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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2집 (2009년 4월) 15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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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한국 문학에서 구여성은 무식하고 관습을 좇으며 간혹 분에 넘치는 욕심을 부리지만 대체로 선량한 하층민으로 표상되었다. 현진건, 이기영, 강경애의 작품에 등장하는 대부분의 여성이 그렇거니와 이로써 이들은 '불행한 조국'을 상징하는 알기 쉬운 환유가 되었다. 그들의 고난과 희생은 수난당하는 조국의 운명과 동일하게 읽혔기 때문이다. 그러나 따져보면 여기에는 분명 의아한 구석이 있다. 구여성은 대관절 언제부터 문학사에 등장했을까. 한국문학에서 이들 구여성이 계급성을 획득하는 시기는 카프(KAPF)의 등장과 맞물려 있지만 사실 이들은 어느날 혜성처럼 문학사에 신여성이라는 강력한 존재가 등장하면서 저절로 특정한 의미로 자연화된 측면이 있지 않을까. 예컨대 근대일본문학의 기원을 논하며 가라타니 고진은 일본 근대 문학에서 근대 문학이 자연화되어가는 과정을 '풍경의 발견'이라는 발상으로 설명한 바 있다. 고진의 설명처럼 기원이 사후적으로 구축된다면 구여성이라는 '슬픈' 기원 역시 신여성이 등장한 후 이와는 대조적으로 구축된 근대적 관념이기도 할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노신의 소설을 보면 노신이 바라본 하층민, 특히 구여성의 모습에서는 이제 막 재현되기 시작하는 '중국적인 것'의 기원으로 그 의미가 안착되고 있는 구여성의 존재가 감지된다. 서술자의 시선은 이들을 집요하게, 그리고 꾸준히 따라간다. 흥미로운 것은 이들이 종종 익숙하기보다 기묘하게 낯선 존재로 다가오는 점이다. 병든 아이를 돌보는 어머니(《내일》)는 한국 소설의 어머니보다 더 늙고 체념적이며 비합리적이다. 근대 한국 문학에 비해 어딘가 지나친 측면이 있는 것이다. 이 논문은 이 지나침의 배후로 의학도의 시선을 되받아치는 응시를 지목했지만 여기에는 또한 노신의 개인사도 개입하고 있다. 노신이 《광인일기》에서 의학도의 감각으로 이 슬픈 기원을 해부하기 시작했을 때 이미 그는 성숙한 장년이었던 것이다. 떠나온 자였으되 한편으로 여전히 고향의 이런저런 풍속을 기억하고 그곳에 아내를 둔 내부인이기도 했던 그의 처지는 노신의 문학에서 의학이 가치중립적 지위를 넘어서 그 시선의 권위를 감지하는 자기반성적인 기제로 전환되는 것을 설명해준다. 주체의 시선과 응시가 뒤엉키는 곳에서 의학은 문학이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축원례》에서 이 슬픈 기원이 가르쳐 준 것은, 뒤늦었지만 주체이기 전에 이미 대상이었던 의학자 자신이다. 반면 이광수는 이 점에서 훨씬 자유로웠다. 동일한 이유를 붙이면, 십대에 유학을 떠나 문명을 날리면서 춘원에게는 이 슬픈 기원이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고 할 수 있다. 춘원을 추동한 것은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연금술의 이상이었고 그것은 귀국한 춘원이 창조해야 할 근대문학 자체이기도 했다.《개척자》에서 춘원은 희귀한 주체, 화학도를 내세워 그 가능성을 열렬하게 타진했지만 정작 춘원이 만들어낸 창조의 꽃은 그의 모순적인 근대성을 모조리 흡수해 용해시키는 '새로운 기원'-신여성이었다. 이로써 춘원이 창조한 한국 근대문학의 주체들은 과학(자)의 젠더지향성에 쉽사리 포섭된다. 그러나 이에 대한 정밀한 분석은 구여성이 등장하는 춘원의 다른 작품을 보아야 하므로 여기서 다룰 바는 아니다. 이 논문은 근대 초기 한국과 중국에서 과학과 문학이 만나는 현장에 대한 문제의식에서 출발한 시론일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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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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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신과 이광수의 1910년대 유학 시절의 체험과 이후 그러한 체험이 소설에 어떻게 반영되어 나타나는지를 몇 가지 공통되는 큰 주제 아래 그 차이와 동질성을 살펴보았다. 이번 발표문을 일단 마무리하면서 차후 보완해야 하고 또한 이번 논문과 연결하여 새로운 논문의 주제로 삼아야 할 것이라고 필자 스스로 생각되는 부분은 다음과 같다. 우선 이번 발표문을 보완하는 데 있어서 좀 더 실증적인 자료(지금 현 상황에서 사실 유학 시절의 새로운 자료를 찾는 것이 어려워 보이긴 하지만)를 찾고 분석하여야 한다는 점이다. 여기서는 새로운 자료를 찾는 데 초점을 두기보다는 그들의 유학 시절의 독서 체험(그에 대한 목록이나 그 영향 관계에 관한 논문은 적지 않지만)과 문화 체험(이에 대해선 좀 더 현지답사라든가 실증적인 자료 발굴과 분석이 앞으로도 있을 수 있다고 보며 그러한 작업을 차후 해나갈 계획으로 있다)에 대한 분석도 보충이 되어, 그들의 유학 체험에 대한 단순 비교가 아니라 근대 동아시아 지식인의 근대 문명에 대한 인식을 통한 동아시아 근대 담론의 형성이라는 큰 주제에 보다 적절한 소논문을 완성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자 한다. 노신과 이광수 두 작가 모두 유학 시절 문학에 뜻을 두었고, 그 문학을 통해 민족에게 도움이 되는 문인이 되고자 하였다. 그 유명한 환등 사건, 노신을 의학에서 문학으로 결정적으로 옮겨가게 만든 그 사건이나 이광수가 메이지 학원 시절, 러일 전쟁의 경험과 톨스토이주의에 경도하면서 민족 계몽으로서의 문학에 눈을 뜨고 1차 유학을 마치고 귀국할 때 기차칸에서 겪었던 사건으로 더욱 민족 계몽을 자신의 책임으로 느끼는 사건 등에서 근대 한국과 중국을 대표하는 지식인이자 문인이었던 두 사람의 공통적 운명과 시대 상황에 대한 연구의 필요성이 새삼 떠오른다. 중국문학 내에서의 노신의 초기 사상에 관한 연구나 한국문학에서의 이광수의 초기 사상 연구는 상당히 진척이 되어 있으나 두 작가의 사상에 관한 비교 및 그를 통한 동아시아 근대 지식인의 근대 인식에 관한 총체적 연구는 되어 있지 못하다. 따라서 차후 연속 연구 과제로 두 작가의 유학 시절 체험과 초기 논설을 중심으로 한 비교 분석을 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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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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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으로 한ㆍ중ㆍ일 삼국의 대표적 자전체 작가인 이상과 郁達夫, 太宰治의 작품에 나타난 공간의 특징과 그 의미에 대해 살펴보았다. 이 작가들의 특정 작품, 즉〈날개〉(이상),〈봄바람에 흠뻑 취한 밤〉(郁達夫),〈광대의 꽃〉(太宰治)에 공통적으로 땅콩껍질과 같은 특별하게 분할된 공간이 발견된다는 점에서 이 고찰은 시작되었다. 그 공간은 거주자와 하나로 통일되지 않고 삐걱인다는 점에서 가장 큰 공통점을 가진다. 그것은 근대성의 개념으로 공간을 해석할 수 있는 단초가 된다. 이들의 작품에 나타난 공통점을 요약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대문의 기능이 상실된 공간. 이들 작품에는 대문이 언제나 열려 있거나 아예 없는 집이 그려진다. 이렇게 대문이 적절한 기능--방어와 소통의 기능--을 수행하지 못하게 됨으로 인해 모두가 하나로 만나는 마당을 구성하지 못한다. 둘째, 대문과 마당의 부재로 인해 방이 마당, 혹은 거리가 된다. 방에 숨을 수 없게 된 주인공들은 여기에 칸막이를 설치하고 그 뒤에 숨은 방을 만든다. 그러나 그것은 자폐적 도피로서 자아를 확인할 거울을 상실하는 일이기도 하다. 셋째, 광장도 없고, 신도 없는 밀실에서 개인이 견딜 수 있는 길은 없다. 따라서 소설의 인물들은 자아를 비춰볼 대상을 찾아 외출을 감행한다. 그러나 그 관계 중심의 세계는 자아의 실체를 찾는 과정에서 가장 먼저 버렸던 공간이기도 하다. 개인의 태도에 변화가 없이 똑같은 공간의 의미가 달라질 수는 없다. 넷째, 소설의 인물들이 겪는 자살충동에 있어서 동일하다. 그러나 이러한 특징들의 공통점 외에 차이점도 발견된다. 첫째,〈날개〉에는 형식적으로 완비된 공간이 제시된다. 그래서 그 노출은 형식적, 내용적으로 철저하며 그것은 당시 일제의 전일적 지배하에 있었던 조선의 상황과 무관하지 않다. 이에 비해〈봄바람에 흠뻑 취한 밤〉의 공간은 반쪽짜리 집이라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곳에는 ‘우리’의 공간이 주는 위안이 있다. 중국의 반식민지적 사회상을 반영하는 것으로 보아 무리가 없다. 마지막으로〈광대의 꽃〉의 공간은 내부적으로 복잡하게 구획되어 있다. 지식인의 고민이 외부를 상정한 상대적인 것이 아니라 이미 내면적 자기동력하에 진행되고 있었던 당시 일본의 상황과 관련이 깊을 것으로 이해된다. 다른 장의 경우에도 이와 유사한데, 이것은 결국 개인, 혹은 동양 삼국의 지식인들이 체험한 자아에 대한 고민이 그 정도와 방향에 있어 뚜렷한 차이점을 갖고 있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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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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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에서 이광수의《閨恨》과 胡適의《終身大事》의 비교를 통해 그들의 초기 사상과 작품의 의미 분석을 병행하여 점검해보았다. 이들 작품에 대한 연구는 그들이 전문적 희곡작가가 아니기 때문에 비교적 연구가 미비하지만 이들에 작품에 대한 평가 또한 다양하게 전개되고 있다. 이들이 특수한 환경 속에 위치한 관계로 이들의 작품에 대한 제 평가도 상황에 따라 유동적으로 바뀌어 감을 알 수 있다. 특히 근래에 양국의 희곡사적 연구가 축척되고 희곡연구의 범주가 공연사로 확장됨에 따라 이들에 대한 언급이 상대적으로 비중이 덜하다. 그럼에도 이들이 갖는 사상적 의미와 선구적 업적은 분명 제대로 평가되어야 할 것이다. 이들 희곡이 지닌 가치를 단편적 시각에서 조망한다면 오히려 그들이 남긴 문학적 자산을 홀시하는 격이 되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이들 작품들이 발표된 연대가 비슷한 하기도 하지만 이들이 유학시대를 통해 희곡의 내용과 주제를 체득하고 창작하였다는 점이다. 따라서 이들 작품은 작품의 완성도는 떨어지지만 문학사적 측면에서와 근대사상의 수용과정에서 주요한 핵심적 주제가 담겨 있다. 그러므로 이 작품들은 그들의 초창기 사상을 밝히는데 매우 유익한 자료가 된다. 또한 희곡이 발표된 두 잡지의 성격은 다르지만 이들 잡지가 양국의 근대문화와 근대문학을 끼친 영향은 지대한다. 이 잡지들은 두 작가가 초창기 자신들의 사고를 적극적으로 개진한 장이었으며 그리고 주요한 멤버로 활동하였다. 그러므로 우리는 희곡이 단순한 문학적 성과물을 넘어 이들의 사상적 준거된다는 점에 입각하여 의미를 제고해 보았다. 특히 이러한 과정을 통해 우리는 희곡 속에 나타나는 여성형상과 그들의 현실적 실천에 대입해 봄으로써 그들이 지닌 생각과 사상적 편린들을 재구성해 볼 수 있었다. 이는 작가와 작품을 만나게 하는 교통이자 교직이며 인간적 휴머니티를 발현할 수 있는 요인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결국 이들은 치열하게 근대사상을 수용하고 계몽적 삶을 실천하려는 자세로 일관하지만 이들은 인간적 한계와 고뇌는 현실을 결코 비켜나갈 수 없었다. 이 점은 오늘날 동아시아 담론의 지속선상에서 탈리될 수 없는 엄연한 진행형이라고 밖에 볼 수 없다. 이 점에 입각하여 우리는 이들 희곡을 재평가해보려는 시도에 기본적인 의미를 두었으며, 그리고 이들의 살아있는 문학적 생명력과 엄연한 자유정신을 탐색할 수 있었다. 그리고 다음으로 우리는 이 두 작품의 대비분석을 통해 상관성과 차이점을 살펴보았다. 이들 작품은 당시의 현실에서 문명과 문화의 굴절이 반복하는 사회적 소산에서 비롯된 작품으로 희곡적 의미와 가치를 지니고 있음을 나름대로 확인할 수 있었다. 그리고 두 작품은 여러 측면에서 선명한 대비를 보여주고 있는데, 이는 당시 한국과 중국이 처해 있는 상황적 논리에 결부되어 각각의 작품 특성을 선명하게 보여주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특히 이러한 특색은 고스란히 각 국가의 드라마투르기의 한 양상으로 발현되고 있음을 또한 보여주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은 과제로는 좀 더 심화된 희곡자체의 분석을 통해 위의 결론들을 확인하는 작업이 수행되어야 할 것이다. 아직 이들 희곡에 대한 본격적인 극적 방법론에 의한 분석은 찾아보기 힘들다. 아마 이 두 희곡이 매우 짧고 완전한 근대극의 꼴을 갖추고 있지 않을뿐더러 이들 작가들이 남겨 놓은 거룩한 유산에 비하면 초라하다는 사실이다. 비록 이러한 한계가 명백하게 존재하지만 적합한 분석을 통해 우리는 원만한 결과를 도출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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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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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의 논의를 종합해 보면, 현대문예이론의 기준으로 梁啓超의 소설이론을 평가하면, 梁啓超의 소설에 대한 인식은 수준이 높다고 할 수는 없다. 매우 분명한 논리적 허점이 있어, 수많은 이론상의 오해와 논리상의 허점에도 불구하고, 당시의 객관적 현실을 감안하면 그의 이론이 시대의 최선봉에 선 것임은 분명하다. 심지어는 문장 속의 어떤 오해와 과장에는 말살할 수 없는 역사적 소명의식이 들어 있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 梁啓超가 제창한 소설이론은 중국근대문학의 발전에 특별한 공헌을 했다. 첫째, 소설과 사회의 관계에 대한 그의 이론은 그때까지 볼 수 없었던 이론의 최고 수준이었다. 둘째, 줄곧 그 지위가 낮았던 중국의 소설을 “文學之最上乘”의 지위로까지 끌어 올렸다. 셋째, 그는 형식면에서, 신문이나 잡지에 이론을 발표함으로서, 중국의 문예비평방법인 評點이나 序跋로부터 완전히 벗어나서 근대이론으로 발전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했다. 넷째, 그 결과 소설이론이 구체적 작품으로부터 분리되어 문학의 일반론이나 서사방법 등 이론성 문장을 자유롭게 전개할 수 있는 방법론면에서 근대소설이론으로 발전하는 획기적인 계기가 되었다. 그러나 “소설계혁명”의 실제효과를 보면, 梁啓超이론의 부정적 효과도 너무나 분명하여 간과할 수는 없다. 첫째, 소설과 사회의 관계만을 일방적으로 강조하여, 소설이 그 본래의 독립적 품격을 상실하고 정치선전의 도구로 전락하고 말았다. 둘째, 소설과 사회라는 외부관계만을 일방적으로 중시하여 서사방법·인물의 전형화이론·사건의 형상화이론 등과 같은 소설내부의 예술문제 등을 홀시하여 중국의 고전소설이 근대소설로 정상적인 발전하는 것을 방해하였다. 청말(만청)에 이렇게 많은 창작이 쏟아져 나와 소설의 전성기를 구가했음에도 불구하고 이 시기의 소설에 대한 평가는 그다지 높지 않다는 것이 문학연구자들의 공통된 평가이다. 이러한 양과 질의 불균형 현상은 여러 가지 복합적인 원인이 있겠지만 그 가운데 가장 큰 이유 중의 하나는 갑작스런 양의 증대현상이 질적 향상을 담보할 수는 없었으며, 이런 양적 증가의 원인이 비문학적 요소인 사회변혁운동의 일환으로 전개되었다는 데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 사회변혁운동의 중심에 梁啓超와 그의 소설이론이 자리 잡고 있었다. 양계초는 자신이 주장한 “소설계혁명”이론을 바탕으로 하여 그의 유일한 소설창작인《新中國未來記》를 창작하였으나, 겨우 5회를 쓰고 나서 스스로 중단하고 말았다. 그의 이러한 실패는 서언에서 제기했던 문제에 명확한 답을 제시해 주고 있다. “실천만이 이론을 검증하는 유일한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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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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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계혁명보다 10년 앞선 晩淸시기의《海上花列傳》은 중국소설사에 있어 과도기적인 위치에 있다. 晩淸시기의 소설은 고전소설, 전통소설, 신소설 어느 용어도 적합하지 않다. 이는 晩淸소설의 홀시에서 비롯된 것이기도 하지만, 晩淸시기에 쏟아져 나온 엄청난 양의 소설은 문학적인 수준을 보장해주지 못한 까닭도 있다. 그러나《海上花列傳》은 《紅樓夢》의 아류작에서 벗어난 최초의 도시소설이었다. 근대도시를 배경으로 한 소설은《海上花列傳》에서 시작되었고, 또한 최초의 연재소설이라는 사명감과 함께 신문 매체에 적합하게 구성하기 위해 변화를 시도한 최초의 소설이기도 하다. 이 외적인 변화 외에《海上花列傳》의 독해로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다름 아닌 근대성에 대한 탐구이다. 嫖客들 즉 남성을 통해서 본 근대성은 가부장적 구조의 와해와 그 대신 형제애로의 대체, 그리고 전통 교육의 몰락이라는 측면에서 살펴볼 수 있었다. 妓女들 즉 여성을 통해서 ‘상품화’된 근대성을 보여주고 있으며, 세계와의 부조화, 괴리, 단절에서 빚어지는 병리적인 인물의 비극을 살펴 볼 수 있었다. 이와 같은 소고는 晩淸시기의 소설에서 신소설로 나아가는 중국 소설사의 간극을 채우고 이해하는데 도움을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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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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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자가 분석ㆍ점검한 것을 요약하면 아래와 같다. 첫째, 봇짱이 공부했던 메이지시대의 물리학교는 낙제를 하지 않고 졸업하는 학생이 10% 전후로 입학은 쉬웠으나 졸업하기가 대단히 어려운 학교였다. 실력이 모자라는 학생에게 엄격한 학칙을 적용하여 낙제를 시키고 있었던 물리학교를 공부에 소질이 있는 편이 아닌 봇짱이 3년간 학교를 다니자 그냥 졸업하라고 해서 불평하지 않고 졸업해 버렸다고 표현한 것은, 나쓰메 소세키가 당시 물리학교의 상황과는 정반대로 작품에 묘사했던 것이다. 그 이유는 작자의 의도된 유머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속에는 일본인 특유의 남을 존중하고 자기를 최대한 낮추어 말하는 표현 방법 등이 깔려 있기 때문이다. 둘째, 메이지시대 말경에 일본정부가 인정하는 도쿄제국대학을 졸업하여 스미토모총본점에 입사한 사람의 급료가 40엔, 경시청 순사의 급료도 10∼13엔 정도였던 것을 고려해볼 때, 봇짱이 물리학교를 졸업하고 시코쿠 지방에 있는 중학교에 수학 교사로 취직을 하여 40엔이라고 하는 급료를 받은 것은 파격적인 대우였다. 교사로 취직하여 초임금 40엔을 받는다는 것은 당시 교직사회에서 당당하게 인정받고 있던 물리학교 출신의 영광을 상징하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셋째, 일본의 근대시대에는 어느 학교를 나왔느냐에 따라 급료의 차이와 신분의 차이가 났던 시대였다. 메이지 정부가 인정하는 제국대학을 졸업하기만 하면 급료를 많이 받고 고급관리와 관리직 등으로 근무할 수 있었다. 메이지 정부는 학벌에 의한 급료의 차이, 신분의 벽을 만들어 제국대학에 못 들어간 사람들에게는 열등감과 정신적 스트레스를 받는 제도를 만들었던 것이다. 그런데 제국대학 출신은 학문적으로는 우수했을지 몰라도 인간이 지켜야 할 인성적인 면까지 우수한 사람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학벌사회의 권력화에 대한 어두운 이면이《도련님》에 정밀하게 묘사되어 있다. 봇짱은 자신도 물리학교 출신이라고 하는 중간 엘리트의 학벌 혜택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제국대학 출신의 슈퍼(super) 엘리트 학벌 소지자의 권위를 인정하려고 하지 않는다. 오히려 제국대학 출신 교감 선생과 충동적으로 대결하려고 했기 때문에 충돌이 일어났고 점차 좌절감을 맛보게 된다. 일본 근대의 독특한 학벌이라는 사회제도가 존재하는 시대에 봇짱이 제국대학 출신인 아카샤쓰를 강자로 인정하지 않고 불신임하고, 충돌하려 했던 것은 필연적으로 좌절과 패배를 맛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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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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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일전쟁과 러일전쟁을 경험하면서 동아시아는 완전히 다른 모습으로 개편된다. 일본의 경우, 이 전쟁은 明治시대의「국체」를 확고하게 하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일본은 두 전쟁에서 승리함으로써 유럽의 열강들과 어깨를 겨룰 수 있는 근대국가로 발돋움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중국의 경우, 변두리에 있는 마을이라는 뜻을 암시하는「支那」로 위치가 격하되었고, 일본은 오랫동안 문화적으로 의존해 왔던 중화적 세계로부터의 분리를 위해 支那를 보급시켰다. 16세기「선교의학」이었던 서양의학은 제국주의가 팽창함에 따라 위생제국 건설의 가장 중요한 도구가 되었으며, 森鷗外와 魯迅은 이것의 가치를 잘 파악하고 있었다. 동양의 선두인 일본의 森鷗外도 나우만에게서는「他者化」된 오리엔트에 불과하다는 것이 논쟁을 통해 확인된다. 森鷗外 자신은 미처 인식하지 못한 사이에, 나우만에 의해 일본이라는 나라에 대한 야만이라는 가치 판단이 이루어진 것이다. 이에 대해 森鷗外는 서양과 동등해지고자 모든 지식을 동원하여 强辯했다. 나우만은 서양의 눈으로 동양의 선두 일본을 마음껏 조롱하고, 그 衰滅을 예고한다. 하지만 세계사에 유래가 없는 총력적인 明治政府의 지원 아래 森鷗外의 과학적 위생국가 건설의 꿈은 점차 성공적으로 이루어진다. 거기에는 文學者 ․ 軍醫 ․ 衛生學者인 森鷗外가 서양과「同等」해지기 위해 전투적으로 분신하는 모습이 숨겨져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의학도 魯迅은 醫專 在學 도중, 자신의 역할에서 근대의학 효용의 한계를 깨닫고 문학으로 전환한다. 이 전환점을 만들어내는 것으로는 장소로서 仙台醫專이며, 時期로서 러일전쟁이, 후지노와 周樹人의 인연을 엮어내고 있었다. 支那人 의학도와 日本人 선생의 만남은 20여년 후 국책소설《惜別》을 낳게 되고, 文學報國會는 太宰治를 통해, 40여 년 전의 침략자의 施惠를 추억하고자 한다. 그러므로 仙台는 제국주의 실현의 한 장으로 볼 수 있으며, 오늘날에는 中日親善을 목적으로 그 추억은 이어지고 있는 복합적인 공간으로 해석될 수 있다. 周樹人의 자아 비판적 회심은 혁명가 魯迅에게 정치적 생명력을 불어넣어주지만, 魯迅으로 하여금 작품 속에서는 끊임없이 중도에 그만둔 근대 의학의 역할을 차용케 한다. 즉 魯迅은 누구보다도 근대 의학의 정치적 효력을 알고 있었고 근대문명을 수행하는 이가 의사임을 깨닫고 있었다. 위생 제국 건설에 전투적으로 이바지 한 森鷗外지만, 유학생활을 통해 발아한 서구자유주의 사상과 문학 창작에 대한 욕구 등은 제국주의 현실에 회의를 품게 했다. 이러한 間隙을 그는 문학으로 채우려 했던 것이다. 이는 혁명가 魯迅이 정치적 변화를 문학이라는 도구로 풀어내는 것과 다르지 않다고 보인다. 따라서 근대 서양의학은 선교사를 따라 또는 식민지 개척자를 따라, 물리적 국경을 넘어 그 세력을 확장하면서 과학적으로 많은 발전을 이룩하였다.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는 의학적 발전 그 자체가 권력이 되었다. 의학적 지식 그 자체가 권력화 되고 결정권을 가지게 되면서 사상적으로 월경해 가는 것을 森鷗外와 魯迅의 생애와 유학체험의 분석을 통해 밝혀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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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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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 this paper, we choose the geographical vocabularies from Xunmeng Zihui which is the earliest educational dictionary in Korea, finding out the corresponding vocabularies in the Original Yupian, and compare those vocabularies from their characters and meanings and some other aspects. We point out that the vocabularies in Xunmeng Zihui have a close relationship with the corresponding vocabularies in Original Yupian, as well as the other Ancient Chinese Dictionaries. At the same time, we discuss the characteristics of the educational vocabularies in the 16th century in Korea, such as most of them are basic vocabularies, the characters are mainly simplified ones and the meaning are popular at the time.
4,900원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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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리학의 대가 주희는 유학사상에 있어서 독보적인 존재이지만, 또한 초사학에 있어서도 그가 후대 초사학자들 특히 민지의 초사학자들에 끼친 영향은 아주 컸다. 그의《楚辭集注》는 그 이전의 訓詁와 考據를 중심으로 한 초사연구를 義理 천명 중심으로 한 연구로 완전히 바꿔놓았다고 할 수 있다. 지금의 복건성인 민지에서 주자의 영향을 받아 초사연구가 크게 일었고, 또한 그 연구 역시 주자의 義理를 천명해내는 연구방법을 대체로 그대로 따랐다. 그들은 履忠被讒된 위대한 애국시인 굴원의 憤懣과 애국심을 대한 意趣를 그대로 따랐는데, 이들 민지의 초사연구가들과 騷體 작가들은 대부분 민족적 애국기질이 강하며 또한 현실에 대한 강한 정치적 불만을 가진 사람들이었다. 초사연구나 소체 작품 창작을 통해 자신의 처지와 불우함에 대한 울분과 불만 그리고 망해가는 나라에 대한 자신들의 감정을 분출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학문 풍토는 아직도 민지학자들의 학풍 속에 그대로 남아 지금까지 전해내려 오고 있다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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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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松江이 활동하던 시대는 倭의 침입으로 임진왜란의 난리가 있었고, 조정에서는 黨爭으로 인한 정치적 다툼으로 인해 정치 ․ 사회적으로 혼란이 극심한 시기였다. 이러한 시기에 西人의 우두머리로서 정치에 몸담았던 송강은 黨派로 인한 답답한 심정과 謫所生活에서 겪는 고민을 해소하고자 도연명이 자연을 벗 삼아 참신하고 깨끗한 삶을 살았던 田園閑居 생활을 흠모하고, 그의 영향을 받아 自然憧憬의 시를 읊었다. 송강은 도연명처럼 자의적으로 歸去來하지는 않았다. 그러므로 타의에 의한 謫所生活에서 出仕에 대한 의욕을 잃지 않고 있다가 마침내 임금의 은혜로 謫所에서 풀려나 정계에 복귀되어 좌의정이라는 높은 벼슬에까지 오른 것은 도연명이 자의적으로 전원에 歸去來한 후 다시는 조정에서 불러도 정치에 뜻을 두지 않은 出處觀과는 다른 양상을 보여준다. 이것은 임금에 충성하고 經世濟民에 뜻을 두었던 16세기 조선 士林들의 出處觀과 송강도 같이한 것으로 이해해야 한다. 한편 도연명은 政治道義가 상실되어 不義한 방법으로 신하에 의해 왕위가 찬탈되어 晉에서 宋으로 나라가 바뀌자󰡒천하에 도가 있으면 벼슬하고, 도가 없으면 물러나 숨는다.(天下有道則見, 無道則隱.)󰡓와 󰡒달통하면 나서서 천하를 구제하고,막히면 할 수 없이 물러나 자신을 착하게 한다.(達則兼善天下,窮則獨善其身.)라는 儒家의 관념에 出處觀을 두었고, 송강은 맹자가 말한 󰡒삶도 내가 원하는 바요, 義도 내가 원하는 바이지만, 이 두 가지를 겸하여 얻을 수 없을 진댄 삶을 버리고 의를 취하겠다.(生, 亦我所欲也. 義, 亦我所欲也. 二者不可得兼. 舍生而取義者也.)󰡓에 出處觀을 두어 經世濟民하고자 끝까지 벼슬에 대한 집착을 하였다. 이를 보면 兩人의 出處는 儒家의 가치관에 의해 정했다는 것이 相似點으로 나타났다. 松江은 당시 黨爭으로 인한 정치 현실에서 고뇌를 해소하고, 謫所생활에서의 위안을 얻는 데는 술만큼 좋은 媒介體가 없다고 생각하였다. 이것은 도연명이 憂愁를 잊기 위해 술을 마셨다는 점과 일치한다. 도연명은 비록 다섯 편의 시에서 짧은 시구로 국화사랑의 시를 표현하였으나, 周濂溪가 그의〈愛蓮說〉에서 󰡒국화는 꽃의 은일자다.(菊, 花之隱逸者也.)󰡓라 말하고, 󰡒晉의 도연명은 유독 국화를 사랑하였다. (晉陶淵明獨愛菊)󰡓라고 말하여 도연명의 국화사랑을 특별히 부각시킨 이후 송강도 󰡐菊花󰡑하면 도연명이 동쪽 울타리 밑에 심었던󰡐黃菊󰡑을 연상하였고, 국화를 통해 名利로부터 탈속하여 선비로서의 고결한 자태를 보여준 도연명을 국화사랑의 대표자로 생각하며 존경과 흠모하는 시를 읊었다. 田園은 생명의 근원이 샘솟고, 자연의 숨결과 생동감이 넘치는 곳이며, 순박하고 다정다감한 정서가 깃들어 있는 곳이다. 그리고 우리 인간들에게 勤勉과 休息을 주는 최후의 安息處이기도 하다. 도연명은 일반 전원시인들과는 달리 그의 시에서 田園에 대한 讚美와 함께 몸소 전원에서 躬耕한 체험을 바탕으로 田園의 생명력이 솟구치는 활기찬 정경을 읊어 후인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이에 松江도 도연명이 읊은 시구와 典故를 援用하여 도연명의 田園閑居에 대한 동경의 시를 지었다. 陶淵明이 만년에 쓴 〈桃花源詩幷記〉는 晋 ․ 宋年間에 민중들이 정치의 災禍로부터 피할 수 있는 장소를 찾아 이상사회를 추구한 당시의 시대적 배경이 잘 나타난 작품으로 人口에 膾炙되어 왔다. 이 작품은 간결한 언어와 뛰어난 造語力으로 순박하고 화목한 농촌사회를 이상세계로 삼아 老子의 ‘小國寡民’ 이나 儒家의 ‘大同世界’ 이념을 잘 형상화하여 혼란시대에 처한 인간들의 간절한 희망을 반영시켰다. 도연명의 이상향인 桃源世界는 신선이 사는 세계가 아니라 포악한 秦의 난리를 피해 漢나라가 있었다는 것은 물론 그 뒤로 魏나라 晉나라가 있었다는 사실을 모르고 살면서 조상에 제사지내고, 손님에게 닭을 잡아 술을 대접하는 다정다감한 情感과 불 때서 밥해 먹는 인간사회의 정황을 묘사하였기에 松江도 도연명이 묘사한 儒家的 관념의 桃源世界를 갈망하였다. 인간은 누구나 죽음이라는 운명으로부터 피할 수 없는 존재이다. 죽음을 눈앞에 둔 도연명은 죽음으로부터 해탈하고자 不老長生을 추구하는 道家나 靈魂不滅의 佛家에도 관심을 가져 보았다. 그러나 여기서도 宿命的인 죽음을 해결할 방도가 없음을 깨달은 그는 儒家的인 自然歸依觀에 최후의 몸을 맡겼듯이 송강도 도연명처럼 儒家的 삶의 방식을 추구하다가 그의 생을 마쳤다. 결국 兩人은 1200년 가까운 시대적 차이와 각기 다른 국가에서 다른 정치 ․ 사회의 풍파를 겪으면서 각자의 삶을 살아갔지만, 兩人의 자연사랑과 은일관념은 儒家的 관념으로 불후의 전원시가 문학을 창작한 것이 일치하며, 兩人의 문학세계는 후대 시가 문학발전에 큰 공헌을 한 인물로 평가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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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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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金髮의 詩는 兩價性 - 神聖과 慾望, 慾望과 슬픔, 그리고 삶과 죽음 - 이 매개하는 교감이 욕망과 죽음을 향해 나아가는 과정들이다. 그것이 욕망과 죽음을 뛰어넘는 듯한 모습을 보이는 것은 그의 자아가 수용하고 있는 虛無 때문이다. 이상과 현실, 현실과 자아, 그리고 미래와 지금 이 순간을 이어주고 있는 機制가 허무의 수용이라는 사실은 그의 상징체계의 모든 이끌림을 서양의 그것과 다르게 하는 원인이다. 李金髮의 서정형식은 기독교적인 관념에 의존해 있으면서도 구원을 받아들이지 않음으로써 허무를 수용하는 특수성, 다시 말해서 보들레르 말라르메 랭보와의 차이를 빚고 있는 것이다. 문화심리의 민족형식이라 할 수 있는 그의 이런 성격 때문에 보들레르의 교감이나, 말라르메의 절대언어, 그리고 랭보의 끝없는 반항과 다른 상징미학이 그 모습을 드러내게 된다. 삶에 깃든 죽음의 수용과 이것을 통한 초월 지향은 구원이라기보다는 禪趣에 근접해 가고자 하는 상징의 특수성이다. 따라서 독자의 자의적인 감수체계를 파고드는 그의 은유 암시 비약 생략 등은 상징주의가 아니라 허무/상징으로 나아가기 위한 방편들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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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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Zhangzai’s philosophy is a precious property of civilization of China and the world. His theory affected not only the development of Chinese Confucianism , but also the development of Korean Confucianism through generations of Korean Confucianism scholars’ absorption and transfer. In accepting and absorbing Zhangzai's philosophy being represented of 'Wei Qi lun', or the energy about origin of nature, Korean Confucianists tried to form Chinese Confucianism in the concrete, properly to Korea. So Korean Confucianism is not a reappearance of Chinese Confucianism, is peculiar to Korea. Naturally, each Confucianist 's idea and theory is not always simple, containing rich and deep contents. So I tried to analysis Korean Confucianism entirely to study about the influence of Zhangzai's ideology on Korean Confuciani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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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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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 존중, 인도주의, 박애 정신 등의 용어들은 우리가 너무나 흔하게 듣는 단어들이다. 풍자개의 그림이 놀라운 것은 이런 주제를 그림에 나타냈다는 사실 때문이 아니라, 평범한 일상사나 흔히 보이는 주위의 사물을 통하여 보통사람은 생각지도 못하는 놀랍고 새로운 점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자신들이 무심코하는 일상 행동에 살생이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을 인간들은 잘 모른다. 무생물들의 표정, 나비 무덤이나 기러기 무덤을 만드는 행위, 벌레 한 마리가 구두 밑에서 생사의 기로에 놓여있는 순간, 사람이 따려는 순간 눈물을 흘리는 과일, 똑같은 높이로 나뭇가지를 치는 행위 등등... 풍자개의 그림을 보면 동물은 물론 식물의 생명도 존중되어져야 한다. 그러나 인간이 생존하기 위해서 어느 정도의 살생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스님들처럼 채식을 한다하더라도 식물도 생명체다. 그렇다면 풍자개의 주장을 어떻게 받아들여야할 것인가? 그가 주장하는 것은 다른 생물의 희생을 최소화시키고, 쓸데없는 과잉 살생은 막자는 것이다. 인간의 유희를 위해, 미식을 위해, 탐욕을 위한 살생이 잘못됐다는 것이다. 인간중심의 세계관 속에서 다른 생물에 대한 배려가 거의 전무하다면 이 지구의 생태계자체도 파괴될 수밖에 없다. 그것은 인간 자신에게 거대한 재앙으로 돌아올 것이다. 풍자개의 그림은 불살생의 메시지뿐만 아니라 현재 심각하게 거론되고 있는 환경파괴, 생태계의 위기와도 관련이 있는 것이다. 풍자개는 이러한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서 언어의 교묘한 사용, 그림의 다양한 내용과 다중적인 기법, 단순하고 신선한 충격, 글과 그림의 절묘한 조합 등을 사용한다. 풍자개는 언어를 구사하는 시인과 색채를 사용하는 화가의 재능과 자질로 시대를 뛰어넘는 작품들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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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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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냉전기에는 친미일변도 원칙아래 미국을 주요대상으로 외교정책을 수립 추진하였다. 최근에 와서 한국은 탈냉전시대의 분위기에 젖어 한반도의 안보현안을 해결하려는 목적에서 자신의 독자외교보다는 중국에 편승하는 형식에 기대감을 보여 왔다. 강대국을 상대하는 입장에서 약소국의 선택은 자국의 의지만으로는 역부족이다. 한국은 약소국으로서 그간 나름대로의 교훈을 얻었다. 그것은 독자적 안보능력이 없는 상황에서 외부의 협조 없이는 안보유지가 불가하다는 현실주의 생존논리이다. 이에 따라 한국은 분단 현실을 인정하고 안보와 경제를 동시에 추구하려 노력해 왔으나, 독자적으로는 한반도와 동북아 평화질서를 실현할 수 없는 현실을 인정하게 되었다. 이에 따라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 유지가 절대 절명의 외교과제인 만큼 4강 외교 강화가 불가피하게 제기되었다. 한국은 지정학적 측면에서, 어느 한 국가와만 결정적인 동맹을 맺거나 그에 안주하는 외교행태는 지양해야만 한다. 한국이 특정 국가와만 영원한 동맹관계에 의존한다는 것은 매우 비자주적 선택이다. 한국의 안보외교와 경제발전은 다자주의적 차원에서 그리고 전방위 각도에서 모색하고 검토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근자에 와서 한ㆍ미관계의 전면적 재검토를 둘러싼 논쟁과 한ㆍ중관계의 재정립을 주장했던 것 등은 이런 의미에서 하나의 계기가 되고 있다. 중국의 강대국화 여정은 당분간 제어되지 않을 것이다. 중국의 열망은 다분히 팽창적이라는 오해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한국이 우려해야 할 상황은 강대국을 지향하는 중국이 점차 배타적 민족주의와 신중화사상에 천착하는 현실이다. 많은 국가들이 2008년 북경올림픽 성화 봉송에서 나타난 민족주의 선동에 대하여 우려를 보였던 이유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중국의 강한 민족주의 감정 표출을 경계해야 할 이유는 북한과도 관계가 있다. 만일 중국이 강대국화에 집착하여 정치ㆍ군사적 영향력을 극대화하려는 유혹에 끊임없이 빠져든다면 이는 필연코 북한을 자극할 소지가 매우 크다. 이는 북한의 핵 위주의 선군정치세력을 고무해 주는 현실로 나타날 수 있다. 이러한 사태로의 진전은 한국 안보에 중요한 위기 국면을 조성하게 된다. 그러나 다행히 최근의 중국이 기존 국제질서에 대한 도전자로서의 이미지를 벗어던지고 국제질서의 옹호자로서의 변모를 적극적으로 드러내고 있는 현실이 주목의 대상이 되고 있다. 이는 한국의 전략적 협력외교가 작동되어 영향을 줄 수 있는 범위가 그 만큼 확대되고 있다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기 때문이다. 중국은 현재 완전한 현상유지국도 아니고, 현상타파세력도 아니다. 한국은 외교적 대응에 있어 중국이 기본적으로 적대적이지 않은 점을 감안하여 일종의 유화정책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중국의 외교적 지향이 다소 불확실성을 띠고 있으므로 명분과 실리가 없는 견제보다는 편승과 유화가 양국 관계발전에 긍정적으로 작용할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한국은 중·북 간의 이해상충을 예의주시하고 활용해야 한다. 미국과의 긴밀한 협력을 통해 북한 핵 위기를 극복하여 안보를 확립하고, 중국과 동반 번영하는 기회를 공유하는데 필요한 ‘중국기회론’에 편승하여 경제실리를 도모해 나가는 양방정책도 재고해야 한다. 대중 우호협력관계를 효과적으로 유지해 나가는 데 있어 전략적 협력관계의 확대와 외교현안의 성실한 추진은 한반도의 미래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이는 궁극적으로 남북한 평화정착과 평화통일의 초석을 자체적으로 마련하는데 있어 필히 요청되는 외교과제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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