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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國靑銅器學報 KCI 등재 한국청동기학보 Journal of Society for Korean Bronze Cult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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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호

제18권 (2016년 4월) 3

1.
2016.04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부여 송국리유적에서 플라스크형적색마연호가 처음 알려진 이래 오랜 시간이 지났고, 발굴조사의 폭증 속에서 무문토기 자료는 엄청난 증가 추세에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형적인 플라스크형적색마연호의 수량은 예상외로 많지 않고, 이에 대한 개별 연구도 잘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전형의 경우 기고와 동최대 경의 계측치 분포가 대단히 좁은 범위에 한정되어 있는 점에서 다른 토기에 비해 어느 정도 규격화되어 있었을 가능성이 있다. 플라스크형적색마연호는 대단히 한정된 시기 동안만 사용되었기 때문에 세밀한 편 년보다는 계통 및 기능의 파악이 더 필요하다. 플라스크형적색마연호의 분포 범위는 자료가 증가한 현재에도 이전과 큰 차이를 보이지 않아 안정된 분포권으로 보아도 좋을 것이다. 송국리형주거지 및 송국리식 토기 등은 분포 범위가 매우 넓은 반면, 플라스크형적색마연호는 송국리유형의 여러 요소 가운데 금강중 하류역에 한정되는 매우 좁은 분포권을 이루고 있다. 이것의 계통에 대해서는 평양 남경유적의 미송리형 토기에 주목하기도 하였지만, 파수와 횡집선문의 부재는 물론 금강유역에 대동강유역 무문토기의 영향이 거의 보이지 않는 점을 지적할 수 있다. 그 대안으로 전기 후반의 보령 주교리 18호 출토 적색마연호에서 관창리 801호 출토 적색마연호를 거쳐 송국리 플라스크형적색마연호의 등장으로 보는 것이 형식적인 연결로서는 가장 무난하다. 금강유역의 유적에서는 주거지 외에도 저장수혈에서 플라스크형적색마연호가 출토되는 사례가 적지 않 다. 주거지의 경우에도 벽면에 접하여 설치된 저장수혈에서 출토되기도 하는 등 저장과 관련된 출토 정황 이 다수 확인된다. 또 금강중하류역을 벗어난 지역에서는 진안 농산유적에서만 전형에 가까운 플라스크형 적색마연호가 출토되었는데, 해당 유구는 수혈이었다. 적색마연호 자체가 의례와의 관련성이 강한 점을 고려할 때, 아직 확실한 근거는 부족하지만 이러한 수혈에서 출토되는 플라스크형적색마연호는 저장과 관련된 의례에 사용된 특수 용기일 가능성도 없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플라스크형적색마연호의 분포권은 특정 기물을 공통으로 하는 의례의 권역이면서, 어느 정도 규격화된 의례 용기의 사용이라는 공통의 규제가 작동하고 있었던 집단의 범위를 보여주는 것은 아닐까.
5,500원
2.
2016.04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송국리문화의 소멸은 여타의 남한지역 고고학적 문화교체와는 그 양상이 다르다. 후속하는 시기인 점토대 토기문화에서 주 생업체계로서 농경의 침체기, 인구감소 및 일시적인 사회복합도의 저하가 나타나는데 이는 농경이 시작된 이래 문화의 교체와 함께 급격한 주 생업방식의 변화(농경활동의 심각한 쇠퇴)가 나타난 거의 유일한 사례이다. 소멸의 주 원인으로 농경의 쇠퇴와 연관하여 환경변화를 주목하지만 대리자료 에서는 직접적인 인과관계를 설정할 만한 기후의 변화상을 찾기 어렵다. 따라서 이를 복합적인 인간과 환경의 상호관계의 측면에서 이해해 보고자 환위계적 적응순환 이론의 개념과 순환구조를 도식적으로 나타낸 모델을 시범적으로 적용하였다. 미시적 순환으로는 취락의 생성과 성장 그리고 해체과정을 살펴보았고 거시적으로 송국리문화의 전개와 성쇠를 하나의 순환과정으로 놓고 보았다. 그리고 이러한 구조 내에서 주기적 기후진동이 미시적 순환을 단절시켜 거시적 순환의 흐름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에 대하여 검토하였다. 이 같은 작업을 통해서 기후변수가 송국리문화의 쇠퇴에 영향을 주었을 가능성에 대하여 보다 구체적인 가설을 제시하고자 하였다. 물론 이는 연역적 가설에 불과하므로 향후 이를 입증하기 위한 보다 구체적인 시도가 필요할 것이며 앞으로의 과제로 삼도록 하겠다.
7,000원
3.
2016.04 구독 인증기관·개인회원 무료
한반도의 점토대토기문화가 遼寧地域의 주민 이주로 형성된 문화라는 점에 대해서는 대부분의 연구자 들이 동의하고 있다. 그러나 이 문화 형성기의 개시연대에 대한 연구자들의 견해는 일치되지 않고 있 다. 본고에서는 이러한 문제가 현재의 편년안에서 기인한다고 보고 편년과 개시연대에 대한 전반적인 검토를 시도하였는데, 그 결과 학계에서 주류라고 판단되는 점토대토기문화 개시연대인 기원전 6세기 ~ 5세기설에는 여러모로 재고의 여지가 있다고 판단하였다. 이 시기 遼東地域에서는 雙耳 점토대토기 형식이 유행하였으며, 이 점토대토기는 한반도에서는 출토되지 않는다는 점을 주목하였다. 반면에 한 반도에서는 성립기부터 鈕耳 점토대토기가 출토되고 있으며, 이 형식의 토기는 요동지역에서 기원전 4세기 이후에 등장하는 것으로 확인된다. 따라서 주민 이주를 전제로 하는 입장이라면 개시연대가 기 원전 4세기 이전으로 상향될 가능성이 희박하다고 보았다. 그리고 요동지역에서는 지역 구분에 따라 시간성과 관계없이 점토대토기의 형식과 공반 유물에서 차이가 관찰된다. 반면 한반도 남한지역 성립 기의 유물 조합상은 전 지역에서 거의 동일하게 출토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이러한 분포는 이주 집단의 원거주지가 요동지역에서도 한정된 지역이었음을 시사하는 근거라고 판단하고, 太子河 유역의 本溪縣 일대가 이주민 집단의 기원지였을 것으로 추정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