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리학의 대가 주희는 유학사상에 있어서 독보적인 존재이지만, 또한 초사학에 있어서도 그가 후대 초사학자들 특히 민지의 초사학자들에 끼친 영향은 아주 컸다. 그의《楚辭集注》는 그 이전의 訓詁와 考據를 중심으로 한 초사연구를 義理 천명 중심으로 한 연구로 완전히 바꿔놓았다고 할 수 있다. 지금의 복건성인 민지에서 주자의 영향을 받아 초사연구가 크게 일었고, 또한 그 연구 역시 주자의 義理를 천명해내는 연구방법을 대체로 그대로 따랐다. 그들은 履忠被讒된 위대한 애국시인 굴원의 憤懣과 애국심을 대한 意趣를 그대로 따랐는데, 이들 민지의 초사연구가들과 騷體 작가들은 대부분 민족적 애국기질이 강하며 또한 현실에 대한 강한 정치적 불만을 가진 사람들이었다. 초사연구나 소체 작품 창작을 통해 자신의 처지와 불우함에 대한 울분과 불만 그리고 망해가는 나라에 대한 자신들의 감정을 분출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학문 풍토는 아직도 민지학자들의 학풍 속에 그대로 남아 지금까지 전해내려 오고 있다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