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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8.12 KCI 등재 서비스 종료(열람 제한)
        文劼은 어려서부터 문명을 떨쳐 소년시인이라 일컬어질 정도로 뛰어난 시 작 품을 남겼고, 정유재란에 하수일과 의병을 일으켜 하동의 악양에서 활동함으로 써 이들 덕분에 이 지방이 온전하였다는 평과 조정의 상을 받기도 하였다. 文弘 運은 아버지를 따라 악양에 있다가 아버지가 병사함에 전란의 와중에서도 장례 를 치루고 그 이후로는 유거하며 지냈으며, 그가 남긴 「頭流八仙遊篇」은 지리 산 연구에 중요한 자료이다. 「頭流八仙遊篇」은 문홍운 자신을 비롯하여 성여신, 정대순, 강민효, 박민, 이 중훈, 성박, 성순의 여덟 사람이 성여신의 제의에 따라 두류산을 유람한 과정과 느낌을 읊은 시이다. 이 시는 지리산 유람을 노래한 여러 시편 가운데 가장 긴 것으로 240구 1,200자에 이르는 장편 5언시이다. 특기할 것은 성여신의 「방장 산선유일기」 가운데에도 보이는 것이기는 하지만, 이 시의 제목에서 볼 수 있는 바와 같이 지리산으로 유람을 떠나는 여덟 사람을 신선이라 부른 것이다. 선비들이 자신들이 유람을 가는 곳을 신선세계라 하며, 그곳을 속세와 구분하 여 마치 신선세계에 오른 듯이 그 감회를 기록한 것은 있지만, 유람 가는 자신 들을 신선이라 하였을 뿐만 아니라 각인에게 신선의 이름을 이처럼 지어붙인 경우는 거의 없다. 그만큼 이들의 신선세계에 대한 동경이 컸음을 알 수 있는데, 이들의 이러한 신선놀이는 또한 한 번의 일회적인 유희에 그치지 않고 유람하 는 동안 내내 이어졌음을 성여신과 문홍운의 글에서 볼 수 있다. 그러나 성여신이 “속에 들어가서는 눈에 띄는 사람 모두 선인이었고, 산 밖으 로 나와서는 만나는 사람 모두 범인이었다.”라고 한 바와 같이 이들의 이러한 신선놀이는 결국 유자로서 신선에 인식의 테두리를 보여주는 것이라 할 것이 다. 문홍운이 지리산에 도착하기 전까지는 신선세계에 대한 동경과 예찬이 극 에 달하였지만, 막상 그가 지리산에 당도한 뒤 특히 지리산 청학동이나 향로봉 에 올라 읊은 평범한 시구는 그러한 인식을 반영하고 있다고 할 것이다. 문홍운은 그의 시에서 청학동이나 향로봉에서 신선세계에 당도하여 신선을 보았다고 했으나, 이는 보통 사람들의 신선시에서 볼 수 있는 바와 크게 다를 바 없는 것임을 확인할 수 있다. 이는 곧 문홍운의 신선놀음도 결국은 성여신이 “그렇다면 지금 우리들의 선유는 이름은 비록 ‘仙’이나, 실제는 ‘仙’이 아닌 것 이다.”라고 한 경우와 크게 다르지 않았음을 알 수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