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일제강점기 한국에서 孔敎運動을 주도한 眞菴 李炳憲(1870~1940) 의 유교개혁론의 배경과 성격을 검토한 것이다. 이병헌은 3·1 민족해방운동이 전개되고 있던 1919년 유교의 자발적 개혁과 변신만이 민족의 생존을 보장할 수 있다는 판단에 따라, 孔子를 敎主로 하는 유교의 종교화를 골자로 한 儒敎 復原論을 저술했다. 유교의 종교화를 통한 복원은 일차적으로 그의 학문적 토 대가 되는 寒洲學派의 心卽理說에 이론적 기반을 두고 있었다. 심즉리설은 純 善인 理의 절대적 가치를 부각하는 것을 핵심으로 하고 있으며, 그것을 적극적 으로 적용할 경우 理를 上帝의 개념과 동일시하는 경향을 보여주었다. 그것을 토대로 그는 중국에서 戊戌變法을 주도하며 공교운동을 전개하던 康有爲의 지 도를 받으며 한국에서 유교의 종교화 운동을 전개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의 공 교운동은 공자 이후 모든 학문적 경향을 부정하고 공자의 정신을 복원할 것을 주장하고 있다는 점에서, 성리학적 우주론에 입각한 수양론을 확립하고 있던 학파들의 반발로 인해 순조롭게 전개되지는 못했다. 그렇지만 그의 유교복원론 은 유교의 개혁필요성을 제기했다는 점, 그것의 생명력을 견지하는 방안으로 종교화를 모색했다는 점에서 일정한 역사적 의미를 확보하고 있었던 것으로 평 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