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field experiment was carried out to determine the effects of nitrogen (N) fertilization levels after first harvest (0, 30, 60, 90 and 120 kglha) during spring season on the gms growth, dry matter (DM) yield, nutritive value, and efficiency of DM product
본 시험은 장마후 예취시에 많은 그루터기의 고사가 일어나 초지가 황폐화하는 원인을 구명하기 위하여 장마기간에 목초의 생육에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는 요인인 그루터기내 저장탄수화물 함량의 변화- 토양중의 수분함량 및 온도 초지내의 온도, 습도 빛 광도와 같은 미기 상을 장마기간동안에 조사하였다. 조사는 1984년 6월부터 7월사이에 실시되었으며 얻어진 결과는 다음과 갇다. l 목초의 저장탄수화물 함량은 장마전 예취시 예취후 3일째에 약 2.9%로 떨어졌으
초지에 있어서 칼리(K)의 동태 및 반구동물의 마마그네슘(Mg) 출납에 관한 연구의 한 부분으로서, 목초중 칼리 및 마그네슘 함량의 수절에 따른 변화를 알아보기 위한 시험을 봄부터 가을(4월-11월)의 기간동안 방목지와 방목지내 채초이초지(이하 채초지)에서 실시했다. 년간 2회에 걸쳐 가축의 방목을 행한 방목지에서 월별로 시료를 취한 뒤 초종별로 나누지 않고서 전 직물체(목초 및 야초)의 칼리와 마그네슘함량을 조사했으며(시험 1), 채초지에서는 방목지보
This field experiment was carried out to determine the effects of nitrogen(N) application time (March 30, April 9 and April 19) and N fertilizer kind (urea and ammonium sulfate) in early spring on the grass growth, dry matter (DM) yield, crude protein (CP
This experiment was conducted to evaluate the effect of cutting frequency and nitrogen fertilization on th change of vegetation and the yield of dry matter on the different mixture combination of permanent pasture. 1. DM yield was increased as the increas
The effect of characteristic of mixture sowing combination on the development of botanical composition was conducted for 12 years on the meadow experiment. The results of this study were summarized as follows. 1. Festuca pratensis lost the expected positi
본 실험은 파종방법, 배수화도 및 여름철 예취관리가 오차드그라스 채초지의 목장건물수량, 고사물량, 초지의 잡초발생 및 피복율에 미치는 영향을 조사하기 위하여 심험설계는 주구를 조파와 산파로 하고 세구를 배수랑호구와 배수불랑구로 하였으며, 세세구는 장마전 예취구와 장마후 예취구를 두어 세세구 배치 3반후으로 하여 1983년 9월부터 1984년 10월까지 실시하였던바 얻어진 결과는 다음과 같다. 1. 초지의 목장건물수량은 1회 예취시에는 처리간에 차이가 없
국가에서는 조선초기부터 도성 내외와 연해지역에 禁山을 설정하고 禁松정책을 취했다. 한편 민간이 山林을 사적으로 점유해 이용하는 것도 허용되고 있었다. 그러나 일반 서민에게는 그 기회가 별로 없었고, 그 대상은 주로 양반층이었다. 국가의 禁山정책에도 문제가 많았다. 따라서 일반 서민들에게도 수목 채취를 어느 정도 보장하는 다른 대책이 필요했다.
이에 대한 대응책으로 숙종 21년 당시 민간에서 시행되고 있던 禁松契를 참조해 마을마다 금송계를 만들어 스스로 금송활동을 하게 하는 조치를 충청도에 시험적으로 시행해 보기도 하지만, 이후 국가에서 전국적으로 확대하여 시행하는 조치는 없었다. 다만 조정에서 여러 차례 논의가 이루어져 금송계 문제가 부각되고, 또 일부 관리들이 작성한 牧民書에 이런 방안이 소개되면서, 금송계가 전국적으로 점차 확산된 것 같다. 이런 과정을 거쳐 마을마다 금양의 경계가 지워져 마을 단위로 禁養하고 採樵하는 관행이 점차 일반화되어 간다.
이런 추세 속에서 禁養權과 그 경계를 둘러싸고 양반층과 사찰, 그리고 금양처를 새롭게 마련해 가던 마을 간에 갈등이 생기게 된다. 이런 갈등 상황에 직면하여 양반층은 마을과 연대하여 금송계를 결성·활용하는 방법을 적극 모색하였다. 이런 금송계는 사족이 주도하면서도 주민이 함께 화합하고 채초문제를 잘 해결해 가려는 것이었지만, 일부 금송계에서는 양반층의 입지가 약화되고 서민들의 입지가 강화되는 모습도 나타나고 있다. 금양경계를 둘러싼 마을 간의 다툼도 적지 않았다. 산송이 계속되면서 관에서는 애매했던 경계를 좀 더 분명히 하고 소송 당사자 간의 권리를 좀더 구체적으로 조정하고 구분하는 조치를 취하였다.
이처럼 사족, 사찰, 마을 간에 금양권과 그 경계를 둘러싸고 갈등이 생기는 것은 산림 중에 어느 곳에도 소속되지 않은 공한지가 있었다거나, 또 금양경계가 분명하게 처리되지 않은 경우도 적지 않았던 것에서도 연유한 것 같다. 또 금양처를 충분히 확보하지 못하여 생존권 차원에서 다른 마을과 채초를 둘러싸고 갈등을 벌이는 마을도 있었을 것이다. 이에 따라 금양권 확보를 위한 마을 간의 경쟁이 갈수록 치열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