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행물

韓國靑銅器學報 KCI 등재 한국청동기학보 Journal of Society for Korean Bronze Culture

권호리스트/논문검색
이 간행물 논문 검색

권호

제6권 (2010년 6월) 4

1.
2010.06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송국리형 주거는 한반도 청동기시대의 대표적인 주거로서, 다른 주거에 비해 가장 오랜 세월동안 축조되는 것이 특징이다. 즉 전통성·지속성·보편성을 가지는 주거라고 할 수 있다. 전남의 남해안지역은 진도·해남권역, 탐진강유역권역, 고흥반도권역, 여수반도권역으로 크게 나눌 수 있다. 여수반도권역을 제외한 나머지 3개 권역은 영산강유역을 비롯한 호남지역의 송국리형 주거 문화의 범주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여수반도권역은 남강유역권과 인접해 있어 점이지대 혹은 문화적 동화나 융합의 성격이 강했을 것으로 판단된다. 남해안지역은 주거지에서 출토되는 유물의 양과 종류가 매우 한정적이고 빈약하다. 현재까지 탐진강유역이 가장 다양하고 풍부한 유물군을 보이고 있다. 특히 이 지역은 기원전 7세기를 전후한 시점에 이미 대규모 취락을 형성했을 가능성이 높다. 이러한 송국리형문화는 여수반도권역에서 기원을 전후한 시기까지 지속되고 있다. 제주도에서 나타나는 대규모 송국리형 취락은 영산강유역을 비롯한 전남 남해안지역의 영향을 받았을 것으로 보인다. 취락 형성기에 소위‘돼지코’형태의 주거가 대다수를 차지하는 것은 이를 방증한다. 그러나 물질문화에서는 제주도의 특색을 강하게 보이고 있어 취락형성에 대한 다각적인 분석이 요구된다.
7,000원
2.
2010.06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경상도의 송국리문화는 발생지로 추정되는 충청지역과는 문화요소의 측면에서 相似點과 相異點이 존재한다. 그리고, 경상도내에서 內陸과 南海岸地域간 차이가 존재하며, 그 차이는 南海岸지역을 다시 東部의 洛東江下流域과 西部의 晉州圈域의 두 권역으로 나누어서도 확인된다. 남해안지역의 경우 두 권역의 가장 큰 차이점은 松菊里住居型에서 진주권역은 평면方形의 大坪里型, 낙동강하류역은 圓形의 梧谷里型이 절대 우세하다는 점이다. 또한 많은 勞動力의 동원과 이들에 대한 組織的인 制御力이 필요한 大形의 墓域支石墓가 梧谷里型과 關聯되었을 가능성으로 보아 주거형이 곧 時間性을 말해주는 증거일 가능성도 있다. 경상도 남해안은 송국리문화라는 그 자체만 보았을 때, 최종적으로는 바다를 건너 타 지역으로 전해졌을 가능성이 높은데, 현실적으로 남서쪽에 위치한 제주도보다는 남동쪽의 日本九州地方과의 聯關性이 크다. 실제 많은 연구에서 일본 야요이문화의 開花에 송국리문화의 영향이 컸음이 밝혀지고 있는데, 그 기본적인 바탕에는 송국리문화가 곧 農耕文化라는 점이 중요한 증거가 되었다고 생각된다. 또한 무엇보다 송국리문화의 대표적인 요소인 송국리형주거지의 同型이 그곳에서도 그대로 수용되었다는 점에서 더욱 확실한 증거로 볼 수 있다. 즉 일본 야요이문화 초기에 확인되는 송국리형주거지의 형태가 경상도 남해안지역에서 많이 확인되는 일명‘梧谷里型’이라는 점에서 더욱 이 지역과의 관련성을 대변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5,200원
3.
2010.06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본고는 제주도 송국리문화의 수용과 전개양상에 대한 연구이다. 제주지역의 송국리문화는 금강유역에서 호남지역으로 확산되는 과정에서 유입된 것으로 추정된다. 제주도에 송국리문화가 수용되고 전개되는 과정은 크게 3단계로 구분된다. 1단계(수용)는 A형의 송국리형주거지가 주로 축조된다. 토기는 재지계의 직립구연토기와 삼양동식 토기가 확인되며 외래계의 점토대토기와 흑색마연장경호 등이 동반 출토된다. 반면 석기는 편인석부, 일단병식석검, 편평삼각형석촉 등이 출토되고 있다. 1단계는 B.C.4~2세기경에 해당한다. 2단계(확산)는 주거지의 규모가 다소 축소되며 A형이 지속적으로 축조되지만 B형과 C형 등 다양한 형태가 출현하게 된다. 토기는 직립구연토기가 소멸하고 삼양동식토기가 일부 잔존하고 있으나 대부분 외도동식토기로 전환되는 단계이다. 이외에도 高杯型土器, 盤型土器, 토기뚜껑 등 새로운 기종이 출현한다. 석기는 식량처리구를 제외하고는 거의 확인되지 않는 점으로 미루어 철기로 전환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2단계는 B.C.1~A.D.2세기경에 해당한다. 3단계(전환)는 송국리형주거지가 일부 잔존하고 있으나 외도동식주거지로 전환되면서 소멸되는 과정에 해당하는 것으로 판단된다. 토기는 이전 단계의 기종이 대부분 소멸하고 외도동식토기로 단일화되고 있으며 일부 마한계 토기가 동반 출토되고 있다. 석기는 2단계와 마찬가지로 식량처리구를 제외하고는 확인되지 않고 있으며 철제품이 급증하는 현상을 보여주고 있다. 3단계는 A.D.3~4세기경에 해당한다.
8,700원
4.
2010.06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본고는 청동기시대 석기의 취락 내 제작 양상에 관한 연구이다. 석기의 제작 단계는 대체적으로 타격에 의한 1차 성형의 1단계, 고타와 약마를 통해 거친 면을 다듬고 세부적인 형태를 조정하는 2단계, 세부 마연을 행하는 3단계로 구분할 수 있었다. 이상 설정된 단계별 미제품과 석기 제작 도구의 출토 양상, 그리고 석기 제작과 관련된 유구 내부의 흔적 등을 종합적으로 비교·검토한 결과, 유적의 점유시기보다는 입지에 따라 제작상에 차이가 있었던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취락 내 석기 제작의 시기별 변화상은 각 유적에서 출토된 미제품과 완제품의 조성 비율을 통하여 살펴볼 수 있었다. 먼저, 가공 도구 가운데 고석의 주거지 당 출토량이 전기에 비하여 후기에 급감하는데, 고타기법이 합인석부의 제작에 주로 이용되는 점과 합인석부가 화전농경에 관련된 도구임을 감안하여 이러한 농경 방식이 청동기시대 후기에 감소하였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또한 미제품과 완제품의 조성비 비교 결과 전기 단계에 훨씬 더 많은 미제품과 파손품이 발생하였음이 확인되었는데, 이는 후기 단계에 석기의 형태가 제작하기 쉬운 형태로 변화한 사실과 관련된 것으로 추정하였다. 이밖에 입지·시기별 변화와 관계없이 주거지 면적이 넓어질수록 미제품과 완제품의 출토량이 많아지는 경향성도 확인되었다. 이와 병행하여 실시한 석기 제작 실험 결과, 선형석기의 제작에 있어서 양극기법의 유용함과 석도의 천공 작업 시 고타 과정을 거치는 것이 그렇지 않은 경우보다 효율적이라는 점을 확인하였다. 또한 석부는 강한 암질의 석재를 대상으로 제작하기 때문에 형태가 비슷한 것을 이용하여 작업을 최소화 하였으며, 특정 부분을 마연하는 경우 가공 대상물을 고정시키고 소형의 지석을 움직이는 것이 보다 효율적이라는 점을 확인할 수 있었다.
6,6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