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시아는 해양과 대륙이 만나는 접점에 있으며 우리민족이 활동한 역사활동의 터는 대륙과 한반도와 주변의 해양이 유기적으로 연관성을 지닌 곳이다. 이러한 자연환경 속에서 바다와 육지가 만나는 접변지역은 다양한 기능과 역할을 담당하였다. 동해는 남해나 황해에 비하여 상대적으로 역사의 중심부에서 멀었으며 주체적인 역할을 하기에는 미흡한 측면이 있었다. 하지만 고구려에게는 일본열도 진출의 거점으로 중요한 측면이 있었으며, 신라에게는 해양진출과 고구려에 대한 공격 및 방어라는 측면에서 매우 중요했다. 신라는 소위 海陸政策을 추진하면서 동해 중부지역 및 해역의 중요성이 커졌으며, 거점도시의 육성이 불가피했다. 따라서 삼척 및 강릉지역을 중요하게 여겨 고구려를 비롯한 여러 세력들과 갈등을 벌이면서 자기 세력권하의 거점도시로 육성 하였다. 삼척지역은 본고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역사상과 경제적 측면, 신앙 기능 등은 물론이고, 항구, 방어체제, 교통망 등의 도시구조면에서도‘海港都市’의 성격과 범주에 적합했다. 신라는 국가정책과 동아시아의 질서 속에서 우산국을 복속시킬 필요성이 있었다. 그런데 신라군이 동해를 횡단하여 독립적인 해상왕국을 공격하 고, 승리를 거두려면 강력한 해양력과 뛰어난 조선술과 항해술, 그리고 훈련된 수군병력이 필요하다. 그와 함께 장기간에 걸친 전쟁준비를 추진하는 능력을 갖춘 거점의 확보가 필요하고, 또한 대군이 발진하는 장소인 軍港의 선정과 활용은 절대적이다. 본고는 삼척이 해항도시 및 군항으로서 타당성이 높은가에 대해서 다양한 입장에서 분석하였다. 그 결과 삼척은 김이사부 선단의 발진기지와 군항으로서 필요한 조건들을 갖추었으며, 동해중부지역에서는 실제 출항지일 가능성이 가장 높은 도시임을 확인하였다. 하지만 당시에 벌어진 전쟁의 중요도와 규모와 작전의 성격 등을 고려하고, 동해중부지역의 자연환경 및 정치적인 상황을 고려하면 삼척지역 만을 사용했을 가능성은 높지 않다. 오히려 삼척을 주력발진기지로 삼으면서 북쪽의 강릉지역 및 남쪽의 울진 등과 유기적인 연합체제를 갖추면서 역할분담을 했을 가능성을 고려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