寒溪山城内の天祭壇の形態と性格
한계산성 천제단의 형태와 성격
寒溪山城내 天祭壇은 城郭내에 위치한 祭祀遺蹟이었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그 이유는 다른 지역 산성 내 제사 유적을 종합적으로 검토해 본 결과 제사 유적이 위치한 곳은 산성 내부, 특히 建物址가 있는 곳과 가까우면서 내부를 잘 볼 수 있으며, 산성외부의 하천이나 주요 교통로 등을 한 눈에 내려다 볼 수 있는 곳에 위치해 있다는 점이다. 寒溪山城내 天祭壇과 가까운 곳에 대궐터라 불리우는 곳에 주거 유적이 발견되었다는 점과 그 주변에서 발견된 土器片은 山城을 유지하였던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에 祭壇으로 기능하였을 가능성을 높여준다. 그리고 한계산성 내 천제단의 명문을 보면 仙○○, 道君子, 上帝, 佛者등 仙思想과 道敎, 佛敎思想이 내재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천제단에 새겨진 명문 내 인물들이 고려시대에 활동한 인물이라면 당시 이와 같은 사상 경향을 국가나 민간 차원에서 수용하여, 祭儀를 행하였음은 醮祭나 八聖堂을 설치한 사례 등을 통해 알 수 있다. 이와 함께 한계산성을 고려시대에 주로 사용하였다는 고고학적 발굴 성과를 종합해 보면 고려시대에 한계산성 내에서 하늘에 제사지내기 위해 설치하였던 天祭壇이었을 가능성도 고려해 볼 수 있다. 또한 한계산성이 관방유적으로서의 기능을 廢한 후 祭壇또한 방치되었다가 이곳을 거점으로 仙思想과 道敎, 佛敎가 習合된 新宗敎를 만든 사람들이 이곳을 하늘에 제사지내는 제단으로 활용하였을 가능성이 높다. 왜냐하면 일반적으로 공동체를 위한 제단을 설치하는 곳이 마을이나 주변 경관을 잘 조망할 수 있는 곳에 설치된 사례가 많으며, 太白山天祭壇이나 삼척 가곡산 봉수ㆍ양야산 봉수의 民間信仰處所化사례 등을 통해 과거에 국가 제장이었거나, 관방 유적이었던 곳이 그 본래의 기능을 廢한 후 新宗敎나 民間信仰의 처소로 활용된 사례들이 많기 때문이다. 이와 함께 이전의 종교 기능을 廢하더라도 이후에 만들어지는 종교 제장은 이전에 종교 제장이었던 곳에 그들의 祭場을 설치한 사례 또한 많다. 이와 함께 한계산성 천제단이 지닌 가치는 하늘에 제사를 지낸 聖所였다는 점과 산성 유적 내에 제사를 지낸 장소의 위치적 특징이 산성 내부와 외부를 잘 조망할 수 있는 곳이면서 주변에 건물 유적이 있는 곳에 위치한다는 점을 정립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줄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하다.
寒溪山城の中にある天祭壇は城郭内に位置した祭祀の遺蹟であったと推定することができる。その理由として, 他の地域山城内の祭祀遺蹟を綜合的に檢討してみた結果、祭祀遺蹟が位置した所は山城の內部、特に建物址がある所と近くにありながら、內部をよく見ることができ、山城外部の河川や主要な交通路などを一目で見渡すことができる所に位置されているということである。寒溪山城内の天祭壇と近い所の大闕垈と呼ばれる所に住居遺蹟が發見された点と、その周邊で發見された土器片は山城を維持していた高麗時代と朝鮮時代に祭壇の役割として機能した可能性を高めてくれる。そして、寒溪山城が關防遺蹟としての機能を廢した後、祭壇も放置され、ここを據點に仙思想と道敎、佛敎が習合された新宗敎を作った人がここを天に祭祀を執り行う祭壇として活用した可能性が高い。なぜなら、一般的に共同體のための祭壇を設置する所が村落や周邊の景觀をよく眺望できるところに設置された事例が多いので、太白山の天祭壇や三陟にある可谷山烽燧・陽野山烽燧の民間信仰の處所化の事例などを通じて過去に國家の祭場だったり、關防の遺蹟だった所がその本來の機能を廢した後、新宗敎や民間信仰の處所として活用された事例が多く發見される。これとともに以前の宗敎機能を廢しても以後に作られる宗敎祭場は以前に宗敎祭場だったところに彼らの祭場を設置した事例が多いからであ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