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5년 검단리유적을 보고하면서 소위 형식학적 편년틀 위에서 취락의 변모를 3단계로 나누어 살펴보았다. 그후 2008년에 유병록씨에 의해 제기된 문제점들이 발표되고, 또 필자가 주장하던 검단리 유적 선송국리문화론이 계속적인 발굴 연구로써 허구임이 밝혀지게 되고, 검단리유형이 설정되기도 하였다. 필자도 이 검단리유형은 농경문화중심의 송국리문화에 비하여 수렵어로채집문화가 강한 사회였음을 알게 되었다. 이런 차제에 늦게나마 유병록씨의 질의에 전면적으로 재검토하여 답하게 되었다. 먼저 분류의 잘못을 지적하고 수정하였다. 보고서의 분류체제를 그대로 사용하였기에 편년에 크게 유용하지는 못한 부분이 있었다. 편년의 방법에서도 진정한 의미의 순서배열법을 사용하지 못하였음 을 밝혔다. 본고에서는 발생순서배열법의 새로운 조작방법을 소개하고 그 결과로서 22단계의 군집을 상대편년할 수 있었다. 이것을 다시 주변 거점취락의 출토자료를 활용하여 각 유물의 형식의 출현과 소멸시점을 복원하고, 각형식의 조합상으로써 Ⅰ∼Ⅵ기를 설정하였다. 검단리취락의 복원을 위하여 환호취락을 기점으로 그 전후시기에 주거지 중복된 상황을 살펴서 환호 전시기를 3단계로 환호 이후시기를 2단계로 파악하여 총 6단계의 취락구성을 Stage1∼6으로 설정하였다. 또 각 Stage에서 주거지의 분포를 통하여 검단리유적 구릉의 A구와 사면부의 B구로 나누었다. 취락변천의 전반적인 경향은 A구는 중형가옥이 증가하는 추세로, 그리고 씨족체가 분립하다가 세대공동체단위로 통합되어 가는 과정인데 반하여, B구는 환호취락 이전에는 A구와 같은 방향으로 전개되다가 환호 이후부터 쇠락해지며, 그후 1동의 중형가옥과 다수의 소형가옥으로 구성된 씨족공동 체의 형태로 지속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