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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國靑銅器學報 KCI 등재 한국청동기학보 Journal of Society for Korean Bronze Cult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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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호

제32권 (2023년 4월) 4

1.
2023.04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본 연구에서는 방사성탄소연대와 부트스트랩 리샘플링을 활용하여 북한강 유역 청동기 시대의 취 락 규모 및 분포의 변화, 그리고 인구 재조직의 가능성을 살펴보았다. 그 결과 3200-2800bp에는 취 락들이 산발적으로 분포해 있다가 2800-2600bp 시기에는 특정 취락들의 규모가 커짐과 동시에 일 부 중소형 취락들의 규모가 감소하는 현상을 파악하였다. 2600-2400bp 시기에는 춘천 중도 유적이 다른 유적의 규모를 압도하는 현상이 관찰된다. 이처럼 소수의 취락들이 거대해짐에 따라 중소형의 취락들의 규모가 축소되거나 소멸하는 현상은 북한강 유역의 대형 취락들의 존재가 단순히 자연적인 인구 증가의 결과물이 아니라 당시 지역 범위 내에서 오랜 시간 누적된 인구의 이합집산의 결과물이 라는 점을 방증한다. 그중에서도 춘천 중도 유적은 2600bp이후 북한강 유역에서 가장 거대한 인구 집결지로서 기능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이에 춘천 중도 유적의 공간 점유 양상뿐만 아니라, 유구 및 유물 역시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변화했을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분석을 시행하였다. 각 구역별 점유 기간을 살펴본 결과 취락 규모의 변화와 인구 유입에 조응하여 공간적인 점유 양상이 달라지는 것을 확인하였다. 춘천 중도 유적의 경우 인구 규모가 증가함에 따라 주거 구역의 밀집도가 높아지는 한 편, 새로운 중심지가 형성되면서 취락이 공간적으로 팽창한 것으로 추정된다. 다만 유물상에서 가구 간 분화가 선명하게 확인되지 않은 점을 고려하면 그간 전제해 온 청동기 시대 사회복합화 양상에 대한 재고가 필요한 것으로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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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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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강 유역에 위치한 진주 대평리, 평거동, 초장동 등 대규모 유적의 분묘 경관을 통해 취락 안팎의 구조와 상호작용에 대해 살펴보았다. 먼저 분묘의 가시 경관과 취락 영역 간의 관계를 추론하였다. 이 는 분묘에서 바라본 시각적 체험 경관은 사회구성원들이 일상에서 인식하고 있었던 영역이며, 취락의 정치적·경제적·이념적 영역과 직접 관련이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하였다. 가시권분석 결과, 대규모 취락의 가시권은 대체로 반경 5km에 해당하며, 서로 가시권을 공유하지 않는 배타적 경관을 이루고 있었다. 이를 통해 국지적 단위공동체는 각기 독립적인 영역을 유지하며 상호작용하는 등질적인 구조 를 형성하고 있었다고 생각된다. 취락 내부의 경관은 분묘군을 중심으로 차별적이고 역동적인 양상을 보이고 있었다. 이는 분묘의 군집 유형을 통해 살펴볼 수 있다. Ⅰ유형은 대형 묘역지석묘 주변에 분묘군이 조영된 것으로, 선대 권력을 상징하는 지석묘 주변에 분묘를 환상이나 열상으로 배치하여 전통적 사회 질서를 유지하고자 하였던 경관 조성 전략이 작용한 결과로 이해된다. 특히 이 분묘군은 취락 안팎에서 상시 체험 가능한 현저한 곳에 축조되어 있어 구성원들의 시선과 움직임을 통제할 수 있는 지배적 경관을 구성하고 있 었다. Ⅱ-1유형은 생활 공간에 분묘를 열상으로 배치하여 이를 매개로 공동체성을 강화하려는 의도 가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Ⅱ-2유형은 농경지 경계면에 분묘를 축조하여 마을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 하는 수단으로 활용되었다. Ⅲ유형은 분묘들의 장축이 상호 교차하는 군집으로, 무덤의 공간 순서 변 경을 통해 사회 질서의 변화를 추구하였던 행위자의 표현으로 보인다. 이와 같은 군집 유형은 모든 대규모 취락에서 일률적으로 확인되지 않았다. 취락 내부의 공간적 맥 락을 통해 볼 때, 분묘는 단순히 매장시설이 아니라, 유력자들이 권력 관계를 합리화하거나 재조정하 고 구조화하는 사회적 행위 공간이었다. 이러한 공간 조성은 각 취락의 물리적 환경과 구성원들의 경 관 해석에 영향을 받았으며, 분묘 축조를 주도하였던 주체들의 공간 구현 전략에 따라 각기 다른 형태 로 나타났다. 남강 유역 대규모 취락의 분묘는 각 사회-공간의 상호작용에 의해 형성된 차별적 경관 을 구성하고 있었으며, 권력과 공동체성을 대표하는 의미화된 장소로서 역할을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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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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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전남지역에서 발굴조사 된 상징 지석묘에 대해 상석의 특징, 입지, 성격 등에 대해 검토한 것이다. 상징 지석묘는 지연집단이나 혈연집단들이 그들의 상징적인 기념물로 축조된 지석묘로 제단 또는 묘표석이라 부르던 것을 포함하는 지석묘의 총칭이다. 외형상 웅장하고 주위 지석묘와는 뚜렷이 차별화된 상석을 가지고 있으면서 석실이 발견되지 않는 지석묘로 보았다. 이러한 지석묘는 기반식 지석묘와 함께 탁자식 지석묘가 있다. 전남지역에서 발굴조사 된 탁자식 지석묘는 상석이 100cm 이하로 얇은 편으로 단독입지보다는 군 집에 포함되어 존재한다. 이러한 탁자식 지석묘는 본래의 기능을 상실한 채 무덤 기능을 하였음을 하 부구조 존재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주형지석을 포함한 기반식 지석묘로 제작된 상징 지석묘는 수십 톤에 이르는 거대한 상석이 있는 것이 특징이다. 이러한 상징 지석묘의 상석은 단면형태로 볼 때 방형 또는 타원형에 가까운 것으로 구분된다. 또한, 외형상 두께가 강조된 것, 너비를 강조한 형태, 길이· 너비·두께 모든 요소를 강조한 형태로 분류할 수 있다. 상징 지석묘는 단독으로 있는 것도 있지만 군집 묘역 어느 한쪽에 거리를 두고 떨어져 있거나 묘역 중앙에 위치한다. 지형적으로는 다른 군집보다 상대적으로 위쪽 또는 아래쪽에 위치한다. 군집보다 위쪽에 있을 경우는 상징적 의미, 군집보다 아래쪽에 있을 경우는 묘표석 의미가 좀 더 강하게 부여된 된 것으로 보았다. 단독입지는 구릉 또는 평지에서 주변을 관망하기 좋은 곳에 위치한다. 묘표석 또는 제단적 성격이 강하며, 일부 매장주체부가 확인되는 경우는 가매장 시설일 여지가 있다. 군집 중앙은 지석묘 군집배치가 열상일 때 많이 확인된다. 군집 중앙에는 유력자 또는 상징적 인물을 두고, 이를 중심으로 묘역이 조성되었을 때 가능성을 언급하였다. 독립입지는 열상배치와 군집화된 지석묘에서 볼 수 있다. 다른 지석묘군과 일정 거리를 두고 떨어져 위치하는 특징이 있다. 이러한 지석묘는 묘역 을 상징하며, 의례적 성격이 짙다. 지석묘 군집에서 가장 먼저 축조되며, 혈연집단과 더불어 다른 집 단이 공동으로 묘역을 조성하였을 것으로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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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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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동기시대 의례 연구는 오랜 역사성을 가지고 있다. 많은 연구자들이 심도 있는 연구를 해왔고, 학문적 패러다임의 대전환을 맞기도 하였다. 신과 같은 절대적 존재나 종교적ㆍ신앙적 관점에 기반했 던 의례로부터 고고학적 자료를 바탕으로 절차적ㆍ의식적 관점을 중시하는 의례로 그 비중이 바뀌어 가는 것도 맥을 같이하는 것이다. 고고학에서 의례로 분류된 사례들은 도처에 존재한다. 그러나 의례가 갖는 무형적 특징과 유형적 한계 때문에 명제화와 유형화 작업은 수월하지 않다. 그래서 의례 연구에서 유형화는 더욱 중요한 것 이다. 이를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구성요소의 파악과 객관화가 필요하다. 의례 연구의 방법론으로서 무형과 유형으로 대별하고, 장소·설비와 기물·절차적 콘텐츠·구성 원·신념(神, 상징 등)으로 구분하는 시도는 새로운 방향성을 제시해 줄 것으로 기대한다. 앞으로 의 례 연구가 당시 사회현상들과 결부되어 취락사회나 복합사회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축으로 발전해 가 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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