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변화와 인문학의 대응 그리고 문화의 창달 등등은 상 호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오늘 포스트모던의 시대에서 우리는 과거 인류가 경험하지 못했던 숱한 변수들을 고려하면서, 현재 적인 결단과 실천을 내려야만 한다. 이와 더불어 지금까지 전 통사회에서 이루어지고 전승되어 왔던 많은 가치와 의미들 또 한 지켜나가야 함은 말할 것도 없다. 곧 전승하는 가운데 창발 하고, 창달하는 가운데 전승해야 하는 것이다. 인식하는 존재 요, 지적 생명체로서의 인간은 무작정 인생을 살아갈 수만은 없다. 적어도 왜 살아가고 있는가에 대한 나름의 이해는 있어 야 하기 때문이다. 실존철학은 인간 삶의 구조에 대해 어느 정도 설명해준다. 인간의 존재양식은 다만 실존적인 것이며, 인간은 자신의 삶 속에서 끊임없이 선택하고 결단해야 한다. 결단에 대한 책임 또한 자신의 것이다. 그러나 최종의 지점에서 만나게 되는 것 은 결국 죽음일 뿐이다. 삶과 죽음을 이해하고, 정신과 육체라 는 이중적 조건을 지닌, 지적 생명체로서의 인간이 생사라는 과제와 만나 스스로의 최선을 다한 ‘인위의 총체’로써 문화는 등장한다. 결국 문화란 삶에 기반을 둔 생활의 지혜로 기능하 며, 이는 궁극적으로 생사에 관계하고 있다. 인간 생사와 더불어 명리를 본다. 명리란 결국 사람의 命에 어떤 이치가 있음을 전제로 한다. 그리고 이것이 學이 아닌 術 로 변질되어 왔음은 주지하는 사실이다. 하지만 이들이 그렇게 홀대받아야만 할 이유는 사실상 별로 존재하지 않는다. 왜냐하 면 인간의 삶과 죽음이 결국 운명적인 것이라 한다면, 이에 대 해 다른 학문들 역시 별다른 대응능력을 갖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오히려 생사에 대한 대응능력은 명리가 더 유능할 수 도 있다. 그리고 세상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가치가 있다. 또 이 모든 形下의 세상은 본질적으로 形上의 근원에서 파생되어 나온 것이라는 전통적인 철학적 형이상학이 있다. 때론 神이라 는 명칭으로 더 잘 알려진, 이러한 원리의 궁극적인 자리에 대 해, 道家와 易에서는 無極과 太極을 말한다. 곧, 태극음양의 원 리를 현상 속에 반영한 象數學적 결론으로, 명리라 부르는 일 련의 推命學적 성과가 나타난 것이다. 오늘 현대사회의 불확실성 속에서, 마음의 평안과 미래에 대 한 꿈을 명리의 세계가 제공할 수 있다면, 이의 가치는 보다 새롭게 문화적으로 조명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영원히 굳세고 강하지 못함으로 잘 나갈 때 어려움을 대비하는 것이요, 못 나 갈 때라도 희망을 버리지 않고 살아가는 것이다. 약하고 못난 사람들과 함께 하고 그들과 더불어 살아갈 수 있을 때, 비로소 命理가 말하는 인간 평등과 자유의지의 인간들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이를 도리어 ‘희망의 철학’이라 부르고 있 다.