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고는 俛宇 郭鍾錫의 漢詩에 부조된 지리산의 형상을 조명한 것이다. 논의는 곽종석이 경상우도의 지역적 기반을 가진 지식인으로서 지리산과 南冥 曺植을 어떻게 인식하였는가에 초점을 맞추었다. 곽종석은 학통으로는 퇴계학파에 속하는 일원이었으나 19-20세기 경상우도 의 학풍에 대응하여 남명 조식과 퇴계 이황을 함께 존숭하는 태도를 취했다. 다 만 본고에서 곽종석의 시문 중 지리산 한시로 대상을 제한한 까닭은 ‘남명학파 의 계승과 발전’이라는 기획주제에 부응하기 위함이었다. 남명 조식의 만년 강 학처였던 지리산 덕천 일대를 방문하고 쓴 곽종석의 기행시는 다분히 남명학과 의 연장선상에서 진단해야 진가가 드러날 수 있는 자료라고 판단했다. 실제로 29부터 33세 상간에 지리산을 방문하고 남긴 곽종석의 한시는 남명 조식과의 정신적 교감이 정서적인 축으로 작용하고 있었다. 그는 29세부터 33 세까지 수차례 지리산을 방문하면서 「入德門賦」를 비롯하여 「頭流記行二十五 篇」, 「後頭流記行三十篇」이라는 연작을 남겼거니와, 이 일련의 작품 속에는 남 명 조식을 추념하고, 도학의 맥락을 구성하려는 정신적 경향이 농후하였다. 이 에 본고는 「入德門賦」를 통하여 곽종석의 지리산 기행이 지닌 의미를 탐색하였 으며, 2차에 걸친 頭流記行 연작을 통해 그의 한시에 투영된 巡禮山水志로서의 성격, 看山看水 看人看世의 雙觀的 경향, 朱子에서 南冥으로 이어지는 道學區 구축의 성향을 조명할 수 있었다. 본고에서 간추린 이러한 성격들은 남명 조식에 대한 19-20세기 경상우도 지 식인의 지적 풍토를 전형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으며, 덕천 일대의 지리산이 어떤 상징적 의미를 축적하게 되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라고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