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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22.04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안성 반제리유적은 고지성취락으로서 산정을 둘러싸는 환구가 조영된 유적이다. 주거지의 수가 72 기로 많은 편에 속하며, 수석리문화가 중심이다. 탄소14연대로는 기원전 8~5세기로 청동기시대 후기 인 송국리문화와 대부분 겹치며, 안성지역은 송국리문화권의 최북단에 해당된다. 본고는 송국리문화 기의 사회를 구명하기 위해 동시대인 수석리문화의 대표적인 유적에서 취락의 동향과 송국리사회와의 관계를 살피기 위해 작성되었다. 연구를 위해 출토유물을 망라하여 순서배열보충법으로 편년한 결과 총 5단계로 설정할 수 있었다. 이것을 층서관계와 검토하여 편년을 검증하여 주거지의 규모와 분포상 으로 사회상을 밝힐 수 있었다. Ⅰa기는 청동기시대 중기문화의 유물이 출토되는 가옥 7동으로 구성 된다. 가옥은 대가족용의 세장방형이며 분산하여 분포한다. Ⅰb기는 소수의 세장방형 가옥과 핵가족 화된 다수의 중·소형 가옥으로 구성된다. 수석리문화가 중심이 되지만 중기문화와 송국리문화도 혼 재한다. Ⅱ기는 중형과 소형 가옥이 1:1로 구성되며, 중형가옥 1동과 소형가옥 1~2동이 1단위를 이 루는 세대공동체가 나타난다. 이 이후는 수석리문화가 지속되며, 중형가옥은 주로 소실하여 폐기되었 다. Ⅲ기에는 환구가 조영된 시기로서, 환구 내에는 의례 관련 대형가옥 1동이 가장자리에 위치한다. 환구 바깥에는 대형가옥 1동과 중형가옥 2동, 소형가옥 소수로 구성된다. 대형가옥은 환구내의 의례 를 거행하던 주인공으로 취락의 유력 엘리트라고 추정된다. Ⅳ기에는 환구가 사라지고 중형가옥 2동 과 소형가옥 4동 정도로 구성된다. 거주지보다 낮은 사면에 2개의 구로 묘역을 구획하고 3기의 무덤 을 조영하였다. 환구는 제천의식을 거행하던 장소이므로 Ⅲ기에 생계를 위협할만한 자연재해가 있었 던 것을 시사하며, 이 이벤트는 송국리취락에서 나타난 기후 악화와 지좌리취락의 대홍수와 연관된 것으로 추정하였다.
        8,300원
        2.
        2020.04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지좌리유적의 유물 분류를 통하여 순서배열보충법으로 편년한 9개 단계(Ⅰ~Ⅸ기)를 이용하여 주 거지-수혈-구의 상호 층서ㆍ공간중복의 관계를 살펴서 시기가 불확실한 유구의 시간성을 보완하였 다. 이 결과를 취락의 변천과정을 살피기 위해서 5개의 期(一~五기)로 묶었다. 지좌리유적은 청동기시대 BC.10~6c.에 하천 충적지에 입지하는 山間聚落으로서, 제Ⅴ기에는 취락 전체가 침수되는 큰 수해를 입은 것이 판명되었다. 최초 一期부터 上ㆍ下區 2개의 구역으로 분리 되어 가옥이 형성되었다. 하구에는 청동기시대 전기의 확대가족 가옥인 세장방형주거지를 중심으로 대형과 중형 가옥이 다수를 차지한다. 반면에 상구에는 배후습지에 수로를 굴착하고 단혼가족의 소형 가옥이 중심이다. 두 구역 모두 2~4동의 가옥으로써 世帶共同體를 이루는 특징을 보이며, 각 구역 내 에서도 주거지는 2~4개소로 분할된다. 주거지의 규모나 수에 있어서 하구가 상구보다 우월하지만, 취락 대표로서의 대형가옥은 하구에서 二期에 먼저 출현하였고, 상구에는 마지막까지도 세대공동체의 일원으로 존재한다. 그리고 三期이후에는 수해를 입은 탓에 다시 一期의 마을 형태로 복귀하였고, 세대 공동체가 분화하여 단혼가옥과 1동의 대형가옥으로 구성하는 형태로는 발전하지 못하였다. 그리고 각 구역을 통합하지 못한 채 분할은 지속되었으므로, 결국 수장의 출현은 이루지 못하였다. 무덤은 하구에서만 확인되는데, 수해 이전에는 남단부에 2기, 五期에는 북단부에 1기를 조성하였 다. 전자는 수렵채집문화권의 묘제로서 부장품은 없었고, 후자는 석검ㆍ석촉을 부장한 석관묘였다. 무덤이 지속적으로 조영되지 못한 것도 수장사회를 이루지 못하였던 까닭일 것이다. 지좌리취락은 소하천 변의 한정된 농경지(밭)를 경작하였으므로 주변 산지의 채집경제에도 크게 의 존하였을 것이다. 산뿌리 쪽으로는 논 경작을 했다고 해도 집약농경으로써 잉여생산을 도모할 정도는 아니었을 것이다. 취락이 전기의 혈연적 사회를 벗어나지 못하였으며, 또 정치체의 중심인 특정 엘리트가 없이, 혈연적 가족단위의 생산공동체가 지속된 사회였다고 추정된다. 대외관계는 하천의 하류 13㎞ 거리에 위치하는 거점취락 송죽리유적과의 교류가 상정되며, 후반대 에는 주변의 중국 북방계와 일본 야요이계 문화도 유입되었다.
        9,200원
        3.
        2019.10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취락고고학에서 주거지의 동시성을 파악하는 것이 최우선의 과제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모든 유물 과 유구를 총망라한 양식 편년만이 유일한 방법이다. 기존의 토기의 문양이나 주거지의 형식을 통하여 청동기시대의 시기와 단계를 설정하였던 관습에서 벗어나 문양, 무문토기 壺, 淺鉢, 적색마연토기의 壺ㆍ甕ㆍ鉢, 內彎口緣甕, 底部의 두께, 胴 下半部 의 傾斜度 등의 器形과 또 석촉과 有溝石斧, 반월형석도, 방추차 등의 형태적 차이로 분류하였다. 그리고 주거지와 수혈에서의 공반상을 통하여 순서배열보충법으로 양식을 편년하였다. 그 결과 110개의 유구에서 51단계의 시간적 차이를 구분해 낼 수 있었다. 그러나 이 단계는 너무 세분된 편년이라 취락의 변천 과정을 살피기에는 어려움이 있어서, 각 단계에서 새로운 형식이 출현하는 경향을 살펴 9단계의 획기를 설정하였다. 그리고 점토대토기 단계에 발견할 수 있는 유물들도 나타나는데, 이것은 점토대토기 단계 직전의 재지계 유물의 변형으로서 先粘土帶土器文化(청동기시대 晩 期)를 설정할 수 있었다. 이 획기를 통하여 지좌리유적의 취락상은 협곡에 입지한 주변 취락으로 타 공동체와의 교류가 적어 전통문화의 존속기간이 긴 다소 폐쇄적인 성격을 밝힐 수 있었고, 청동기시대 전기ㆍ후기ㆍ만기의 문화가 혼재함을 알 수 있었다. 지면 관계상 차후에는 이 편년을 이용하여 지좌리유적 Ⅰ~Ⅸ기(기원전 1100년~550년 전후)의 취락 변천 과정을 살펴서 그 시대상을 복원하고자 한다.
        7,800원
        4.
        2018.04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고고학적 상대연대결정법으로 몬텔리우스의 형식학적 방법과 순서배열법이 대표적으로 사용되고 있다. 전자는 유물 각각으로써, 후자는 유물의 공반 즉 유물복합체를 분석단위로 삼는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그런데, 유물 개개의 시간성을 따지는 것은 유물의 생산시점을 파악하기 위한 작업이고, 공반유물을 통한 상대연대의 규명은 유통 결과의 시간성을 시사하는 것이란 점에 궁극적인 차이가 있다. 소비지의 유물은 각 개인의 취향에 따라 유물의 존속기간이 천차만별이다. 즉 일찍 생산된 물건이라도 늦게 생산된 것보다 더 늦은 시기까지 존속할 수도 있다. 그리고 동일 형식의 물건이라도 그 폐기되는 시간성은 개인에 따라 각각 달리 나타난다. 그러므로 소비지의 유물을 통한 순서 배열법에는 고고학자가 요구하는 유물 또는 유구의 생산시점을 알려주지는 않다. 그리고 유물 각각을 대상으로 작성된 편년들은 모든 유구의 시간성을 파악하는 것에 제한적이기 때문에 한정된 연구에만 사용될 뿐이다. 결국 올바른 편년체계의 구축에 유용한 자료는 생산지에서의 공반유물 즉 유물복합체이고 이렇게 시간 성이 확정된 양식편년을 통하여 고고학의 목적에 접근할 수 있다. 그리고 소비지의 양식편년을 생산지의 양식편년으로 전환할 수 있는 방법도 모색할 수 있다.
        5,800원
        5.
        2014.04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1995년 검단리유적을 보고하면서 소위 형식학적 편년틀 위에서 취락의 변모를 3단계로 나누어 살펴보았다. 그후 2008년에 유병록씨에 의해 제기된 문제점들이 발표되고, 또 필자가 주장하던 검단리 유적 선송국리문화론이 계속적인 발굴 연구로써 허구임이 밝혀지게 되고, 검단리유형이 설정되기도 하였다. 필자도 이 검단리유형은 농경문화중심의 송국리문화에 비하여 수렵어로채집문화가 강한 사회였음을 알게 되었다. 이런 차제에 늦게나마 유병록씨의 질의에 전면적으로 재검토하여 답하게 되었다. 먼저 분류의 잘못을 지적하고 수정하였다. 보고서의 분류체제를 그대로 사용하였기에 편년에 크게 유용하지는 못한 부분이 있었다. 편년의 방법에서도 진정한 의미의 순서배열법을 사용하지 못하였음 을 밝혔다. 본고에서는 발생순서배열법의 새로운 조작방법을 소개하고 그 결과로서 22단계의 군집을 상대편년할 수 있었다. 이것을 다시 주변 거점취락의 출토자료를 활용하여 각 유물의 형식의 출현과 소멸시점을 복원하고, 각형식의 조합상으로써 Ⅰ∼Ⅵ기를 설정하였다. 검단리취락의 복원을 위하여 환호취락을 기점으로 그 전후시기에 주거지 중복된 상황을 살펴서 환호 전시기를 3단계로 환호 이후시기를 2단계로 파악하여 총 6단계의 취락구성을 Stage1∼6으로 설정하였다. 또 각 Stage에서 주거지의 분포를 통하여 검단리유적 구릉의 A구와 사면부의 B구로 나누었다. 취락변천의 전반적인 경향은 A구는 중형가옥이 증가하는 추세로, 그리고 씨족체가 분립하다가 세대공동체단위로 통합되어 가는 과정인데 반하여, B구는 환호취락 이전에는 A구와 같은 방향으로 전개되다가 환호 이후부터 쇠락해지며, 그후 1동의 중형가옥과 다수의 소형가옥으로 구성된 씨족공동 체의 형태로 지속된다.
        8,3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