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의 선사문화는 遼河-黑龍江-烏蘇里河·綏芬河 등으로 경계 지워진 長白·千山山地을 중심 으로 하는 極東亞細亞農獵區에 해당된다. 이 지구는 신석기시대 이래 오랫동안 수렵·어로·채집 위 주의 비농경 생계 경제를 기반으로 하고 있었다. 극동아세아 농렵구 최초의 농경문화인 偏堡文化는 기원전 3,000~2,500년 사이 遼東半島 남단에서 성립되었다. 細條堆紋과 같은 토기 장식은 山東 膠東半島의 大汶口文化에서 유래되었을 가능성이 높 으나, 附加堆紋 통형관 등의 炊事器와 본격적인 농경 개시의 증거가 되는 桂葉形 有孔石刀 및 遼東半島 특유의 石墓 傳統 등으로 보면 紅山文化와의 관련성이 높다. 偏堡文化는 이후 천산산지 西北麓을 거쳐 沈陽등 遼中지역으로 북상하는 한편, 천산산지 南麓 서해 연안을 따라 한반도 鴨綠江·淸川江 하구 연안 일대를 거쳐 한반도 중남부지역으로 파급된다. 한반 도 중남부지역의 신석기 후기~말기의 二重口緣土器 등장의 배경이 되었으며 이어서 청동기시대 渼沙里類型 突帶紋土器로 정착되었다. 附加堆紋이 二重口緣土器로 대체된 羊頭窪文化 역시 천산산지 남록을 거쳐 압록강·청천강 하구 서해연안에 파급되어 新岩里II기 문화(新岩里 3지점 2문화층)로 나타나며, 이어서 원산만을 거쳐 한 반도 중남부지역으로 확산되어 可樂洞類型으로 정착된다. 그 이후 기원전 1,100년 전후 성립된 雙房文化는 북상하는 흐름에 비해 東傳의 기류는 상대적으로 약하여 직접적인 영향은 한반도 淸川江·大同江 유역 이북 지역에 국한되었다.
본고에서는 요동반도 남단에서 출토된 무기형 석기를 대상으로 자료를 집성 및 정리하였으며, 주변 지역에서 출토된 자료와 비교 분석을 통해 석모와 석촉으로 대표되는 무기형 석기가 청동기시대 유적 에서 출토된 유물 중에서 높은 비율로 출토되고 있음을 확인하였다. 이러한 현상은 청동기시대 요동 반도 남단에서 4단계로 나누어지는 고고학 문화 전반에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며, 엄밀하게는 청동기시대 중국 동북지역 내에서 요동반도 남단만의 문화 특징에 해당한다. 이러한 문화 특징은 압 록강과 두만강 유역 및 한반도와 일본 열도 등의 고고학 문화와 관련성이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주지하다시피 청동기시대는 신석기시대보다 정형화된 석기인 磨製石器가 성행하였으며, 청동기시 대에서 당시인들의 주요 도구였던 석기에 대한 이해는 필수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비교적 지역연구가 활발하다고 할 수 있는 남강유역의 청동기시대 연구는 아직까지도 토기 나 특정 유구 중심의 연구가 대부분이고, 그에 비해 석기연구는 미진하다고 볼 수 있다. 그나마 최근 에 나온 남강유역 석기연구는 석기의 개별 기종만을 분석한 연구이기 때문에 남강유역의 전체적인 석 기양상을 알기에는 무리가 있다. 필자는 이에 영남지역의 청동기시대 대표 동일문화지역권이라 할 수 있는 南江流域을 연구대상지 역으로 하여 최근까지 확인된 다수의 자료를 바탕으로 형식 분류가 가능한 대표 마제석기들의 편년과 단계설정을 실시하고, 이를 바탕으로 이 지역 석기문화가 가진 특징과 시간의 흐름에 따른 변천과정 을 파악하고자 하였다. 그 결과, 본고는 기본적으로 기존에 연구가 상당히 진행되어 시간성을 잘 알 수 있고, 공반관계 검 토가 용이한 출토유구인 주거지와 무덤과의 비교 검토 및 각 기종별 마제석기의 공반양상을 통해 남 강유역 청동기시대를 총 5단계로 구분할 수 있었다. 남강유역 석기에서 보이는 특징적인 형식을 기종별로 살펴보자면, 석검은 무덤에서만 출토되는 병 부가 직선형인 ⅡC식, 단부돌출형 석촉 ⅢA5식과 촉신의 형태가 방패형인 ⅢBㄱ식, 한쪽 단부가 부 푼형태의 석도 Ⅳㄷ식 등이 있다. 이러한 형식들은 남강유역의 지표형식으로서 추후 다른 지역과의 상관관계 및 영향력까지도 상정할 수 있을 것이다. 이뿐만 아니라 본고의 석기연구를 통하여 남강유 역이라는 동일문화지역에서 확인되는 諸석기 양상을 살펴보고, 청동기시대의 문화상과 관련된 선행 연구의 공백을 메울 수 있는 주요한 고고학자료로서 가진 의미를 상기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한국고고학에서 점토대토기문화에 대한 연구는 기원과 편년, 그리고 전개양상을 중심으로 진행되 어 왔으며, 여기에 사회성격에 대한 논의가 추가되고 있는 상황이다. 본고는 이와 같은 연구경향을 발 전적으로 계승하면서 중국 요령지역에서 남한지역으로 유입된 외래계 점토대토기문화가 재지문화와 어떠한 접촉 양상을 보여주고 있는지, 그리고 이에 수반하여 어떠한 변화가 나타나는지에 대해서 주 거문화에 초점을 맞춰서 검토하였다. 먼저, 주거구조에서 볼 때 벽부노뿐만 아니라, 그동안 주목하지 않았던 장축노도 외래계 주거에 속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았다. 또한 평양 남경 3호 주거의 토기 를 점토대토기로 인정하는 쪽과 비판적으로 보는 입장이 상존하는 상황에서, 주거구조를 검토하여 전 자의 견해가 타당하다는 것을 밝혔다. 점토대토기 출토 유적을 취락의 측면에서 보면, 영동지역에서 는 외래계 주거 및 유물이 주체적인 유적이 주로 확인되고 있는 반면에, 영서지역의 경우는 재지문화 가 중심을 이루는 취락에서 외래문화가 일부 수용되는 경향이 나타났다. 양 지역 모두 재지문화와 외 래문화가 상호작용하면서 상대방의 문화를 받아들였는데, 이는 혼인과 같은 인적교류가 활발히 이루 어진 것과 연동되는 것으로 생각된다. 이와 관련하여 외래계 취락과 재지계 취락의 교류 과정에서 나 타난 모방(절충)토기의 존재를 주목하였다. 한편 유적마다 타문화 주거지의 구성 비율 및 유물 출토 양상에서 차이가 있는 점에서 볼 때, 집단마다 공동체의 성향에 따라 외부 문화의 수용 양태가 달랐던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