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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國靑銅器學報 KCI 등재 한국청동기학보 Journal of Society for Korean Bronze Cult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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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호

제29권 (2021년 10월) 7

1.
2021.10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본고에서는 미사리유형의 대표적 유물인 돌대문토기의 변화과정을 살펴보았다. 이를 통해 미사리 유형의 물질문화에 당시 사회의 변화가 반영되어 있는지, 시대적 획기로 구분될만한 시점이 있는지 판단하는데 도움이 되고자 한다. 돌대문토기의 속성 분석에서는 저부와 관련된 기형변화가 추정되었다. 저경과 구경의 비율을 측정한 저경비 0.38을 기준으로 구경 대비 저부가 좁은 기형(A)과 구경 대비 저부가 넓은 기형(B)으로 나뉘었다. 이를 지역에 따라 순서배열한 결과, A에서 B의 변화 방향이 나타났다. 특히 북한강, 남한강, 금강, 낙동강 유역에서는 A와 B의 기형이 공반되는 모습을 보였다. 따라서 돌대문토기는 저부가 좁은 기형이 만들어진 이후 저부가 넓은 기형과 공존하다가 점차 저부가 넓은 기형이 주를 이루는 것으로 생각된다. 또한 돌대문토기는 전개 지역 중 북한강, 한강 본류 유역에서 신석기시대적 요소를 지닌 환저토기와 공반되며 이른 시기에 등장하는 모습을 보인다. 이에 더하여 저부가 좁은 기형의 돌대문토기가 이른 시간성을 지니는 점은 돌대문토기의 기형이 신석기시대 토기의 기형에서 영향받았을 가능성을 시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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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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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형토기(角形土器)는 동체가 팽만하고 좁은 저부를 가진 기형을 중심으로 팽이와 흡사한 형태적 특징을 보인다.‘각형(角形)’이란 토기 명칭은 기형적 특징을 반영한 것으로 남한 내 무문토기의 명칭이 대표 출토지를 중심으로 부여된 점과 차이를 보인다. 이러한 명칭 차이는 남한 내 주요 토기가 아니란 인식에 따라 통일된 명칭을 부여할 필요성을 인지하지 못했기 때문으로 본다. 본고는 최근 경기 서북부지역에서 각형토기의 출토에 주목하면서 이 지역의 무문토기 출토양상을 검토하고자 한다. 이러한 목적 하에 기존 각형토기를 남한의 토기문화유형과 같이 대표적 출토지를 바탕으로‘신흥동식 토기’라 명명한다. 지역 내 전반적인 문화유형 양상을 규명하고자 경기 서북부지역 중 강화, 김포, 검단의 무문토기시 대 취락 현황을 검토하였다. 그 결과 김포와 검단은 역삼동문화유형권이며, 김포에서 흔암리식토기의 출토는 부재(不在)에 가까운 점을 확인하였다. 나아가 지역 내 각 토기의 출토 현황, 각 형식별 토기가 단독으로 출토된 주거지 사례 등을 살펴본 결과 지역마다 출토양상에 차이가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이러한 문화유형을 기반으로 이 지역에서 출토된 이중구연토기의 계통성을 확인하고자 토기의 명목형·연속형 속성을 구분하여 검토하였다. 명목형 속성은 토기 구연부 문양을 중심으로 Ⅰ식 토기문 양(이중구연+사선 조합)과 Ⅱ식 토기문양(흔암리식토기)으로 구분된다. Ⅰ식 토기문양은 대동강유역 에서 출토된 신흥동식 토기문양과의 관련성을 중심으로 세분하고, Ⅱ식 토기문양은 이 지역에서 주로 출토된 문양을 중심으로 세분하였다. 연속형 속성은 이중구연의 길이, 이중구연 두께, 사선길이, 이중 구연 접합부 두께를 중심으로 계측이 가능한 토기 71점을 검토하였다. 경기 서북부지역은 남한 내 북쪽에 위치하며 서해안을 따라 다양한 유입 경로를 갖기에 북한과의 관계성을 간과할 수 없을 것이다. 궁극적으로 당시 무문토기문화가 단순하지 않으며 다양한 경로의 이주 및 유입으로 인한 혼재된 문화양상을 지녔을 것으로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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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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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묘광 및 구획석 바깥에 적색마연호 한 점을 공헌하는 특이한 습속을 다룬 것으로, 진주 평거동 3-1지구의 묘역지석묘 및 이와 유사한 양상이 보이는 일본열도 북부구주의 사례에 대한 검토이다. 평거동 32~34호 묘역지석묘에는 묘광 및 구획석 바깥에 제단 기능의 수혈과 함께 적색마연호 완형품이 확인되어 여타 유적에서는 보기 드문 독특한 장송의례의 습속이 있었음을 짐작케 한다. 이는 분묘 축조 및 매장 당시의 장송의례에 따른 것으로, 묘광 및 구획석 바깥에 설치한 제단과 적색마연호를 통해 피장자의 영혼을 저세상으로 보내는 의식을 행하던 습속이 있었던 것으로 볼 수 있다. 평거동 유적 내 다른 조사구역의 묘역지석묘에는 이러한 습속이 보이지 않고, 유독 3-1지구에만 있어 이 유적은 장송의례의 전통이나 방식을 달리하는 복수의 집단으로 이루어졌을 가능성도 고려된다. 적색마 연호의 형식에서도 평거동은 남강댐 수몰지구 및 그 동쪽의 여러 유적과도 구분되는 측면이 엿보인다. 현재로서 묘광 및 구획석 바깥에 적색마연호를 공헌하는 독특한 습속의 출현이나 성격에 대해 구체적인 결론을 내리기는 시기상조이지만, 우선은 평거동유적 특히 3-1지구의 묘역지석묘를 축조한 집단은 남강유역권의 여타 유적들과 차이가 있는 동시에, 해당 유적 내에서도 장송의례 및 적색마연 호에서 특이성을 보이는 사례로 판단해두고자 한다. 그리고 북부구주 내에서도 한반도 남부와 지리적 으로 가까운 곳의 야요이 조기~전기 지석묘에도 묘광 외 공헌이 일부 확인되었다. 이러한 습속이 죠몬문화의 전통이 아니라면 新町遺蹟 등은 한반도 남부지역, 그 중에서도 진주 평거동 3-1지구의 집단과 밀접한 관련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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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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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휴암리 유형의 주 분포권인 호서지역과 호남지역의 청동기시대 중기 휴암리 유형의 양상을 살펴보고, 이를 통해 두 지역 간 휴암리 유형의 전개 과정과 성격을 파악하는 것이 목적이다. 청동기시대 중기 휴암리 유형의 양상을 파악하기 위해 호서·호남지역 취락 유적의 주거지 자료를 통해 취락유형을 설정하고, 지역권을 구분하여 현황과 분포양상을 검토하였다. 호서지역의 휴암리 유형은 전기 문화에서 점진적 변화과정이 인정되지만, 호남지역의 휴암리 유형은 외부로부터 유입된 것이며 그 주체는 호서지역의 휴암리 집단으로 추정하였다. 이에 휴암리식 주거지와 송국리식 주거지의 절대연대, 취락 내 주거지 배치 양상, 출토유물 분석을 통해 휴암리 유형의 시간성과 송국리 문화와의 관계를 검토하여 휴암리 유형의 전개 양상을 확인하였다. 검토 결과 호남지역은 1차로 유입된 휴암리 집단이 2차로 유입된 송국리 집단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조성되고 있었으며 특히, 남해안 일대를 적극적으로 점유했던 것으로 판단하였다. 호서지역의 휴암리 유형은 송국리 문화로 전환되어 시기차를 보이는 반면, 호남지역은 호서지역과는 달리 집단차를 반영하는 것으로 파악하였고 이를 통해 호서·호남지역 휴암리 유형의 다양한 전개 양상을 확인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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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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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산강유역 청동기시대 분묘는 지석묘로 대표되는데 이에 대한 연구는 활발히 진행되었으나 그 외 청동기시대 분묘에 대한 연구는 전무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는 지상에 노출되어 육안으로 확인 가능한 지석묘의 표지적 특성에 따른 것으로 다른 형태의 분묘는 지하에 위치하여 발굴조사를 통해서만 확인 가능하기 때문에 인지도의 차이가 발생한다. 영산강유역 지석묘는 전기부터 축조되며, 주로 석곽형 구조를 보이지만 최근 석관묘와 유사한 석관형 구조가 많이 확인되고 있어 주목된다. 영산강유역에서 지석묘 하부구조로 석관형 구조가 축조되기 시작한 것은 송국리문화가 유입되는 시기와 맞물린다. 영산강유역은 청동기시대 전기부터 여러 지역으로부터 다양한 문화가 유입되는데 중기에는 금강ㆍ 만경강유역의 송국리문화가 호남 전역으로 확산되면서 영산강유역도 송국리문화의 중심분포권에 포함된다. 분묘 또한 송국리형묘제인 석관묘, 석개토광묘, 옹관묘가 축조되기 시작하지만 지석묘에 비해 활발하게 축조되지는 않는다. 따라서 영산강유역 청동기시대 중기의 문화상은 주거지는 송국리문화, 분묘는 지석묘문화를 특징으로 한다. 지석묘의 경우 상징성이 강한 上石은 큰 변화없이 유지되면서 하부구조는 송국리문화의 영향으로 石棺이 적극적으로 채용되기 시작한다. 영산강유역은 지석묘라는 전통 묘제를 기반으로 상당한 결속력을 가졌던 것으로 볼 수 있으며 강한 유대감을 바탕으로 영산강유역 지석묘사회라는 독자적 문화권을 형성하게 된다. 이러한 전통은 점토대토기문화가 유입된 이후까지도 한동안 지속되는데 이후 철기문화가 유입되면서 전통적 지석묘사회는 쇠퇴하고 옹관묘라는 새로운 매장관습을 받아 들여 영산강유역만의 독특한 옹관고분사회로 발전하는 배경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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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에서는 지석묘 축조라는 매장 의례를 공유하며 사회를 구성하고 있었던 보성강·탐진강 유역 사람들의 행위와 상호작용에 초점을 맞추어 사회 변동의 역동성을 살펴보았다. 보성강·탐진강 유역의 지석묘 문화는 형식과 출토유물을 통해 볼 때 공시적·통시적으로 동질성을 지니며 전개되었던 것으로 파악된다. 두 유역의 지석묘 축조 공동체는 수세기 동안 공존하며 문화 를 형성하였던 주체였으며, 동일한 사회 변화 과정을 거쳤던 집단이었다. 하지만 미시적 차원에서는 각기 다른 양상으로 변화하였을 것으로 보이는데, 이는 지석묘 군집 유형을 통해 설명할 수 있다. 지석묘군은 배치와 구성을 기준으로, 열상과 비열상의 군집에 위석식지석묘들이 축조된 Ⅰ유형과 열상의 군집, 위석식지석묘만으로 구성된 Ⅱ유형, 비열상 군집과 위석식지석묘들이 군집을 이루는 Ⅲ유형으로 분류할 수 있다. Ⅰ유형은 열상의 지석묘 배치로 대변되는 전통적 사회 질서의 전환을 통해 새로운 정치 권력의 등장을 차별화하는 한편, 매장 의례 공간을 지속적으로 점유함으로써 공동체의 통합을 시도하였던 사회 구조의 재편 과정으로 해석된다. Ⅱ유형과 Ⅲ유형에 나타난 공간 구조는 전통과 질서를 유지하려는 유력 개인 또는 공동체의 의지와 기념물 축조를 통해 공동체성을 강화하려는 전략이 반영된 결과로 보인다. 이처럼 지석묘 축조 공간은 전통적 사회 구조와 조화를 유지하는 한편, 주도권을 전환하거나 정체성을 새롭게 하려는 사회적 행위가 투영된 장소로 볼 수 있다. 즉, 지석묘군은 사회 구조/행위 간의 변증법적 관계가 상호 순환되는 장소로서의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 한편, Ⅰ유형에서 보이는 사회 변화의 역동성은 자원 확보와 정보 접근에 유리한 공간적 우위가 작 용한 결과로 보인다. 국지적 차원의 가시권과 네트워크 분석 결과, Ⅰ유형은 주변 공동체와의 상호작 용이 유리한 지점에 위치하고 근접중심성도 높았다. 뿐만 아니라, 지역적 차원에서 네트워크 조직을 통제하고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공간적 지위를 차지하고 있었다. Ⅰ유형 지석묘 축조집단은 이러한 공간적 우위를 배경으로 외래품의 입수와 정보 접근에 권한을 행사하며 사회 변화를 주도하는 주체로서 역할을 담당하고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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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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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토대토기는 호서지방에서는 원형, 만경강유역에서는 원형과 삼각형, 영산강유역에서는 삼각형점 토대토기가 중심을 이루면서 북에서 남으로의 변화상이 비교적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다. 따라서 그동안 원형점토대토기문화는 호서지방이 중심을 이루고, 이후 점차 호남지역에 유입된 것으로 보았으나 만경강유역과 서해안 일대에서도 이른 시기의 원형점토대토기 유적이 증가하고 있으며, 호남지역 유적을 통해 원형점토대토기의 유입과 발전, 삼각형점토대토기의 출현부터 소멸에 이르는 모든 과정을 살펴볼 수 있게 되었다. 호남지역 점토대토기문화는 청동기시대 후기에서 초기철기시대를 거쳐 기원 후 1세기경까지 이어지며, 만경강유역이 상대적으로 빠르고, 이후 영산강유역, 동부섬진강유역권으로 확대되는 양상을 보인다. 이와 함께 송국리문화의 소멸도 만경강유역에서 먼저 나타나며, 영산강유역이나 동부지역에서는 상대적으로 늦게까지 확인되고 있다. 호남지역 점토대토기문화의 전개양상은 크게 4기로 구분된다. 원형점토대토기 단계의 주거지는 전주 대정Ⅳ유적의 말각장방형계(Ⅰ기), 삼각형 점토대토기 단계의 주거지는 전주 중동유적의 방형주거지가 있으며(Ⅲ기), 이를 제외하면 원형의 송국리형주거지에서 타원형수혈이나 내주공이 사라지면서 말각방형으로 바뀌고, 말각방형에서 점차 방형으로의 변화양상을 보인다. 동부섬진강유역은 송국리형주거지에서 타원형으로 바뀌는 지역적인 특징이 나타난다. 노지는 전주 대정Ⅳ유적에서 1~2기의 장축노가 조영되지만 이는 전기 청동기시대 주거지의 전통으로 이해되며, 삼각형점토대토기 소멸기인 Ⅳ기부터 조성되기 시작한다. 분묘는 Ⅰ기에는 송국리식 무덤인 석관묘와 석개토광묘·토광묘에 점토대토기나 검파형동기·경형동기 등의 청동 유물이 부장되며, Ⅱ기에 본격적으로 적석목관묘와 토광목관묘가 조성되면서 세형동검·정문경 등의 풍부한 청동유물이 부장된다. Ⅲ기는 삼각형점토대토기와 철기로 대표되는데, 토광목관묘가 주묘제로 조영되고 청동유물의 부장이 감소하며 위세품이 철기로 대체된다. 또한 대외교류가 활발하게 이루어진 시기이며, 전반적인 사회변화가 크게 이루어지는데, 이는 준왕의 남래와 그로 인한 마한사회의 변화와 연관된 것으로 해석된다. 이후 Ⅳ기는 삼각형점토대토기의 소멸기로 무덤군은 조성되지만 다른 지역과 달리 수장급의 무덤이 뚜렷하지 않으며, 이러한 양상은 기원후 2세기까지 이어진다. 최근 꾸준히 1~2세기 자료도 증가하고 있지만, 기원후 대규모 유적의 부재는 제철유적과 연관된 중심세력의 이동으로 추정해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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