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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5.06 KCI 등재 서비스 종료(열람 제한)
        이 글은 조선왕조를 개창한 태조 이성계가 왕위에 오르기 전 기도했던 곳으로 전해져 오는 남해 금산의 ‘이태조기단’에 관해 언급된 여러 기록을 고찰한 글이다. 남해 금산이 이성계 전설과 관련이 있다는 언급을 한 최초의 관찬 기록물은 광 무 7년(1903)에 당시 의정부 찬정 尹定求가 지은 ‘南海錦山靈應紀績碑’와 ‘大韓 中興頌德祝聖碑’이다. 전자는 남해 지역에서 이태조 전설과 관련된 기념물이 조 선조 말엽에 조성되었다는 사실과 함께 이를 정부 차원에서 공인하게 되어 기념비 등이 만들어지게 된 사실을 알려주는 기록으로 주목된다. 후자는 고종 황제의 공 적을 조선 태조의 공적에 비겨 칭송하여 성군이 되기를 축원하는 내용을 담은 비 로서, 이를 대한제국 시기에 남해 금산에 세우게 되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이들 두 비문을 제외하면 남해 금산을 이태조 전설과 관련해서 언급한 관찬 기 록물은 찾아지지 않는다. 이성계 전설에 대한 기록은 여러 개인 문집에 수록된 금 산 기행록을 통해서 살필 수 있을 뿐이다. 이들의 기행록에는 이성계가 기도하던 곳이 시기에 따라 여러 곳으로 나타나고, 이를 ‘王拜石’․‘聖臺處’․‘山祭壇’ 등 으로 지칭하였던 것으로 나타난다. 개인 문집을 통해 살필 때, 남해 금산을 이성계 전설과 관련해서 언급한 가장 오래된 기록은 지금으로부터 400여년 전에 이 곳을 등산한 조겸의 기행록인 것으 로 나타나고, 이 밖의 여러 기행록 가운데 오늘날 이태조기단으로 알려져 있는 곳 이 처음으로 분명히 언급되기는 1865년에 금산을 기행한 이우선의 錦山記에서 이다. 여기에 비로소 현재 이태조기단이 위치한 ‘보리암 동쪽’에 이성계가 ‘산제를 지내던 제단[山祭壇]’이 있었다는 사실이 처음으로 언급되고 있다. 이 곳은 그 보 다 앞서 금산을 기행한 이들의 기행록에 언급된 ‘王拜石’․‘聖臺處’가 있던 곳과 는 다른 곳임이 주목된다. 이우선의 금산기 에서 언급된 보리암 동쪽의 이성계가 산제를 지낸 제단은 이 후 남해 금산을 유람한 여러 인사들의 기행록에서 이성계 전설을 언급하는 경우 대체로 같은 지점을 가리키고 있는 것으로 나타난다. 이로서 보아 오늘날 이태조 기단으로 전해지는 곳은 이우선이 금산을 유람하던 1860년대를 전후한 무렵에 이 성계 기도처로 알려져 이후 오늘날까지 전해 내려오게 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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