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Review on the Life and Literature of Mun, Hal[文劼] and his son Mun, Hongun[文弘運]
성광 문할과 매촌 문홍운의 생애와 문학
文劼은 어려서부터 문명을 떨쳐 소년시인이라 일컬어질 정도로 뛰어난 시 작 품을 남겼고, 정유재란에 하수일과 의병을 일으켜 하동의 악양에서 활동함으로 써 이들 덕분에 이 지방이 온전하였다는 평과 조정의 상을 받기도 하였다. 文弘 運은 아버지를 따라 악양에 있다가 아버지가 병사함에 전란의 와중에서도 장례 를 치루고 그 이후로는 유거하며 지냈으며, 그가 남긴 「頭流八仙遊篇」은 지리 산 연구에 중요한 자료이다. 「頭流八仙遊篇」은 문홍운 자신을 비롯하여 성여신, 정대순, 강민효, 박민, 이 중훈, 성박, 성순의 여덟 사람이 성여신의 제의에 따라 두류산을 유람한 과정과 느낌을 읊은 시이다. 이 시는 지리산 유람을 노래한 여러 시편 가운데 가장 긴 것으로 240구 1,200자에 이르는 장편 5언시이다. 특기할 것은 성여신의 「방장 산선유일기」 가운데에도 보이는 것이기는 하지만, 이 시의 제목에서 볼 수 있는 바와 같이 지리산으로 유람을 떠나는 여덟 사람을 신선이라 부른 것이다. 선비들이 자신들이 유람을 가는 곳을 신선세계라 하며, 그곳을 속세와 구분하 여 마치 신선세계에 오른 듯이 그 감회를 기록한 것은 있지만, 유람 가는 자신 들을 신선이라 하였을 뿐만 아니라 각인에게 신선의 이름을 이처럼 지어붙인 경우는 거의 없다. 그만큼 이들의 신선세계에 대한 동경이 컸음을 알 수 있는데, 이들의 이러한 신선놀이는 또한 한 번의 일회적인 유희에 그치지 않고 유람하 는 동안 내내 이어졌음을 성여신과 문홍운의 글에서 볼 수 있다. 그러나 성여신이 “속에 들어가서는 눈에 띄는 사람 모두 선인이었고, 산 밖으 로 나와서는 만나는 사람 모두 범인이었다.”라고 한 바와 같이 이들의 이러한 신선놀이는 결국 유자로서 신선에 인식의 테두리를 보여주는 것이라 할 것이 다. 문홍운이 지리산에 도착하기 전까지는 신선세계에 대한 동경과 예찬이 극 에 달하였지만, 막상 그가 지리산에 당도한 뒤 특히 지리산 청학동이나 향로봉 에 올라 읊은 평범한 시구는 그러한 인식을 반영하고 있다고 할 것이다. 문홍운은 그의 시에서 청학동이나 향로봉에서 신선세계에 당도하여 신선을 보았다고 했으나, 이는 보통 사람들의 신선시에서 볼 수 있는 바와 크게 다를 바 없는 것임을 확인할 수 있다. 이는 곧 문홍운의 신선놀음도 결국은 성여신이 “그렇다면 지금 우리들의 선유는 이름은 비록 ‘仙’이나, 실제는 ‘仙’이 아닌 것 이다.”라고 한 경우와 크게 다르지 않았음을 알 수 있는 것이다.
The materials of the father and son, Mun-Hal[文劼] and his son Mun-Hongun[文運] were contained in the Gahosego[嘉湖世稿]. There are not much of poetry and prose of them, because their life were short and plenty of their works were lost at the time of the The Restoration Of Chosun in 7years[壬辰倭亂], but we can study the life and the literature of the father and son form these meterials. Mun-Hal[文劼] was a well-known poet to the people of around him from his boy-hood. He wrote poetries at thirteen or fourteen years old, the poetry of Hangaeryong Fall[寒溪嶺瀑布] represented his works. And when he was thirty-five years old, he fought against Japanese who invaded Chosun[朝鮮] dynasty as an army in the cause of justice. His son Mun, Hongun[文弘運] fought against Japanese troops when his father raised the army. After his father was dead in the army, he returned to his hometown and lived in retirement. He wrote lot of poems with his friend at that time, especially there were much more poems that was exchanged with Seong-Yiesin[成汝信]. Among his poetries, the longest and famous poem was written in the term when he went sight-seeing the Chiri mountain[智異山] with eight peoples. The title of that poem is Duriupalsunriupyen[頭流八仙遊篇], the mean of title is eight peoples, called themselves as an un-worldly man, went sight-seeing the Chiri mountain[智異山]. The eight peoples were, contained the author of this poem, Seong-Yiesin[成汝信], Jung-Daesun[鄭大淳], Kang-Minhyo[姜敏孝], Park-Min[朴敏], Lee-Junghun[李重訓], Seong-Bark[成鑮], Seong-Sun[成錞]. The poem is organized of two hundred lines a quatrain with five syllables in each line. It is estimated as a very important work in the study of the Chiri mountain[智異山] with Bangjangsansunu diary[方丈 山仙遊日記] was written by Seong-Yiesin[成汝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