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더니즘은 거대한 끈적거리는 생물체와 같거나, 아니면 생태계의 하나의 움직임 같아서, 혹은 생존을 위해 투쟁하는 다양한 주의들 속의 변덕스러운 피막 같아서, 각 이즘은 과거의 이즘(피터 비어랙의 우스운 조어인데)이 되는 것을 피하려고 한다. 미래파, 입체파, 추상, 신조형주의, 모두 허둥대면 서로를 잡아먹으려고 하는데, 이들 중 하나는 서로 경합하는 이즘의 한 부분이나 일부를 삼키는데 성공하여 소화시켜 자신의 몸의 일부를 형성한다. 내 생각에는 예이츠의 『환상록』(본인은 의도하지 않았지만) 조직적인 약도 혹은 전체도가 되어서, 모더니즘의 여러 요소들을 통합아여 하나의 디자인을 만든다.
벨기에 극작가 모리스 매터링크는 새로운 드라마를 창조하기 위해서 셰 익스피어와 입센을 연구하여, 가냘프고 다소 있을법하지 않은 주인공들을 괴롭히는 일 종의 좀 몰인정한 운명론과 인생의 무의미성을 결합한다. 이런 종류의 극은 예이츠, 싱, 그리고 무엇보다 새뮤엘 베켓트를 예상하게 한다. 사실, 메터링크의 미궁 같은 성 (城)의 무대장치는 많은 모더니스트 극의 이해 불가하거나 이해하기 어려운 무대장치 를 예상케 한다.
이 논문은 필자가 편집하고 해설을 한 저서 『W. B. 예이츠의 시』(런던: J. M. 덴트 & 선, 1990)(xvi-li쪽)를 『한국예이츠저널』41호(2013년 여름)에 전재한 것이다. 저자 대니엘 올브라트와 그의 출판사 오리온 출판 그룹의 전재허락에 대해 감사드린다
예이츠는 자신이 카멜레온의 길(호도스 카멜네온토스)이라 부르는 곳에 너무 깊이 방황하면 자신의 시가 파괴되지 않을까 걱정했다. 그 길에서는 상상력이 지나치게 넘쳐서 독자가 그 이미지들을 이해하지 못하게 되지 않을까 걱정했다. 그의 많은 희곡 작품에서 그는 이런 여러 이미지들을 실험한다. 그는 그가 읽은 페르시아 미술사에서 호도스 카멜레온토스와 동일한 이미지들을 발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