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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3.05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寒溪山城내 天祭壇은 城郭내에 위치한 祭祀遺蹟이었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그 이유는 다른 지역 산성 내 제사 유적을 종합적으로 검토해 본 결과 제사 유적이 위치한 곳은 산성 내부, 특히 建物址가 있는 곳과 가까우면서 내부를 잘 볼 수 있으며, 산성외부의 하천이나 주요 교통로 등을 한 눈에 내려다 볼 수 있는 곳에 위치해 있다는 점이다. 寒溪山城내 天祭壇과 가까운 곳에 대궐터라 불리우는 곳에 주거 유적이 발견되었다는 점과 그 주변에서 발견된 土器片은 山城을 유지하였던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에 祭壇으로 기능하였을 가능성을 높여준다. 그리고 한계산성 내 천제단의 명문을 보면 仙○○, 道君子, 上帝, 佛者등 仙思想과 道敎, 佛敎思想이 내재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천제단에 새겨진 명문 내 인물들이 고려시대에 활동한 인물이라면 당시 이와 같은 사상 경향을 국가나 민간 차원에서 수용하여, 祭儀를 행하였음은 醮祭나 八聖堂을 설치한 사례 등을 통해 알 수 있다. 이와 함께 한계산성을 고려시대에 주로 사용하였다는 고고학적 발굴 성과를 종합해 보면 고려시대에 한계산성 내에서 하늘에 제사지내기 위해 설치하였던 天祭壇이었을 가능성도 고려해 볼 수 있다. 또한 한계산성이 관방유적으로서의 기능을 廢한 후 祭壇또한 방치되었다가 이곳을 거점으로 仙思想과 道敎, 佛敎가 習合된 新宗敎를 만든 사람들이 이곳을 하늘에 제사지내는 제단으로 활용하였을 가능성이 높다. 왜냐하면 일반적으로 공동체를 위한 제단을 설치하는 곳이 마을이나 주변 경관을 잘 조망할 수 있는 곳에 설치된 사례가 많으며, 太白山天祭壇이나 삼척 가곡산 봉수ㆍ양야산 봉수의 民間信仰處所化사례 등을 통해 과거에 국가 제장이었거나, 관방 유적이었던 곳이 그 본래의 기능을 廢한 후 新宗敎나 民間信仰의 처소로 활용된 사례들이 많기 때문이다. 이와 함께 이전의 종교 기능을 廢하더라도 이후에 만들어지는 종교 제장은 이전에 종교 제장이었던 곳에 그들의 祭場을 설치한 사례 또한 많다. 이와 함께 한계산성 천제단이 지닌 가치는 하늘에 제사를 지낸 聖所였다는 점과 산성 유적 내에 제사를 지낸 장소의 위치적 특징이 산성 내부와 외부를 잘 조망할 수 있는 곳이면서 주변에 건물 유적이 있는 곳에 위치한다는 점을 정립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줄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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