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래의(鳳來儀)>의 전인자(前引子)와 후인자(後引子)의 내용을 『악학궤범(樂學軌範)』을 중심 으로 이론적 토대를 마련하고 이를 실연하기 위해 당악정재 14종과 정재 무도를 통합 비교하였 을 때 다음과 같은 결론을 얻었다. 첫째, 『악학궤범』<봉래의>의 도입부에 죽간자의 무진․ 무퇴가‘족도이진좌우분립’혹은‘족도 이퇴좌우분립’으로 기록되어있어 그 내용을 살폈을 때, 이는 죽간자 2인이 나란히 서서 이동한 것이었다. 둘째, 도입부의 죽간자 무퇴 위치가‘좌우분립’으로 기록되어있어 내용을 살폈을 때 그 위치는 좌우협무의 바깥쪽이었다. 셋째, 종결부의 죽간자‘무퇴’내용을 살폈을 때 도입부와 같이 좌우분립한 것이었다. 넷째, 종결부의 죽간자 무진은 무원 남쪽에서의 무진(1)과 무원 북쪽 에서의 무진(2) 2단계로 구분하여 진행하였다. 다섯째, 4대 좌우대형에서의 무원들 이동경로를 실연관점으로 살폈을 때 전인자․ 후인자 모두 양쪽의 기녀들 사이로 무진․ 무퇴를 하였다. 이상의 내용을 토대로 『악학궤범』에 기록된 <봉래의> 전인자와 후인자의 죽간자가 실행하 면 다음과 같은 순서로 진행된다. 죽간자는 4대 좌우대형의 무원 앞[북]에 서서 전인자 음악이 연주되면 북향하여 무진하여 서서 진구호를 부른 다음 양쪽의 기녀들 사이인 좌대의 좌무[左1․ 左3]와 우대의 우무[右2․右3]사이로 물러나 무원들 남쪽에서 동서(東西) 무진하여 좌무(2)와 우무 (1) 바깥쪽에 선다. 춤이 마칠 즈음[취풍형(醉豊亨)]에 죽간자가 동서(東西) 무진하여 양쪽의 기녀 들 사이인 좌대의 좌무[左2․ 左4]와 우대의 우무[右1․ 右4]로 무진하여 무원들 앞[북]에 섰다가 후 인자 음악이 연주되면 다시 북향 무진하여 퇴구호를 부른 다음 양기사이인 좌대의 좌무[左1 ․ 左 3]와 우대의 우무[右2․ 右3]사이로 물러나 무원들 남쪽에서 동서(東西) 무진하여 좌무(2)와 우무(1) 바깥쪽에 선다.
『악학궤범(樂學軌範)』에 수록된 조선 초기 <봉래의(鳳來儀)> 정재의 취풍형무(醉豊亨舞) 이동 구조를 정재무도와 통합 비교하였을 때 다음과 같은 결론을 얻었다. 『악학궤범』에 전하는 <봉래의> 취풍형의 이동은 회무(回舞)이다. 두 대[좌대와 우대]가 서로 마주보고 도는데, 천세장(千世章)에서 부터 시작하여 오엽(五葉)에 이르면 초열[4대 좌우대형]로 선다. 취풍형의 회무는 2대 좌우대형에서 4대 좌우대형으로 변화 할 때이다.『악학궤범』에는 취풍형 회무의 도는 방법을‘상동(上同)’으로 제시하였는데 이 상동은 치화평무의 회무인 ‘좌 사인서향외회(左四人西向外回) 우사인동향내회(右四人東向內回)’를 말한다. 취풍형 회무에서 중 요한 것은 2대 좌우대형에서 초열인 4대 좌우대형으로 설 때 무원(舞員) 8인이 어떠한 과정으로 이동하여 배열하는 가인데 이 기록에서 좌무(左舞)와 우무(右舞)의 도는 방향이 동향과 서향인 것과 도는 위치가 내(內)와 외(外)인 것은 알 수 있지만 초열로 배열하는 과정은 알 수 없다. 『악학궤범』취풍형의 회무 기록을 『조선궁중무용총서7』에서는 좌무와 우무가 서로 마주보 고 돌아 무2인이 짝을 지어 남쪽에서 북쪽으로 들어와 초열로 배열하는 것으로 해석하였고, 국 립국악원에서는 천세장에 사방(四方) 대형을 만들어 우선(右旋)하다가 좌대의 청과 홍, 우대의 홍과 녹이 북대(北隊)에 섰을 때 교선(交旋)하여 동쪽과 서쪽에서 일렬로 들어와 배열하는 것으 로 해석하였다. 이를『악학궤범』과 비교하였을 때 두 대가 마주보고 돈 것과 좌대와 우대의 도 는 방향과 위치가 서로 같았지만 회무를 도는 방향과 횟수 그리고 창사와 초열인 4대 좌우대형 으로 서는 이동노선에는 차이가 있었다. 무엇보다 국립국악원에서는 좌대에 우무가 서고 우대에 좌무가 서는 등 좌대에는 좌무 4인이 배열되고 우대에는 우무 4인이 배열되어야 하는 원칙이 지켜지지 않았고 무엇보다도 『악학궤범』<봉래의> 초열인 4대 좌우대형의 무원별 배열위치가 일치하지 않았다. 『악학궤범』에 기록된 대로 취풍형의 회무를 푸는 중요한 단서는 초입배열도에 제시된 무원 별 배열번호이다. 봉래의의 초입배열도에는 좌대와 우대의 무원들 아래 번호가 제시되었다. 취 풍형의 회무를 봉래의 초입배열도에 제시된 무원별 배열번호대로 좌무는 4-3-2-1로, 우무는 4-3-2-1로 각각 차례대로 이동하면 천세장에 교선하여 오호장에 처음의 봉래의 자리로 순조롭게 배열하는 것이 가능하였다.
『악학궤범』에 수록된 <봉래의>의 ‘치화평무’는 사방대형에서 북대2인이 북향무·대무·배무를 추고 우선(右旋)하여 자리를 바꾸어서고, 매 대의 춤이 마치면 무 전체가 중행회선하여 좌우대형 으로 서는 춤이다. 창사는 모두 4장으로 구성되었고 춤의 구조도 이에 따라 일률적으로 진행한 다. 그러나 춤의 구체적인 내용을 처음의 북대2인에게만 제시하고 나머지 3대에게는 제시되지 않 았고, 무엇보다 무원의 명칭을 북대2인으로만 기록하여 ‘치화평무’를 추는 무원들의 구체적인 이 동경로를 확인하기 어려웠다. 그래서『세종실록악보』에 기록된 치화평 음악에 추어진 <봉래의>의 치화평의 내용을『악학궤범』을 중심으로 실연관점으로 분석하였을 때 다음과 같은 결론을 얻었다. 첫째,『악학궤범』의 정재무도[致和平回舞圖]에서 확인한 북대2인은 좌무1과 좌무2, 좌무3과 좌 무4, 우무4와 우무3, 우무2와 우무1로 구성된 것을 확인하였고, 북대에서의 춤은 좌무 및 우무가 각각 짝이 되어 춘 것이었다. 둘째, 4장으로 구성된 ‘치화평무’의 창사 구조에 따라 매 무원들이 ‘북향무-대무-배무-우선회 무·회무’로 추어져 창사와 춤의 구조가 같은 것을 알 수 있었다. 셋째, 북대에서 북향무를 출 때는 금척무, 우선회무 돌 때는 사수무, 우선회무하여 자리를 바 꾸어 선 다음에는 염수족도, 그리고 대무와 배무 사이에 북향하는 것은 <봉래의> ‘치화평무’를 추 는 무원 8인 전체에게 적용된 것을 알 수 있었다. 넷째, 북대2인의 무원이 구체적으로 드러남으로 해서 우선회무는 좌무1·좌무2, 좌무3·좌무4, 우무4·우무3, 우무2·우무1 순으로 차례로 이동 한 것이었고, 반면 회무는 좌무와 우무 모두 ‘1-2-3-4’순으로 구성되어 우선회무와 회무의 이동 경로가 다른 것을 알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