구 과제 중 하나이며, 특히 내부 흑색토층의 존재는 많은 관심을 끌어왔다. 송국리 유적 제24차와 25차 발굴조사에서 내부 흑색토층 이 확인된 주거지(98호, 100호, 107호)를 대상으로 환경고고학적 연구(토양 미세형태분석 및 규소체 분석)를 수행하였다. 토양 미세형태분석 결과, 내부 흑색토층은 탄화물이 집적된 층으로 보이며 탄화 가 비교적 가까운 곳에서 일어났을 가능성을 시사한다. 아마도 지붕이나 벽체를 비롯한 상부 구조물 이 탄화되어 집적된 층일 가능성이 높다. 한편 100호 주거지의 규소체분석 결과, 중간 흑색토층 및 상부 퇴적토에서 벼와 조의 규소체가 다량으로 확인되었다. 그리고 사초과 식물의 규소체와 해면동물 골편이 출토된 것으로 보아 저지대(예, 수전) 토양을 벽체 등의 건축재로 사용했던 것으로 보인다. 또 한, 내부 흑색토층이 보이는 주거지와 수혈유구는 연접한 경우가 많아, 화재에 의한 탄화물이 주거지 와 인근 수혈 내부로 흘러 들어간 것으로 생각된다. 이를 종합하여 보면 일부 주거지는 사용이 중지된 이후, 기둥과 같은 주요 건축재를 해체하여 반출한 다음 재활용이 어려운 나머지 잔존 구조물을 소각 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리하여 탄화물이 집적되어 수혈 중간부에 흑색토층을 생성했던 것으로 추정된 다. 본 연구에서는 토양 미세형태분석과 규소체분석이 상호보완적으로 함께 수행되어 해석의 지평을 넓힐 수 있었다.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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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지석묘라는 것이 과연 어떤 것인가 하는 고고학계의 관점을 학사적으로 검토하고 함안 분지 안에 분포하는 지석묘군의 매장시설 배치와 입지 및 분포에 대해 해석을 시도한 연구이다. 처음 지석묘 연구자들은 한 시대의 문화적 표지물이나 사회발전 단계의 증거물로 파악해 왔지만 최근에는 일정 경관 내의 기념물로 파악하는 관점이 우세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함안의 지석묘군은 일상의 주거와 섞이지는 않지만 일상의 주거군에서 멀지않은 장소에 축조되는 경향은 뚜렷하다. 함안분지는 주변 남강유역이나 남해안 분지의 양상과는 다르게 대규모 매장의례의 복합단지가 조성되는 현상이 관찰되지 않는 대신 지석묘가 취락 인근에 집중적으로 축조되어 왔다. 함안의 지석묘는 선상 배치되 는 양상이 뚜렷하고 그것은 당시 주민이 일상적으로 이동할 때의 교통로를 따라 배치된 결과일 가능 성이 크다. 특히 남북으로 길게 형성된 곡저평야 하천을 따라 선상으로 배치된 상석 열은 수백 년에 걸친 축조와 의례가 반복된 결과라 할 수 있다. 상석 한두 개의 존재가 지석묘군의 위치를 말해주는데 상석 아래와 그 주변에는 10~20여 기 내외로 구성된 매장시설군이 분포하는 양상이 확인된다. 이러 한 지석묘군이 길면 2km 이상 연접 배치되어 선상의 지석묘 대군집을 형성한다. 각각의 소군집을 매 장의례의 장소로서 공유한 공동체들이 서로 협상하고 협동하여 축조와 의례를 반복해온 결과물이라 할 수 있다. 이와 같은 지석묘군을 경관 내의 특정한 장소라는 개념으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 지석묘 가 구축된 장소에는 공동체적 경험과 역사적 서사가 깃들여 있어서 기억을 소환하는 능력이 있다. 특 히 기념물적 건축의 축조, 특정한 의미를 지닌 유물의 매납과 같은 수행을 통해 장소가 만들어지고 건 축물이나 매납물의 물질성에는 개인과 집단의 기억이 퇴적되고 오랫동안 역사적 서사가 소환된다. 함 안 분지의 열상배치 지석묘군에는 개인적, 공동체적 경험과 기억들이 퇴적되어 왔기에 역사적 서사들 이 길게 연장되면서 현재의 물질적 흔적이 남아 있는 기념물로 해석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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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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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남한지역의 생활 유구와 분묘에서 출토된 유경식 석검의 속성을 검토해 형식분류하고 이를 통해 지역성 및 전개 양상, 석검의 성격과 기능 추정을 목적으로 하였다. 남한지역을 다섯 개 권역으 로 세분하고, 계측형과 명목형 속성을 검토한 결과, 기존 연구에서 주목했던 경부 길이는 검신부 길이 와 무관하게 2~5.4cm 범위에서 제작되어, 본고에서는 형식분류 기준을 경부 길이가 아닌 경부 형태, 전체 길이, 최대폭 위치로 설정해 11개 형식으로 구분하였다. 방사성탄소연대 측정치와 공반유물을 종합해 지역·형식별 시간성을 검토한 결과 전 지역에서 전기 후반부터 유경식 석검이 등장했고, ⅠA 식 석검이 선호되었음을 확인하였다. 중기에는 석검의 크기와 경부 형태의 다양성이 확인되었고, 생 활 유구와 더불어 분묘에도 부장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전기 물질문화 전통이 지속되었던 중부, 강 원, 영남 동해안 권역에서는 여전히 생활 유구에서만 사용되었고 분묘 부장 사례는 송국리 문화가 확 산된 권역에서 확인되어, 유경식 석검의 분묘 부장은 송국리 유형의 확산 결과로 이해하였다. 한편 중 부지역은 각형토기 문화권과 형태적 유사성이 높은 Ⅳ형식 석검, 전기부터 9개의 형식이 등장했으나 소멸 양상이 이르게 확인되는 점, 물질문화의 이동 방향을 고려했을 때 남한지역에서 유경식 석검의 확산은 중부지역을 통해 이루어진 것으로 이해하였다.
6,000원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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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남해안지역에서 청동기는 청동기시대부터 초기철기-원삼국시대까지 주로 사용되었다. 청 동기시대의 비파형동검문화는 지금까지 27개 유적에서 45점이 확인되었다. 남해안지역 비파형동검은 요서·요동지역과 크기와 형태가 다른데, 납동위원소비 분석 결과를 보아도 대부분 남한3지구산(충 청·전라·경북 북서부) 원료를 사용한 것으로 추정되어서 남한지역에서 남한산 원료를 사용해서 만 든 것으로 생각된다. 초기철기시대 세형동검문화의 청동기들은 남한2지구산(강원도 동남부) 원료를 사용한 것이 많아서 역시 남한지역에서 남한산 원료를 사용해서 만든 것으로 생각된다. 원삼국시대에 는 세형동검문화계 청동기와 함께 중국과 일본열도계 청동기도 확인되는데, 청동기는 계통을 막론하 고 원료가 대부분 중국북부산과 중국남부산으로 추정되어서 낙랑군을 포함한 중국에서 원료와 완성된 제품을 함께 들여 온 것으로 생각된다. 전쟁 인류학과 전쟁 고고학의 연구성과를 토대로 남해안지역에서 정치체의 형성과정을 살펴보면, 비파형동검문화의 무기조합은 원격전용 투사무기(석촉·동촉)+근접전용 단병충격무기(석검·비파형 동검)가 중심을 이루고 있어서 부족사회 단계로 생각된다. 그러나 여수반도 일대에서는 비파형동모가 출토되는 것으로 보아 강제력을 수반한 수장권이 형성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초기철기시대에는 세형 동검문화가 등장하면서 원격전용 투사무기(석촉)+근접전용 단병충격무기(세형동검)+근접전용 장병충 격무기(동모·동과) 조합이 확인되기 시작하므로 이 시기부터 강제력을 수반한 수장권이 형성된 군장 사회로 접어드는 것으로 생각된다. 원삼국시대에는 철제 무기가 사용되면서 원격전용 투사무기(석 촉·철촉)+근접전용 단병충격무기(세형동검·철단검)+근접전용 장병충격무기(동모·동과·철모·철 과) 조합이 정착되고 있어서 『삼국지』에 보이는 국이 형성되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6,7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