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고는 북한강유역 청동기시대 취락의 전개와 석기제작시스템에 관한 연구이다. 주거지의 구조와
출토유물을 통해 볼 때, 돌대문토기문화, 가락동유형문화, 역삼동유형문화, 각형토기문화 등 다양한
문화요소를 받아들인 전기의 문화는 역삼동유형의 문화를 기반으로 하는 지역성이 강한 중기의 문화
로 전개되며 후기에 이르러 주거지의 규모가 축소되면서 점토대토기문화와도 접촉한다. 전기 중·후
엽 역삼동유형의 주거지의 내부구조가 노지중심의 구조에서 작업공간이 분리되면서 이색점토구역이
설치되고 취락내에서는 공방지가 성행하게 된다. 즉, 중기에는 이색점토구역이 설치된 주거지와 함께
공방지의 수적 증가가 관찰되고 후기에는 규모가 대폭 축소된 방형주거지가 출현하며 공방지 또한 지
속된다. 이러한 전개과정 속에서 주거지의 내부구조변화와 공방지의 출현이 석기의 제작과 밀접한 관
련이 있음을 확인하였다. 인접한 석재 산지로부터 조달된 석재의 보관·선별·분할·분배는 공방지에
서 공동작업을 통해, 분배된 석재를 선택적으로 이용하는 석기의 세부제작공정은 개별주거지에서 행
해지는 병행적인 석기제작시스템의 확립과정을 제시하였다. 이와 같은 석기제작시스템의 확립과정은
건축기술의 차원에서의 주거구조의 변화와 취락내 독립적인 공방지 출현과 관련이 깊으며, 전문생산
체계로의 발전과정에서 과도기로서 농경 위주보다는 다양한 생계활동을 기반으로 삼아 계급사회로 이
행되는 과정으로 파악된다.
이 논문은 김해 율하리유적에서 조사된 청동기시대의 무덤을 중심으로 시신 매장방법에 관해 검토한 것이다. 유적은 주거+저장+분묘+의례공간으로 구성된 청동기시대 후기의 대규모 취락유적으로, 이중 무덤은 총 106기가 확인되었다. 무덤의 종류는 지석묘(개석식 묘역지석묘, 개석식 지석묘), 석관묘(상형석관묘, 석축석관묘), 목관묘, 토광묘, 옹관묘 등이며, 여기에 채용된 매장주체부의 종류도 상형석관, 석축석관, 石+木棺, 목관, 옹관, 토광 등이다. 특히 지석묘의 매장주체부는 석축석관이 주를 이루지만 옹관을 제외한 모든 형식이 사용된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이것은 지석묘의 속성이 기본적으로 상석이나 묘역을 통해 외형적으로 드러내는 것으로 내부적 속성인 매장주체부는 일률적으로 정하는 것이 아니라 필요에 따라 선택적으로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 또한 石+木棺이 사용된 무덤은 최근에 조사예가 증가하고 있는데, 목관이 보다 적극적으로 매장주체부에 수용된 결과라 생각된다. 따라서 목관묘와 토광묘도 다른 묘제들과 함께 청동기시대에 활발히 조성되었던 무덤형식임을 알 수 있다. 하지만 한 단위 유적만을 대상으로 하였기 때문에 한반도 전역으로 확대하여 해석하는 것은 아직 한계가 있지만 확인된 무덤의 수가 많고, 다양한 묘제들과 매장주체부가 복합적으로 출토되기 때문에 한국 청동기시대 무덤 매장방법에 대한 하나의 모델이 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