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고는 명 건국 이후 산동사행로 개통을 위한 고려의 외교적 노력과 함께 정몽주 가 1386년 사행에서 남긴 시를 통해 산동 遼霫 지역의 군용과 登州와 萊州 지역의 경물을 살펴보았다. 정몽주는 요습 땅을 오가며 명나라가 전략 요충지에 설치한 衛 所와 驛站 등을 시로 기록하고, 遼河를 가득 메운 漕運船을 시에 담았고, 旅順口에서 는 군사와 군수물자를 나르는 수많은 병선을 목격하고 시로 남겼다. 발해를 건너 등 주와 래주를 경유한 정몽주는 사마천의 史記 등 역사서와 선인들의 문집에 기록된 진시황과 관련한 蓬萊閣과 之罘山, 田橫의 고사와 관련한 田橫島와 鳴呼島, 海神廟 등에 대한 시뿐만 아니라 현지 뱃사람들의 媽祖信仰을 기록했다. 본고는 산동의 경 물과 함께 요동 정벌을 위해 군용을 갖추어 가던 당시 상황을 기록하고, 전쟁으로 고통받는 백성들의 삶을 기록한 정몽주의 시가 갖는 ‘詩史’적 가치를 밝히고자 했다.
정몽주는 고려 말 기울어져가는 國運을 되살리기 위해 暗中摸索하면서 싸웠던 萬古의 忠臣이다. 그는 李成桂의 易姓革命은 목숨을 걸고 반대했지만 동아시아의 격변기에 親元排明정책을 반대했고 旭日昇天하는 기세로 떠오르는 명나라와의 親和적 外交를 통해 國運을 되살리고자 했다. 목숨을 건 千辛萬苦의 사행 길에서 그는 客苦와 鄕愁를 한시로 달랬는데 이는 정몽주의 인간적인 모습을 보여 주는 동시에 한국 使行文學의 白眉로 된다. 동아시아의 강대국 속에 끼어있는 한국(조선)의 대외정책에 있어서 名分과 實利의 모순을 균형감 있게 처리하는 것은 국가 存在와 發展을 이루는 중요한 과제로 된다. 時代와 歷史의 發展推移를 통찰하고 끝없이 苦惱하고 思考하면서 민족과 국가의 운명을 타개하기 위해 노력한 고려의 충신 정몽주, 그는 오늘을 살고 있는 한국인의 거울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